<퀸카로 살아남는 법: 더 뮤지컬>은 별난 영화다. 2004년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뮤지컬을 다시 영화로 만들었다. '리메이크의 리메이크'인 셈이다. 하지만 본작은 두 번의 각색 과정을 거치면서도 원작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고, 국내 시장에서는 극장 개봉도 없이 VOD 시장으로 직행했다.

그러나 소리소문없는 배급과는 달리, <퀸카로 살아남는 법: 더 뮤지컬>은 2020년대 영상매체 문화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료로 사용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세 가지 측면에서 그 가치를 알아본다.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 더 뮤지컬> 스틸컷.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 더 뮤지컬> 스틸컷. ⓒ 파라마운트 픽처스

 
 
진보하는 문화? 아니, 현실 반영하는 문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 더 뮤지컬>을 원작 영화와 비교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마도 주인공 무리의 인종 변화일 것이다. 작중 주인공 '케이디'는 학교에 전학을 오자마자 갈등에 빠진다. 한쪽에서는 퀸카 '레지나'를 위시한 그룹 '플라스틱'이 케이디를 영입하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주류 아이들로부터 소외된 괴짜 그룹 '제니스'와 '데미안'이 케이디를 이용해 플라스틱에게 복수하려고 한다. 두 그룹 모두 원작에서는 백인 배우들이 소속 인물들을 연기했다.
 
한편, <퀸카로 살아남는 법: 더 뮤지컬>의 플라스틱과 괴짜 그룹은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작에서 아만다 세이프리드가 분했던 '캐런'은 인도계 미국인 배우 아반티카 반다나푸가 맡았고, 괴짜 그룹의 제니스와 데미안 역시 백인 배우에서 각각 아시아계, 흑인 배우가 역을 맡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혹자는 이를 '강제된 다양성'이라고 표현하면서 비판하기도 하지만, 이는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에 가깝다.
 
<퀸카로 살아남는 법: 더 뮤지컬>의 배경이 되는 일리노이주의 온라인 보고서(Illinois Report Card)에 따르면, 해당 지역의 고등학교에서 백인 학생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45.9%로, 절반조차 되지 못한다. 학교의 절반 이상이 히스패닉(27.5%), 흑인(16.5%), 아시아인(5.5%)을 비롯한 유색인종으로 구성된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했을 때, 2024년의 본작이 2004년의 원작보다 인종적 다양성을 추구한 것을 어떠한 이념의 결과로 치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저 영화가 만들어지는 작금의 세태를 반영하고 있는 것뿐이다.
 
꼭 본작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많은 서구권 영상매체에서 발생하고 있는 인종적 다양성 추구는 어떠한 '진보적 아젠다'의 결과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가 이미 백인들의 이야기만으로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생길 정도로 다양화된 것이고, 할리우드를 비롯한 영상매체 생산자들은 그 현실을 한 발짝 늦게 반영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 호환되는 문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퀸카로 살아남는 법: 더 뮤지컬>은 뮤지컬 영화다. 팬데믹 이후 할리우드가 제작하고 있는 '뮤지컬 영화 광풍'의 한 예라고 볼 수도 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원작으로 한 티모시 샬라메 주연의 영화 <웡카> 역시 뮤지컬이었고, 다가오는 11월에는 유명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키드>의 영화판이 아리아나 그란데, 신시아 에리보 주연으로 극장 개봉한다.
 
 영화 <위키드> 예고편 스틸컷.

영화 <위키드> 예고편 스틸컷. ⓒ 유니버설 픽처스

 
 
영화와 뮤지컬의 경계가 항상 명확했던 것은 아니다. 1952년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나 1965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역시 영상매체의 형식을 띠었지만 뮤지컬을 내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시기의 뮤지컬 영화들이 영화라는 매체의 사운드 기술을 과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오리지널 영화라면, 2020년대 들어 나타나는 뮤지컬 영화는 그 계열이 조금 다르다. 대부분 원작이 있거나 이미 브로드웨이에서 흥행이 입증된 뮤지컬인데, 이 경향성은 영상매체에 대한 접근성이 확장에 의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훌륭한 볼거리를 위해 극장에 가야 한다는 것은 이미 옛말이 되었다. HBO의 <왕좌의 게임> 시리즈를 비롯한 다양한 드라마들은 안방극장에서도 자연스러운 CGI와 배우들의 명연기로 이루어진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또한, 그런 드라마보다도 가볍게 볼 수 있으면서 퀄리티까지 챙긴 웹드라마, 그리고 숏폼 콘텐츠의 등장 역시 극장이라는 장소에 의존하는 영화 업계에 압박을 가했다.
 
최근의 뮤지컬 영화 제작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할리우드가 택한 '생존 전략'으로 보인다. 아직 극장은 압도적인 사운드 시스템과 몰입감이라는 무시하지 못할 강점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래를 동반한 뮤지컬의 형식을 가져오는 것이다. 여기에 흥행이 보장되지 않으면 쉽사리 투자하지 않는 할리우드 제작사들의 완고함이 맞물려, 기존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거의 그대로 가져오는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퀸카로 살아남는 법: 더 뮤지컬> 역시 이러한 일련의 현상에 의해 탄생한 작품이다. 하지만 국내 한정으로는 이러한 작품이 소비되는 잔혹한 방식을 엿볼 수 있는 창문이 된 것 역시 사실이다. 배급사가 흥행이 안 될 작품이라고 판단하면, 아무리 극장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영화라도 곧바로 VOD·OTT 시장에 내던져지는 것이다. 문화는 살아남기 위해서 서로의 형식을 빌린다. 하지만, 그렇게 발버둥쳐도 '돈벌이 수단'으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아무도 모르게 파묻혀 버린다.
 
끊임없이 오독되는 문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 더 뮤지컬>의 또다른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영화의 시작과 끝이다. 제니스와 데미안이 내레이션을 통해 시작부터 '이것은 교훈적인 이야기다'라면서 주의를 끌고, 마지막에는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직접 정리해 주기까지 한다. 거기다가 원작 영화에서 논란을 낳았던 부분은 직접적으로 논평하기도 한다. 2004년 판과 본작 모두에서 케이디는 좋아하는 남자아이의 관심을 끌기 위해 충분히 잘하는 수학 공부를 못하는 척하는데, 본작에서는 제니스가 "그건 너무 멀리 간 거 아니야?"라면서 케이디의 무모함을 지적한다.
 
문제는 그러한 코멘트가 필요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데 있다. 케이디는 주인공이지만 완벽히 선한 사람이 아니며, 그렇기에 영화는 그의 모든 행동을 조장하지 않는다. 케이디가 영화 후반부에 완전한 플라스틱의 일원이 되어 따돌림의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모하는 장면 등은 자연스럽게 부정적으로 읽혀야 하는 것이고, 별도의 코멘터리 없이도 그렇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러한 장면에 일일이 코멘트를 추가하는 본작의 모습은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가 부재한 현실에 대한 쓸쓸한 단상으로도 보인다.
 
매체를 불문하고, 작가가 주인공의 모든 행동을 조장하는 것은 아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책 <롤리타>는 소아성애자 주인공을 다루고 있지만 그의 행동을 철저히 비난하고 있고, 프랭크 허버트의 SF 소설 <듄>은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주인공 '폴'의 여정을 통해 역설적으로 철인 통치에 대해 경고한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작가의 의도와 별개로 오독되곤 했다. <롤리타>는 실제 소아성애자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고, <듄>의 독자들은 폴의 여정을 너무 응원한 나머지 작가가 <듄의 메시아>라는 후속작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다시 명확히 해야만 했다.

이렇듯 문화는 언제나 오독되어 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러한 경향성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 앞서 언급한 웹드라마, 숏폼 콘텐츠 등 직설적이고 자극적인 미디어들이 때로 나타났고, 이에 익숙해진 수용자·관객들은 '주인공의 행동은 무조건 옳은 것'이라고 오해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퀸카로 살아남는 법: 더 뮤지컬>의 '셀프 코멘트'는 씁쓸하지만 불가피한 현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지금까지 <퀸카로 살아남는 법: 더 뮤지컬>을 둘러싼 배경을 훑으며 본작이 가지는 문화사적 가치를 되짚어 보았다. 이 영화는 우리 시대 할리우드가 추구하는 방향성과 관객들의 성향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특수한 사회문화적 환경이 낳은 결과물이다. 동시에, 레지나 역을 맡은 르네 랩의 탁월한 가창력과 현란하지만 아름다운 화면 구성도 볼거리다. 원작 영화가 나온 2004년에서부터 2024년 현재까지. 우리 세상의 변화가 미디어 속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확인하고 싶은 이들은 <퀸카로 살아남는 법: 더 뮤지컬>을 구매해 시청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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