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빈과 건> 스틸컷
인디그라운드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근데 나 꼭 여기서 나가야 돼?"
제주의 하천은 화산활동으로 인한 물이 스며드는 특성, 급경사로 인한 빠른 배수의 특징을 가진다고 한다. 대부분의 하천이 도외 지역의 강(江)과 같은 모습이 아니라 건천(乾川)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유다. 건천은 조금만 가물어도 마르는 하천을 뜻한다. 오래전부터 도내에 형성된 마을을 중심으로 물이 중요한 요소로 여겨졌던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지질학적 특징은 이 문제를 하천을 정비하여 해결하겠다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그동안 이루어진 몇 차례의 하천 정비 사업을 통해 원형을 훼손하기에 이른다.
영화 <유빈과 건>에는 두 소년이 있다. 건천 인근에 형성된 숲 속에서 작은 동굴을 거처 삼아 지내고 있는 건(장시우 분)과 그를 만나러 찾아오는 친구 유빈(윤희성 분)이다. 두 사람은 물길만 남은 채로 암석이 노출된 공간에서 다른 사람은 침범할 수 없는 그들만의 시간을 보낸다. 감춰진 채로 평화로울 줄만 알았던 두 사람의 공간에도 문제는 발생한다. 숲 속의 나무 곳곳에 묶인 채로 늘어진 공사 예정구역 표식들이 발견되면서다. 그 표식의 끝에는 건의 거처가 있다. 예정대로 공사가 시작된다면 두 사람이 헤어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02.
건천 지역을 개발하려는 시도를 막아보기 위한 두 사람의 노력이 시작된다. 나무에 묶인 표식을 모두 찾아 풀며 공사 구역이 아닌 것처럼 위장해보기도 하고, 제주특별자치도청을 찾아가 하릴없이 무작정 기다려보기도 한다. 혹시 모르는 상황을 대비해 유빈은 엄마(진정아 분)에게 건이 집에서 함께 지낼 수 있는지 묻기도 한다. 그는 거처를 잃게 될지도 모르는 건 본인보다 훨씬 더 분주한 모습이다. 상황은 소년의 노력으로는 벌써 손 쓸 도리가 없을 정도가 되어버린 후다. 어떤 종류의 요청도 모두 기각된다. 두 사람이 제거한 끈표식의 자리에는 흰 페인트가 대신하고 있고, 숲 초입에서는 공사가 이미 진행되고 있다.
친구의 문제인 것을 떠나 건천 지역을 굳이 왜 공사해야 하는지도 유빈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 공사가 끝나고 나면 더 이상 길을 멀리 돌아서 다니지 않아서 좋다는 엄마와 형(강동언 분)의 말만 원론적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대화가 등장하는 가족의 식탁 위에는 'Save our earth'라는 문구가 쓰인 머그컵이 놓여 있다.) 그 숲에 나무와 새가 있다고 누가 좋아하느냐고 반문하는 형의 말에서는 이제껏 느끼지 못했던 거리감이 느껴진다. 공간의 일부가 되길 원하는 쪽과 공간을 이용하길 원하는 쪽의 거리, 혹은 그 공간에 소중한 존재를 두고 온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의 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