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다큐프라임>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 3부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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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임종을 사흘 앞둔 노인이 한 분 계신다. 곁에서 간호를 하는 사람들이 담배에 불을 붙여 환자의 입에 물린다. 혼자서는 담배를 들 힘도 없지만, 도움을 받아 노인은 몇 모금 담배를 핀다.
이 충격적인 장면, 지금 우리의 '요양 치료' 현실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일본 지바현 긴모쿠세이 요양원에서는 '숨이 멎기 직전까지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노인의 소망을 받아들인다. 그분다운 마지막 희망 사항을 존중한 것이다.
'특별 노인 요양홈'인 이곳은 집에서는 혼자 생활 할 수 없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노인 본인이 삶의 중심이 되어 살아가도록 돕는 곳이다. 이곳의 철칙은 할 수 없는 것만 도와드리자는 것이다. 하루의 시작, 노인은 힘겹지만 스스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다. 돕는 대신, 곁에서 '힘내세요!'라고 말할 뿐, 물론 쉽지 않다. 도와주면 5분이면 끝날 것들이 하세월이니 말이다.
식사 시간도 2시간이다. 살아온 방식, 몸의 상태에 따라 저마다 먹는 속도도, 먹어야 하는 음식도 다른 상황을 충분히 고려한 시간이다. '스스로 먹기를 선택했다면 속도는 문제가 아니'란다. 느린 것이 아니라, 나다운 것이 중요하다고. 우리 사회에서 늙으면 '아기'가 된다며 돌봄을 당연시 여기는 것과는 전혀 다른 대응 방식이다.
치매를 대하는 방식도 다르다. '집에 간다'고 나서는 노인, 요양원 사람들은 '조심히 가세요'라고 인사한다. 그냥 보내는 것? 아니 몰래 따라나선다. 그러면 대부분 노인들은 5분도 안 돼 길을 잃고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려 했는지조차 잊어버린다. 그러면 그때 다가가 '무슨 일이세요?', '차 한잔 하실래요?'라며 노인을 모시고 온단다. 대부분 노인들은 '좋아요' 하고 흔쾌히 돌아온다니.
물론 일본도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다. 배설물과 욕창 냄새가 물씬 나던 요양원, 거기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게 억제대까지 채워 놓았었다. 그러던 것이 다나카 토모에가 앞장 서서 '노인에게 자유와 긍지와 평화를'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노인의 삶도 인간다워야함을 주장하며 신체를 억제하지 않기로 했다.
미국인 캐런 브라운 윌슨도 마찬가지다. 원할 때 침대에 눕고, 원하는 걸 먹고 싶다던 어머니를 위한 요양원을 만들고자 했다. 의존해야 하는 시기가 와도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어시스턴트 리빙'을 지향하는 미시간 주의 윌로우 플레이스가 그곳이다. 이곳에 신규 입소자들은 '언제 도움을 원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걸 함께 해주는 '리스크 협상'을 해나가며 노년의 삶을 유지해나간다.
노년의 돌봄은 매번 시설이냐 집이냐 하는 식으로 '장소'의 문제로 치환되어버리곤 한다. 2023년 기준 노령화 지수 163.4(아이들 100명에 노인 163명)의 사회가 된 대한민국, 치료 중심의 돌봄을 넘어서, 비록 의존적인 상태이고, 아파도, 나의 목소리와 내 삶의 서사가 존중받을 수 있는 노년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다큐는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