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를 쓰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그 상상의 세계를 닫지 않는 일이다. 상상의 세계가 무엇이냐고? 어느 아이라도 가지고 있는, 또 가질 수 있는 저마다의 세계다. 하늘을 날고, 귀신에 쫓기고, 인간을 잡아먹는 장롱 속 괴수가 있고, 침대 밑엔 어마어마한 크기의 다람쥐가 숨어 있다. 또 다락에는 다른 차원으로 아이를 데려가는 문이 있고, 그 문 너머에는 공룡만큼 커다란 인간들이 산다.
 
그야말로 끝이 없는, 제한이 없는 세계. 저마다 아이들이 믿고 있는, 믿을 수 있는 상상의 세계가 모두 동화의 무대가 된다. 동화 속에선 똥이 말을 걸고, 인간이 날아다니며, 토끼도 헤엄을 친다. 그 세계를 닫지만 않는다면, 그 세계를 열어낼 수만 있다면, 우리는 멋진 동화를 써낼 준비를 갖춘 것이다.
 
어른들도 마음 한 구석에는 아이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무엇인지 안다는 것,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 속 아이는 소리친다. 도전하라고, 불가능과 부닥쳐 그것이 가능함을 확인하라고 말이다. 사람은 날 수 있다고 믿은 이 중 어느 누구가 비행기를 발명했다. 배가 사각진 저편의 절벽에 떨어지지 않으리라 믿은 이가 대항해시대를 열었다. 어쩌면 어리석은 건 아이가 아닐지도 모른다.
 
몬스터 주식회사 포스터

▲ 몬스터 주식회사 포스터 ⓒ JIFF

 
아이의 마음을 간직한 이들에게
 
영화는 어른들의 마음 속 아이를 일깨운다. 새하얀 스크린 위를 채운 이야기가 어둠 가운데 앉은 관객을 들썩거리게 한다. 감동케 한다. 움직인다. 영화의 힘을 빌려 창작자는 어른에게 아이의 마음을 꺼내게 한다. 그로부터 변화를, 어쩌면 그를, 가족을, 지역을, 세상을 바꿔낼 변화를 일으키고자 한다.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은 많은 이들이 나는 아이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믿는다. 또 이 영화제를 준비한 많은 이들도 아이의 마음을 지녔다고 여긴다. 전주국제영화제의 트레이드 마크, 픽사돔에서 상영된 일군의 작품들은 관객들에게 아이의 마음을 아직 간직하고 있느냐 묻는다. 당신은 문을 닫지 않았는가. 문을 열고 당신이 알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단 걸 믿을 준비가 되었는가를. 고개를 끄덕인다면 누구나 영화의, 픽사의 세례를 받아낼 준비가 되었다.
 
<몬스터 주식회사>는 픽사의 네 번째 영화다. 존 라세터가 <토이 스토리> 1,2편과 <벅스 라이프>를 연달아 성공시킨 뒤 픽사가 외연을 넓혀 도전한 네 번째 작품이다. 기술력은 이미 검증됐고 남은 건 이야기 뿐. 관객 앞에 다가설 수 있는, 어른과 아이를 함께 만족시킬 수 있는, 무엇보다 관객 안에 잠든 아이를 깨우는 영화, 그런 애니메이션에 도전한 결과물이다.
 
몬스터 주식회사 스틸컷

▲ 몬스터 주식회사 스틸컷 ⓒ JIFF

 
문을 열고 넘어가면 몬스터의 세계
 
픽사 최고의 각본가로 자리하게 되는 앤드루 스탠튼이 댄 거슨과 협업해 내놓은 각본은 시작부터 참신하다. 영화로 들어가 보자. 인간이 사는 세상 너머엔 괴물들이 사는 도시 몬스트로폴리스가 있다. 이 도시에는 몬스터 주식회사란 회사가 있는데, 도시를 운영할 에너지를 만드는 곳이다. 에너지를 얻는 방법은 무척이나 독특하다. 밤마다 괴물들이 문을 건너 인간세계로 건너가고 아이들을 겁주어 이른바 '비명 에너지'를 얻는 것이다.
 
근래 들어 이 도시엔 심각한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다름 아닌 에너지 위기다. 각종 매체에 노출된 아이들이 더는 괴물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집적되는 에너지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몬스터 주식회사 최고의 콤비로 불리는 제임스 P. 설리번과 마이크 와조스키에게도 에너지 위기는 현실로 다가온다.
 
이야기는 아이와 접촉하면 치명적 타격을 입는 몬스터들의 세계 가운데 '부'라는 인간 아이가 들어오며 속도를 낸다. 미처 닫지 못한 벽장문으로 들어온 아이를 돌려보내려 용을 쓰는 설리, 그러나 아이는 그의 마음도 모른 채 설리 뒤를 졸졸 따른다. 괴물을 두려워하기는커녕 귀여운 인형이나 고양이 보듯 하는 모습이 명색이 몬스터인 설리에겐 당혹스럽기만 하다. 무엇보다 아이의 침입을 허용한 건 그대로 도시의 위협이 된다. 아이를 무사히 돌려보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설리와 마이크의 모습은 영화를 보는 가장 큰 재미를 이룬다.
 
몬스터들의 세계와 아이들이 살아가는 인간계, 그 둘을 잇는 문과 몬스터들의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상상의 나래를 펴도록 한다. 이제껏 나온 적 없는 이야기, 그를 가능케 하는 세계관이 아이들에게 흥분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몬스터 주식회사> 속 캐릭터를 좋아하게 된다는 건 그가 살아가는 세계를 믿게 된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아이는 이전엔 보지 못했던 상상의 세계를 제 안에 두게 된다.
 
몬스터 주식회사 스틸컷

▲ 몬스터 주식회사 스틸컷 ⓒ JIFF

 
적성과 재능 사이에서 나를 지키는 법
 
한편 영화는 적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픽사의 많은 작품이 그러하듯 영화는 어른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메시지며 주제의식도 함께 품고 있다. <몬스터 주식회사>는 직업인이라면, 또 그 업을 선택하는 단계에 있는 구직자며 대학생에게 호소할 수 있는 적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 속 설리번과 와조스키는 서로를 끔찍이 위하는 단짝이다. 건장하고 용모가 기괴한 설 리가 현장직을 맡고 있다면, 작고 귀여운 인상의 와조스키는 사무직을 맡고 있다. 그러나 와조스키는 대학교 재학 시절 겁주는 일에 대해서라면 첫째 자리를 내주지 않는 수재 중의 수재였다. 사람들을 놀래키는 것도 좋아하여 현장직으로 나서 아이들을 두렵게 하는 날이 오리라고 손꼽아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는 달랐다. 제가 좋아하는 일, 즉 현장에서 아이들을 겁주는 건 제게 맞지 않았다. 아이들은 기대만큼 놀라지 않았다. 심지어는 와조스키의 일거수일투족에 웃음을터뜨리기 일쑤였다. 공포를 주기 위한 이론에 아무리 빠삭하다 하여도 제가 그를 행할 때는 좀처럼 효과가 일지 않았다. 말하자면 재능이 달랐던 것이다.
 
재능과 적성, 누구에게나 그를 따져본 일이 있었을 테다. 하고 싶은 일과 잘 할 수 있는 일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세상에는 얼마나 많던가 말이다. 때로는 하고 싶은 일에 온 몸을 내던지지만 기대만큼 성과가 나지 않아 좌절하게 된다. 또 때로는 별 관심 없던 영역에서 재능을 발견하고 활약하게 될 때도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 JIFF

 
아이에겐 꿈을, 어른에겐 현실을
 
재능과 적성 사이에서 와조스키는 좌절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는 현장에서 남을 놀라게 하는 설리번 뒤에 자리하고 그가 더 활약할 수 있는 보조역으로 활약하기 시작한다. 와조스키 덕분에 설리번은 더 유능한 요원이 된다. 결국 둘은 서로를 빛나게 하는 파트너가 된 것이다.
 
영화는 이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설리번은 사건을 모두 해결한 뒤 몬스터 주식회사의 사장에 오른다. 그로부터 그는 몬스터 주식회사의 방침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는다. 아이들을 겁주는 대신 그들을 웃게 함으로써 더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덕분이다. 아이들을 웃게 하는 것, 여기엔 와조스키 만한 인재가 없다. 와조스키는 비로소 제 재능이 꽃피는 지점을 마주한다.
 
적성과 재능이 맞닿는 것, 이는 업을 택할 때 가장 이상적인 일이다. 그러나 현실이 그에 미치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럴 때면 한 발 뒤로 물러나 제 쓰임을 찾은 와조스키처럼 현명한 타협을 할 밖에 없다. 설사 그것이 제가 꿈꿔온 일이 아닐지라도.
 
<몬스터 주식회사>는 아이들에게는 꿈을 꾸게 하고, 어른들에게는 현실을 살도록 하는 작품이다. 하나의 이야기로 두 가지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중 무엇이 다른 무엇보다 못하다고 할 수는 없겠다. 아이들이 제 꿈을 넘어 현실을 알게 될 때, 이 영화를 변치 않고 좋아할 수 있으리란 것, 어쩌면 이 영화가 품은 가장 멋진 점이 이것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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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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