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웹예능 <존중 냉장고: 존잘상을 찾아서>의 한 장면
유튜브 웹예능 <존중 냉장고: 존잘상을 찾아서>의 한 장면르크크 이경규
 
이경규와 '깜짝 카메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지금은 '불법 촬영'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방송에서 '몰래' 타인을 관찰하는 행위는 지양하는 편이다. 그러나 1990년대만 해도 그런 방식이 용인되는 걸 넘어 인기 콘텐츠였다. 이경규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양심냉장고'는 몰래 카메라의 공익 버전으로, 야심한 시간대에 정지선을 지키는 운전자에게 냉장고를 선물하는 내용이었다.

지난 10일, 이경규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르크크 이경규>에서 '존중 냉장고: 존잘상(존중 잘하는 대상)을 찾아서 Ep.01' 영상을 공개했다. 이 콘텐츠에서 이경규는 가수 김요한, 나나와 함께 반려견 산책시 '에티켓'을 잘 지키는 사람을 찾아 나섰다. 애견인으로서 '펫티켓'(반려동물을 뜻하는 펫과 에티켓의 합성어)을 잘 지키는 사람에게 냉장고를 선물하겠다는 취지였다. 1회에서의 수상 기준은 매너 워터, 인식표, 입마개였다.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1500만 시대를 맞이한 만큼 '펫티켓'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 커지는 분위기다. 이를 반영한 시의적절한 콘텐츠라고 볼 수 있다. 동네 산책을 가거나 공원에 나가면 반려견과 함께 거리로 나온 견주들이 많은데, 그 중에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태를 보이는 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특히 입마개를 하지 않은 개들 중에서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케이스가 있어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평소 애견인으로 유명한 이경규가 KBS 2TV 예능 프로그램 <개는 훌륭하다>에서 4년 넘게 MC를 맡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인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출발부터 삐그덕대는 모양새다. 지난 10일 공개된 '존중 냉장고' 영상은 그 직후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그 핵심은 진돗개에 대한 혐오 조장 및 시민을 대상으로 한 깜짝 카메라다. 문제가 된 장면은 다음과 같다.

해당 영상에서 이경규는 매너 워터, 인식표, 입마개를 모두 갖춘 대상이 존중냉장고의 주인공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입마개는 솔직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그 예로 "진돗개는 입마개를 안 해도 괜찮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동물보호법상 맹견으로 분류된 도사견, 핏불테리어, 로트와일러 등이나 그외 시·도지사가 맹견으로 지정한 개는 입마개 착용 의무화 대상이라는 자막도 함께 나왔다. 진돗개는 맹견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입마개 의무가 없다.

이어 이경규는 "다른 분들이 봤을 때 '저거 좀 위협적인데' 하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입마개를 착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분들이 존중의 대상"이라고 정의했다.

이와 같은 설명은 오해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맹견이 아니라면, 입마개 의무가 없다. 그런데 입마개, 매너워터, 인식표를 모두 갖춘 보호자를 찾아서 상으로 냉장고를 준다는 것 아닌가. 단서로 "다른 분들이 봤을 때 좀 위협적이라 생각"될 수 있다는 점을 들었지만, 이런 기준은 지나치게 자의적이다.

영상 중반부 입마개를 하지 않은 진돗개가 반복해서 등장하면서, 이경규를 비롯한 출연자들은 입마개를 하지 않았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에 "왜 진돗개가 입마개 대상이냐. 진돗개는 맹견이 아니다"라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영상에서는 진돗개뿐만 아니라 말라뮤트, 사모예드와 같은 대형견부터 소형견종에게도 입마개를 확인하는 모습이 있었다. 

게다가 해당 영상에 등장한 '진돗개 견주'가 직접 장문의 댓글을 게재하면서 논란에 더욱 불을 붙였다. 그는 "진돗개 견주로 살면서 참 억울한 순간이 많았"다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제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모습이 촬영돼 유명인이 진돗개 혐오를 조장하는 도구로 쓰인다니 제 강아지를 입양하고 가장 힘든 순간"이라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학대받은 강아지를 보호소에서 입양해서 저렇게 멀쩡하게 산책시키기까지 저의 어떠한 노력이 들어간 과정은 싸그리 무시된 채 그저 입마개 없이 남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하는 무지한 견주로 박제가 돼버렸다."

우리가 어떤 반려견에 대한 '위험성'을 판단하려면 여러가지 정보가 필요하다. <개는 훌륭하다>에서도 보호자와 반려견의 관계를 충분히 청취하고, 문제 행동에 대해 긴 시간 동안 관찰하지 않던가. 이런 준비 과정 없이 깜짝 카메라로 관찰하며 입마개를 하지 않았다고 힐난하는 건 너무나 무책임한 일이다. 게다가 보호자들에게 아무런 해명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방송에 등장한 견주들은 모자이크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당사자는 댓글에서 "저와 강아지의 인상착의가 다 나와있다"며 법률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외에도 영상에 등장한 다른 견주 역시 "산책 중 촬영에 대해 고지받은 적이 없다. 너무 당황스러운 상황인데 왜 당사자 동의 없이 몰래 촬영해서 올리시는 거냐"고 거세게 항의했다. 

해당 영상은 14일 기준 조회수가 10만 회를 넘어서 화제가 되었다. 논란이 증폭됨에 따라 누리꾼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보호자만 보면서 얌전히 산책하는 진돗개에게 왜 그러냐', '견주 허락 없이 촬영한 거 사과해라', '혐오를 조장한다'며 제작진을 비판하는 댓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비반려인 입장에서는 입마개를 필수로 해줬으면 한다', '견주들이 반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눈에 띄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이경규의 '존중 냉장고'가 입마개 의무가 없는 견종에게까지 입마개를 강요하며 갈등을 조장했고, 합의 없는 촬영으로 견주들의 인상착의를 공개했다는 점이다. 반려문화 성숙에 앞장서고자 했던 선의는 이해하지만, 접근 방식에서 문제를 드러낸 셈이다. 한편, 제작진은 14일 밤 11시 30분 무렵 "반려견 입마개 착용과 관련한 내용으로 진돗개 견주만을 좁혀 보여드려 많은 반려인 분들에게 상처를 드린 점 깊이 사과드린다. 앞으로 저희 제작진은 시청자 분들의 다양한 관점과 정서를 고려하여 더욱 신중을 기해 공감 받는 콘텐츠를 제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반려인들의 분노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듯하다. 13일, 수의사 겸 동물훈련사 설채현도 SNS에 <존중 냉장고>에 대한 비판글을 게시했다. 그동안 구설수 없었던 이경규가 반려견 문화에 일침을 놓으려다 위기를 맞은 셈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너의 길을 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이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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