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란다스의 개포스터
JIFF
극장의 멸망은 피할 수 없는가
지난 2일 영화제 가운데 발길이 닿아 들른 행사 자리가 있었다. 영화의 거리 근처 전주중부비전센터 5층에서 열린 '한국영화 생태계 복원을 위한 토론회'였다.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한국예술영화관협회, 여성영화인모임 등 영화계 제 단체 대표자가 참여한 토론회는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객단가 문제와 대형영화의 독과점 논란 등을 다루었다.
누군가에겐 이제껏 수없이 나온 논의의 반복처럼 여겨졌을 이 자리에서 그래도 처절함이 닿는 이야기가 없지 않았다. 경상남도 유일의 예술영화전용관 씨네아트 리좀을 운영해온 하효선 대표는 토론회 뒤 발언권을 받아 이날 토론이 멀티플렉스 3사와 <범죄도시>의 독과점 이야기로 채워진 것에 답답함을 드러냈다. 그녀는 "생태계를 이야기한다고 하면서 모두 관객과 (영화가) 닿는 토양에 대해선 심각하게 고민을 안 하고 있는 것 같다"며 "(정부가) 문만 닫지 않을 정도의 지원금으로 (다양한 영화를 소개하는 부담을) 예술영화전용관 등에 지우는 실태에 대한 얘기를 언제쯤 제대로 할 건지 묻고 싶다"고 토로했다.
대한극장과 같은 대형 멀티플렉스조차 문을 닫는 현실 가운데서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이 생존할 수 있느냐는 사회적 차원에서 논의돼야 할 문제다. 오로지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을 통해서만 관객과 만나고 있는 작품이 수두룩한 현실, 그럼에도 대중이라 불리는 대다수 예비 관객은 이를 외면하고 있는 현실 가운데서 이를 유지할 필요와 방법에 대한 합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 및 정당들이 이를 외면하고 있는 현실은 문화강국이며 한류열풍의 전성기에 서 있는 한국 영화예술의 민낯을 깨닫도록 한다.
한편으로 소규모 상영관을 통해 전해지는 독립영화가 과연 볼 가치가 있느냐에 대한 물음도 이뤄져야 한다. 지난 세기 동안 비약적으로 커진 콘텐츠 시장은 영화의 지위마저 전과 다른 무엇으로 바꾸어 놓았다. 할리우드와 OTT 서비스를 위시한 산업의 측면에서 영화는 손꼽는 파급력을 지닌 대중예술이며 산업콘텐츠이지만,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다수 독립영화들은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매력 없는 콘텐츠처럼 여겨지곤 하는 것이다.
▲플란다스의 개스틸컷JIFF
개를 훔친 범인을 잡아라
그럼에도 독립영화는 보존돼 마땅한 가치가 있는가. 국가가, 사회가 나서 독립영화의 설 자리를 지키고 보전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어느 SNS 채널에 달린 '재미없으니까 안 되는게 더 큰 듯'이라는 한 줄 짜리 댓글에 어떻게 답글을 달아야 할지 오래 고심했다는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은 "무역하는 물건처럼 수출을 잘 해야 한다고 (영화를 대하는 정부의 시각이) 우려된다"면서 "재미가 무엇인지 해석하는 바가 다 다르겠지만 독립영화가 재미를 위해 만드는 것인지, 극장에서 봐야 하는지 고민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편 전주국제영화제에서 25년 만에 다시금 상영기회를 얻은 봉준호의 <플란다스의 개>는 상업적으로는 실패했으나 한국 사회 전반에 무시할 수 없는 질문을 남겼다. 콘크리트 벽을 사이에 두고 여러 가구가 함께 사는 아파트가 영화의 배경이다. 그곳에서 신경이 거슬리게 짖어대는 개가 한 마리 있다. 그 소리에 화가 잔뜩 난 백수나 다름없는 시간강사가 있다. 그가 몰래 개를 납치한다. 그러나 그 개는 제 화를 부추긴 짖어대는 개였는가. 아파트 곳곳에 나붙은 전단은 성대수술을 해 짖지 못하는 개를 구하고 있지 않은가. 개를 훔친 뒤에도 개 짖는 소리는 계속 들려온다. 오지랖 넓은 경비실 직원은 누군가 개를 죽이는 모습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를 뒤쫓는다. 상황은 갈수록 뒤틀리고 진실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마치 진실처럼 표면 위로 드러난다.
봉준호가 오래 천착해 온 주제의식, 약자끼리 쫓고 쫓기며 드잡이질 하는 상황이 얼마쯤 우스꽝스럽고 얼마쯤 안쓰러운 감상을 일으킨다. 누군가는 개를 훔치고 누군가는 쫓김을 당하며 누군가는 제가 무엇을 쫓고 있는지 모른 채로 바쁘게 뛰어다닌다. 참담하게 실패했던 영화는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정식 상영관에서 관객과 만날 기회를 얻었다. 정식 상영관만이 줄 수 있는 감흥이 있다는 게 그 이유다. 그 사이 어느 극장은 문을 닫았고 어느 극장주는 소리 높여 생태계를 말해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개는 죽었는가. 아직은 구할 기회가 남았는가. 25년 전 아파트의 층간소음 문제는 과연 사라졌는가. 진실로 책임 있는 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플란다스의 개>가, 재미가 없다고 미뤄졌던 그 작은 독립영화가 오늘의 한국에 던지는 물음이 여전히 맹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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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