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도니 던과 마사 스콧의 첫 만남 넷플릭스 영드 '베이비 레인디어'

▲ 도니 던과 마사 스콧의 첫 만남 넷플릭스 영드 '베이비 레인디어' ⓒ 넷플릭스

 
작은 친절이 불러온 나비 효과
 
어느 날, 한 술집 안으로 여자가 들어온다. 코미디언이자 바텐더로 일하는 도니 던은 보자마자 그 여자를 불쌍하게 생각한다. 도니는 주문을 하겠냐고 묻지만 여자는 돈이 없다고 대답한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여자의 표정에 도니는 차 한 잔을 그냥 무료로 준다. 이 작은 친절이 자신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게 될 줄, 이때만 해도 도니는 상상도 하지 못한다. 여자는 도니의 사소한 친절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그때부터 도니에게 집착하기 시작한다. 매일같이 술집에 찾아와 도니의 곁을 맴돌고 시도 때도 없이 문자 메시지와 이메일을 보낸다. 도니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스토킹하다 못해 도니의 전 여자친구와 현 여자친구를 위협하고 심지어 도니의 부모까지 협박을 한다.
 
넷플릭스 영드 '베이비 레인디어'는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된 작품이다. 주인공 도니 던을 연기한 리처드 개드는 영국의 코미디언이다.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1인극 '베이비 레인디어'를 넷플릭스 드라마로 직접 각색하고 제작했다. 그렇다면 드라마 내용은 어디까지 실화일까?
 
극중에서 도니를 스토킹하는 마사 스콧은 온라인 메시지로 끊임없이 도니를 괴롭힌다. 리처드가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실제 스토커가 보낸 SNS 메시지는 이메일 4만1071통, 음성메일 350시간, 트위트 744개, 페이스북 메시지 46개에 이른다고 한다.
 
드라마가 공개된 후 많은 사람들이 실제 스토커가 누군지 알아내려고 하자 리처드 개드는 우려의 뜻을 밝혔다. 극중에서 드러난 캐릭터들의 감정은 전부 사실이지만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실제 인물이 누군지 유추할 수 없게 디테일한 사건은 전부 다 바꿨다고 한다.
 
극중에서 마사는 온라인 메시지로 스토킹을 하다가 나중에는 도니의 여자친구를 폭행하기까지 하는데 도니는 그제서야 경찰서를 찾아가 신고한다. 왜 6개월이 지나서야 신고를 하냐는 경찰의 질문에 도니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대체 왜 그랬을까?

자기혐오와 인정 욕구의 위험성

사실, 마사가 도니 앞에 나타났을 때 도니의 자존감은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코미디언으로 성공하고 싶었던 도니는 유명 작가인 대리언을 멘토처럼 믿고 따랐다. 하지만 대리언은 도니에게 자기와 함께 글을 쓰면 성공할 수 있다고 계속 가스라이팅을 하며 자기 마음대로 도니를 조종했다. 도니는 대리언에게서 벗어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인정 받고 싶은 욕구를 이기지 못해 자꾸만 대리언을 찾아갔다. 극중에서 도니가 말한 대로 '자기혐오에 중독되어(Hating myself. I'm addicted to it.)' 타인의 관심과 인정을 갈구하게 된 것이다.
 
마사는 처음부터 자기가 변호사라고 허세를 부리지만 도니는 그게 거짓이라는 걸 금방 눈치챈다. 하지만 마사가 도니를 보며 이런저런 칭찬을 늘어놓자 은근히 그 상황을 즐긴다. 도니가 경찰에 신고하기까지 6개월 동안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도니가 단호하게 끊어내지 못하고 마사에게 계속 여지를 줘서 스스로 구렁텅이에 밀어넣은 게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다. 마사는 분명한 가해자이지만 도니는 마사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점을 느끼고 어느 순간에는 마사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하기까지 한다.
 
마사는 도니를 보자마자 처음부터 줄기차게 '베이비 레인디어(Baby Reindeer)'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베이비 레인디어'는 '아기 순록'이란 뜻이다. 마사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당시 유일하게 위로가 되었던 게 아기 순록 인형이었고 도니가 그 인형을 닮아서 더욱 집착했던 것.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 애정 결핍이었던 마사 역시 자기혐오와 인정 욕구에 사로잡혀 있었고, 도니와 마사는 서로의 상처를 꿰뚫어본 셈이다. 
 
리처드 개드는 이렇게 캐릭터들의 양면성을 표현한 이유를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누구나 실수를 한다. 착하기만 하거나 나쁘기만 한 사람은 없다. 우리 모두 각자 특이한 방식으로 사랑을 찾아 헤매는 방황하는 영혼들이다.(We all make mistakes. That no person is ever good or bad. That we are all lost souls looking for love in our own weird way)."
 
- 리처드 개드, '넷플릭스 보도 자료' 중
 
요즘처럼 너도 나도 SNS로 자신을 과시하는 세상에서는 나와 타인을 비교하며 자기혐오에 빠지기 쉬운 동시에, 타인의 평가와 칭찬을 갈구하는 인정 욕구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 '베이비 레인디어'는 실제 사건을 얼마나 비슷하게 재연했느냐보다 자기혐오와 인정 욕구가 얼마나 위험한지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베이비레인디어 넷플릭스영드 자기혐오중독 인정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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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하며 글 쓰며 세상과 소통하는 영상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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