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연극 <천 개의 파랑> 포스터.
국립극단
베스트셀러 소설을 연극으로 만들 때는 고려해야 할 점이 많다. 원작을 먼저 접한 많은 팬들에게 실망감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부담감과 동시에 뛰어난 재해석 또한 필요하다. 기존의 텍스트를 뛰어넘는 순간 다른 장르로 이동하는 당위성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많은 극작가와 연출가들이 베스트셀러 소설을 가지고 연극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원작이 가진 아우라의 힘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국립극단의 연극 <천 개의 파랑>은 여러가지로 화제였다. 우선 젊은 소설가 천선란의 베스트셀러라는 점, 그리고 연극과 거의 동시에 국립국악원에서 판소리극으로도 만들어진다는 점이 두 번째였다. 이 정도면 시대정신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싶은 '우리는 너무 빨리 달리느라 많은 것을 놓치고 산다'라는 주제의식은 가까운 미래의 '기수 로봇'이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이라는 설정 덕분에 설득력을 얻는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마지막에 '스매싱 히트' 화제가 하나 더 등장했다. 개막을 앞두고 기수 로봇의 작동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아무리 고치고 정비를 해도 일정을 맞출 수 없게 된 제작진은 결국 상연 일자를 늦추고 예매 관객 모두에게 사과와 함께 110% 환불 조치를 해주는 결정을 내렸다. 전례가 없는 일이었고 4월 4일부터 14일까지의 회차 관람 기회를 놓친 관객들은 당황했다. 다시 표를 구할 수도 없었다. 이 연극은 이미 4월 28일 저녁까지 전석 매진이었으니까.
연극이 끝나기 직전인 4월 25일 저녁, 아내와 나는 기적적으로 표를 구해 이 연극을 보게 되었다. 원작 소설을 무척 좋아했던 나는 과연 기수 로봇 '콜리'를 어떻게 구현할까 너무나 궁금했는데 제작진이 내세운 비장의 무기는 로봇 배우와 사람 배우로 콜리를 이원화시킨 아이디어였다. 실제로 다리가 움직이고 자체 스피커를 통해 기본적인 대사도 소화하는 로봇과 함께 로봇의 또 다른 자아를 연기하는 김예은 배우의 협연은 너무나 뛰어나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145Cm인 로봇 배우보다는 크지만 스스로 몸집을 좀 줄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작은 로봇을 연기하는 김예은 배우의 놀라운 딕션과 몸짓들은 그동안 연출·작가·제작진의 고민이 얼마나 컸는지를 잘 웅변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