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 <세자가 사라졌다>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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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보쌈이 보쌈의 전형적 모습이었다고 생각하면, 이 드라마의 총각보쌈은 예외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다. 과부보쌈보다 총각보쌈이 조선시대에 먼저 부각됐다. 총각보쌈이 예외적이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당사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강압적으로 이뤄지는 약탈혼은 고대 사회에서는 더 많았다. 그렇지만, 끈으로 결박해 와서 결혼한다는 의미에서 박취(縛娶) 등으로 표기된 과부 약탈혼이 사회현상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조선시대 후기다.
조선 후기의 왕명을 모은 <수교정례>에 따르면, 정조의 아들인 순조가 임금일 때인 1805년에 형조판서 이면긍이 보고한 내용 중에 "근래에 지방 촌락에서 수절하는 과부인 양인(良人) 여성을 강폭한 자가 무리를 거느리고 밤중에 포대기에 싸서 결박하는 것을 박취라고 부른다"는 대목이 나온다. 과부를 보쌈하는 일이 1805년 이전의 어느 시점에 사회 문제가 됐음을 보여주는 문장이다.
2019년에 <비교민속학> 제69집에 실린 이영수 인하대 강사의 논문 '보쌈 구전설화 연구'는 이웃 과부집에 놀러간 안동의 권 진사를 과부로 착각한 장정들이 보쌈해가는 <청구야담>의 설화를 소개한다. 조선 후기에 나온 <청구야담>에 소개된 권 진사는 부인과 사별한 가난한 남성이다. 그런 그가 과부 집에 놀러가 저녁을 먹은 뒤 보쌈을 당했던 것이다.
보쌈을 지시한 사람은 고을 이방이다. 과부를 보쌈한다고 벌인 일이 권 진사 보쌈이라는 엉뚱한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방은 끌려온 사람이 과부인 줄 알고 만족해 하며 '오늘 밤은 우리 딸과 함께 자라'고 일러둔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권 진사는 이방의 딸과 결혼하게 된다.
장정들이 권 진사를 여성으로 착각한 것은 그가 저녁밥을 얻어먹은 뒤 과부의 옷을 입었기 때문이다. 식사를 대접한 과부가 옷을 바꿔 입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권 진사가 이방의 딸과 혼인하자, 과부는 이 모든 게 자신의 계획이었다고 털어놓는다. 자신을 보쌈하려는 이방의 속셈을 알아챈 과부가 보쌈을 당하지 않으려고 권 진사와 옷을 바꿔 입었던 것이다.
과부는 이방에게 보쌈을 당하느니 양반인 권 진사의 후실이 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이로 인해 권 진사는 두 아내와 함께 살게 됐다. 과부보쌈이 전혀 엉뚱한 결과로 귀착됐던 것이다. 위 논문은 "이와 같은 이야기는 <청구야담> 이전의 설화집에서는 보이지 않으며"라고 설명한다. 19세기 중엽을 전후해 발행된 <청구야담> 이후에야 이런 이야기가 널리 퍼졌던 것이다.
"총각보쌈이 과부보쌈보다 더 오래된 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