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스틸컷
반짝다큐페스티발
당신이 선 곳은 예전에 숲이었다
반다페 2024 개막식에선 모두 3편의 영화가 관객들과 만났다. 저만의 문법으로 저만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곧 사회적 자산을 빚어내는 작품들이 상영되었다. 영화제의 성향이며 지향을 짐작할 수 있는 개막작이기에 주최 측 또한 남다른 관심으로 작품을 가려냈을 터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신승우 감독의 < 1000 >은 여러모로 낯선 영화다. 한때 석탄채굴로 북적였던 강원도 정선 사북읍을 찾은 감독이 그곳의 풍경을 예술적 사진의 연속처럼 담아냈다. 폐광된 탄광촌 위에 한 명의 광부를 소환한 영화는 그의 뒤를 따르며 한때는 번성했고 어느덧 쇠락한 땅의 면면을 차분하게 비춘다.
사람들이 떠난 뒤 버려진 숙소와 뼈대만 남은 콘크리트 건물들, 막혀버린 갱도와 같은 것이 차근차근 보이더니 어느새 수령이 1000년이나 된 고목이 카메라 앞에 선다. 땅으로부터 석탄을 빼내어 이룬 번영도 마침내 끝이 나고 자리를 지키고 선 것은 예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숲이다.
"당신이 서 있는 곳은 예전에 숲이었다"는 한 줄 문장으로 영화는 끝맺는다. 영화를 보는 동안 오늘의 번영에 앞서 있는 자연의 존재가 새삼 생생하게 다가온다. 도시가 서고 쇠락하는 동안 변치 않고 자리를 지켜온 숲은 낯설고도 대단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하물며 1000년 수령의 고목이야.
주지하다시피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은 카지노 강원랜드의 소재지이기도 하다. 한때 석탄을 캐어 삶을 꾸렸던 그곳이 도박으로 오늘을 지탱한다. 산업도, 시설도, 사람들도 들고 나며 제 모습을 바삐 바꿔간다. 그동안 제 자리에 굳건히 박힌 것은 그리 많지가 않다. 끈덕진 시선으로 오래 무엇을 바라보는 < 1000 >과 같은 영화는 얼마쯤 남은 그 드문 것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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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다페가 이어져야 하는 이유
세상에 이익 따라 일어나는 것은 흔하다. 이익이 사라져 물러가는 것 또한 흔하다. 그러나 그 모두가 떠나간 자리를 지키는 것은 드물고도 귀하다. 그 귀함을 포착하는 시선 또한 얼마쯤은 그 귀함을 나눠가질지 모를 일이다.
여러모로 난해한 영화가 관객 가운데 몇이나 설득하는 데 성공했을지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영화가 상영되는 와중에 우렁차게 코를 고는 어느 관객처럼, 꽤나 많은 이들이 '지루한 영화구나' 하며 지나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영화를 인상적으로 본 이들 또한 없지 않다. <거대 생명체들의 도시> <해체: 바다의 몸>을 만든 박군제 감독은 < 1000 >과 관련하여 "버티어낸 고목과 버려진 폐광, 그 둘 사이를 배회하는 하나의 영적 시선이 기억에 남는다"며 "그 존재를 통해 두 개념 사이에 깊은 얽힘을 만들어낸 이미지의 흐름이 매력적이었다"는 평을 남겨 눈길을 끌었다.
또한 어느 감독이 말한 것처럼 영화가, 그리고 독립영화가 사회의 자산을 빚는 것이라면 < 1000 >과 같은 작품 또한 그 임무를 나누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지 않을까. 다수와 통하지 않는 시선이라도 꺾이지 않고 이어가는 자세, 그 고집 센 낯섦에게도 설 자리를 내어주는 여유, 반다페가 내년도, 그 후년에도 이어져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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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