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스틸컷
판씨네마(주)
학교 수업이 끝나면 어느새 학원을 가야했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나에겐 숨 쉴 틈이 있었다는 것. 동춘이가 잠시 눈을 감고 상상의 세계로 떠나 귀여운 친구들을 만났던 것처럼. 어찌 보면 이것이 동춘이가 자신을 지키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나의 경우, 학교 수업이 끝나고 학원 수업이 시작하기 전까지 친구들과 공원에서 신나게 놀았던 시간들이 나를 지켜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운이 좋아서 나는 지금도 그 공원을 종종 들른다. 어릴 때 뛰어놀았던 장소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은 때때로 묵직한 응원이 된다. 주변 환경과 현재 시대의 흐름에 어울리지 않다고 해서 없어지는 곳들이 많은데 그 가운데서도 묵묵히 살아남은 나의 어릴 적 작은 공원이 대견하다. 얼음땡도 하고 탈출 놀이도 하고 이름도 없는 말도 안되는 놀이를 하던 그곳이 내게는 아직도 자리하고 있다. 아주 크게, 소중하게 말이다.
동춘이처럼 어린 나도 나만의 세계로 떠난 적이 있다. 학원 의자에 앉아 있으면서도 속셈 학원에 왜 가야 하는지, 속셈과 보습 학원의 차이는 무엇인지, 피아노 연습 카드는 왜 꼭 다 색칠해야 하는지 등의 여러 의문들이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나를 학원에 보낸 엄마, 아빠와 학원에 있는 선생님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궁금했을 뿐이지.
돌이켜보면 이 또한 운이 좋았다. 학원이든, 학습지든 소화할 수 있을 만큼 했으니까. 나이를 먹고 세상살이를 하고 있는 지금, 여전히 '나'라는 존재를 탄생시키고 길러준 엄마와 아빠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그 문턱 어딘가도 가지 못했고 영원히 언저리를 맴돌지도 모르겠다.
다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분명한 마음들이 있다. 어려웠던 시절에도,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는 유치원 친구 엄마들이 다 보내는 학원을 우리 애도 다니게 해줘야겠다는 젊은 부모의 열정과 용기를 나도 어렴풋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100점을 맞기 위해,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기 위해 열심히 했지만 그 속에서 나를 잃어버리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