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여운 것들> 포스터.?

영화 <가여운 것들> 포스터.?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그리스 출신의 세계적인 명장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8번째 장편 영화로 돌아왔다. 그는 3번째 작품 <송곳니>로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석권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후 5번째 작품 <더 랍스터>부터는 영어로 된 영화를 찍고 있다. 그의 영화는 기괴하거나 기묘하거나 기상천외해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편이다. 천재적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 이어 연속으로 그가 각본에 참여하지 않은 <가여운 것들>이 바로 8번째 영화다. 원작은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작가 앨러스데어 그레이의 작품이고 각본은 호주 출신의 토니 맥나마라가 맡았으며 연출은 주지한 대로 그리스를 대표하는 명장 요르고스 란티모스다. 그리고 미국, 영국, 아일랜드의 제작사들이 모였다.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작품들이 항상 그렇듯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는데 이보다 더 글로벌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야말로 국적을 가리지 않고 최고의 스태프와 함께하려는 집념이 엿보인다. 영화 속 세상뿐만 아니라 영화를 만듦에 있어서도 완벽을 기하는 게 느껴진다. 이번 작품은 또 얼마나 완벽할지 또 기상천외할지, 어떤 이야기와 메시지를 전할지, 그리고 내 신경을 얼마나 긁을지.

세상 밖으로 나아간 프랑켄슈타인

19세기 후반 영국 런던, 외모만큼이나 생각과 행동도 기괴한 천재 과학자 갓윈 백스터는 시체를 다루는 솜씨 하나만큼은 당대 최고다. 그런 그에겐 말하는 것도 걷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많이 어색하지만 절세미인이라 할 만한 여식 벨라 백스터가 있다. 그녀는 사실 임신했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고 아직 숨이 붙어 있었을 때 갓윈이 데려와 벨라의 몸에 아기의 뇌를 이식해 되살려낸 생명체였다.

갓윈은 그동안 벨라를 철저한 보호해 왔고 맥스를 조수로 데려와 벨라의 하루하루를 기록하게 했다. 그리고 맥스로 하여금 벨라와 약혼까지 하게 한다. 하지만 둘의 결혼 계약 공증인으로 방문한 변호사 덩컨 웨더번이 바람둥이 끼를 발휘해 벨라를 낚아챈다. 세상 구경을 시켜주겠다며 리스본으로, 알렉산드리아로, 파리로 데려간다.

벨라는 자신에 대해, 타인에 대해, 세상에 대해 차츰 눈을 뜨기 시작한다. 처음엔 타의로 세상의 지식들을 받아들이더니, 나중엔 자의로 세상의 지혜를 흡수해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때 묻지 않은 지식과 찌들지 않은 지혜를 갖춘 벨라는 모든 걸 받아들이되 뭐가 올바른 것인지 선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의 행보가 점점 기대된다.

그녀의 성장 여정을 응원하지 못하는 이유
 
 영화 <가여운 것들> 스틸 이미지.

영화 <가여운 것들> 스틸 이미지.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벨라의 여정은 외향상 휘황찬란하다. 리스본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와중에도 아기자기한 맛이 있고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배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하늘은 삶의 마지막을 함께하고 싶을 만큼 황홀하다. 그런데 벨라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예쁘다, 멋있다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녀에겐 다양한 사람들의 면면 자체가 마냥 신기하다. 더 알고 싶다.

반반한 외모와 달리 점점 더 추한 행동만 보이는 덩컨을 뒤로하진 않으면서도 벨라는 새로운 사람들이 건네는 지식, 지혜 그리고 에너지를 스펀지처럼 흡수하며 성장한다. 고정관념도 없고 잣대도 들이대지 않기 때문이다. 아울러 어눌했던 말, 딱딱했던 걸음걸이, 갓난아이의 행동 등이 '교정'된다. 즉 사회화가 되었다는 건데, 과정이 마냥 좋아 보이진 않는다. 

하여 벨라의 여정을 응원하진 못하겠다. 특히 한 인간으로서 바로 서고 나아가 한 여자로서 자기 해방을 이룩하는 이야기인데, 하필 아기의 뇌를 가졌다는 점에서 의아함을 남긴다. 이를테면 섹스에 대한 자유분방함, 여비를 마련하고자 몸을 파는 행위 등 아기의 뇌로 하는 생각과 행동이라고 본다면 납득하기 힘든 모습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탁월한 여성의 자기해방 이야기

영화를 좀 더 뭉뚱그려, 추상적으로, 거시적으로 본다면 이보다 탁월하기 힘들다. 여성의 자기 해방이라는 주제를 이렇게 직설적이면서도 풍자적으로 보여주는 건 가히 어려운 일이니 말이다. 특히 배경을 살펴보면 보수적이기 이를 데 없는 19세기 말 유럽이다. 더군다나 벨라의 곁에는 여자를 당연한 듯 물건 취급하는 덩컨이 있고, 그녀로 하여금 임신 상황에서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게 한 누군가가 있었을 테다. 

그래서 벨라는 런던으로 돌아갈 운명이다. 그곳에는 갓윈과 맥스가 있는데 그들은 철저히 과학자로서 벨라를 대한다. 벨라가 잠깐이나마 둘러본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희망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녀는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변화의 양상과 희망 따위는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받아들인다.

그녀의 성장 행태가 정답은 아닐 것이다. 그저 부러울 뿐이다. 어디에도 갇히지 않고 자유분방한 채 세상만물이 궁금해 모든 걸 분별없이 대하고 또 흡수하면서 자신과 세상을 알아가고 그 의미를 인지해 선택, 집중, 통합하여 결국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한 그녀를 말이다. 

영화가 시작할 때는 벨라, 즉 그녀와 그녀의 아기가 가여웠지만 영화가 끝날 때는 벨라를 제외한 거의 모든 이가 가여워 보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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