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한 장면.
SBS
하나회는 전두환, 손영길, 김복동, 노태우 등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들과 그 후배들이 주축이 되어 탄생됐다. 본래의 취지는 '하나가 되어 한마음 한뜻으로 국가에 충성하자'는 의미로 시작했다고 한다. 6·25 전쟁 등으로 인하여 체계적인 장교 육성 시스템이 부족했던 선배 세대와는 달리, 11기는 최초로 정규교육 4년을 모두 마치고 임관한 첫 세대로 '우리가 진정한 육사 1기'라는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다고 전해진다.
하나회 멤버들은 맹세의 의미로 단도를 나눠가지며 배신을 하거나 부정한 행위를 하면 스스로 자결하여 죽음으로써 명예를 지킬 것을 다짐했다. 또한 하나회 멤버들은 후배 기수가 들어오면 철저한 뒷조사를 통하여 학교 성적, 교우관계, 집안 환경 등 사생활까지 미리 꼼꼼히 확인했다. 재능있는 인물은 처음엔 선후배 관계로 접근하여 챙겨주다가 대위쯤 진급했을 무렵에 하나회 멤버로 본격적인 포섭을 시도하는 식이었다.
하나회를 연구한 서청경의 논문인 <한국정치의 후견인-수혜자 관계>에 따르면, 하나회에 가입한 인물은 은밀하게 초대를 받아 모인 장소에 가면 11기 회원들이 모두 모여서 일렬로 앉아있었고 그 중심에는 회장인 전두환이 있었다고 한다. 새 멤버들은 '반드시 혼자 가서 무릎을 꿇고는 국가와 조직에 충성한다는 선서를 하게 했다. 그리고 선배가 따라준 붉은 포도주 한 잔을 마시면 그것으로 하나회 회원이 된 것'이라고 증언했다.
설립 초기에 가벼운 친목모임 정도로 시작했던 하나회는 어느새 회원이 100명을 넘긴 거대조직으로 성장했다. 군법상 군 내 사조직은 엄연한 불법이다. 그럼에도 하나회의 존재와 급격한 성장이 가능했던 것은, 사실상 군 내부의 묵인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윤필용(1927-2010)은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청와대 밖 대통령'으로까지 불리던 군부실세였다. 그는 하나회의 존재도 진작에 알았지만 이를 묵인했다. 하나회는 11기보다 선배인 윤필용을 큰 형님이자 후견인으로 깍듯이 모셨다고 한다.
하지만 윤필용은 1973년 4월 돌연 박정희 정권에 의하여 전격적으로 숙청당한다. 윤필용이 중앙정보부장 이후락과의 술자리에서 "요즘 각하(박정희)가 노쇠하셔서 이제 슬슬 물러날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 뒤를 이을 사람은 형님(이후락)이 계시지 않나"는 말을 한 것이 박정희의 귀에 들어간 게 원인이었다.
박정희는 이를 사실상의 '반역모의'로 규정했고, 실제 법정에서는 횡령 및 특정범죄가중 처벌법 위반 등의 죄목을 뒤집어씌워 윤필용을 몰락시킨다. 윤필용은 측근이던 장교 10여 명과 함께 끌려가서 혹독한 고문과 처벌을 당했고 여기에는 윤필용의 참모장이자 하나회 창립멤버인 손영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하나회의 존재도 발각된다. 윤필용이 실질적으로 쿠데타 모의 혐의로 숙청된 만큼 전두환과 하나회로서도 최대의 위기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박정희는 하나회를 묵인하고 내버려뒀다. 사실 박정희는 진작부터 하나회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박정희는 오래전부터 전두환을 눈여겨보고 총애했다. 박정희가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당시 전두환을 비롯한 육사생도들은 쿠데타를 군사혁명으로 지지한다는 선언을 하며 시가행진까지 펼쳤다.
또한 박정희는 집권 이후 전두환에게 정치 입문을 제안했지만 전두환은 "군에도 각하를 위한 충성스러운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아부하며 박정희의 마음을 더욱 흡족하게 했다고 한다.
박정희는 하나회를 조사하려던 당시 강창성 보안사령관을 오히려 좌천시키고 수사를 중단시켰다. 전두환은 살아남았을뿐 아니라 훗날 강창성이 맡았던 요직인 보안사령관 자리까지 꿰차며 군부의 정보라인을 장악하게 된다. 보안사령부는 '군대 내의 중앙정보부'로 불리우며 훗날 전두환의 쿠데타와 집권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훗날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전두환은 윤필용을 숙청하는 작업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그는 육사 11기와 하나회 동기인 손영길이 덩달아 사건에 휘말리며 몰락하는 것도 묵인했다. 이에 대하여 손영길은 "아마 전두환의 욕심이었을 것이다. 자기가 항상 내 뒤에 따라오고 그러니까 앞서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겠지, 내가 전두환을 많이 잘못 봤다"고 평가하며 씁쓸해했다.
하나회의 중심이자 리더였던 윤필용과 손영길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며 이제 전두환은 진정한 하나회의 1인자로 올라섰다. 전두환은 리더십이 뛰어나 주변에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고 하며 철저한 '군맥관리'로 자신의 영향력을 더욱 키워나갔다.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전두환은 후배들을 위하여 금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일이 생기면 앞장서서 온갖 문제를 직접 해결해줬다고 한다. '그의 후배나 동료관리에는 천부적인 정성이 녹아있었다'는 게 당시 후배들의 실제 평가였다. 이에 전두환을 추종하는 후배들은 점점 늘어나 그의 말이면 무조건 충성하는 친위 세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인사권 틀어쥐고 권력 장악한 전두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