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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일 개봉을 앞둔 <패스트 라이브즈>는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첫사랑 '나영(그레타 리)'과 '해성(유태오)'이 24년 만에 뉴욕에서 다시 만나 끊어질 듯 이어져온 그들의 인연을 돌아보는 이틀간의 운명적인 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데뷔작이다. 신인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 스튜디오 A24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으며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주요 부분(작품상, 각본상)에 올라 놀라움을 안겼다. 지난 달 29일 화제의 주인공인 셀린 송 감독과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선댄스 영화제부터 시작해서 아카데미까지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그. "1년여 동안 한 영화 하나로 겪을 수 있는 과정을 A부터 Z까지 학습하고 한국을 마지막으로 밟게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드디어 한국에서 개봉, 기대 반 설렘 반"
 
-전 세계 순회공연을 마치고 한국에서 개봉하는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이제 오스카 레이스만 남았다.
"한국에서 언제 개봉하나 기대되었다. 인연이란 말을 한국에서는 일상적으로 쓰지만 외국은 다르다. 그래서 '인연'이란 영화의 주제가 크게 와닿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그래서 한국 반응은 예상 못 하겠다. 열린 마음으로 캐릭터에 이입해 즐기면서 봐주셨으면 좋겠다."
 
-제목을 <패스트 라이브즈>라고 지은 이유가 있을까.
"저는 누구나 두고 온 인생(전생)이 있다고 믿는다. 살면서 시공간을 이동하고 나이도 먹고 이사도 다닌다. 예를 들면 변호사의 삶을 버리고 현재 셰프가 되었다면, 변호사의 삶은 전생이 되어 그 시절의 일화를 이야기할 수 있다. 부산 살다가 서울로 이사 가면 부산 살았던 이야기를 종종 하게 된다. 보통의 인생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을 포용하는 제목으로 정했다."
 
-<씨받이> 시나리오 작가인 큰아버지(송길한), <넘버3>, <세기말> 감독인 아버지(송능한)에 이은 영화인 가족이다. 10대 때 캐나다로 이주해 뉴욕으로 건너가 극작가로 활동하다 영화감독이 됐는데. 
"아버지의 조언은 따로 받지 않았다. 인생 자체가 조언이다. 부모님의 조언이라기보다는 제 인생 자체가 부모님과 연결되어 있다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아버지 영화가 <넘버11>로 되어 있는 이유를 많이 물어보더라. 아버지 영화를 오마주 하고 싶어 찾아보니 넘버10까지 (영화가)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웃음)
 
한국에 오더라도 영화인과 만날 일은 없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촬영했던 시간이 무척 소중했다. 조명 감독이 아버지의 강의를 듣던 학생이었다. 한국 영화계를 경험하게 되어 재미있었고 뜻깊었다."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인연'이다. 인연의 시각화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영화는 셋이 바에 앉아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관객을 그 자리에 초대하고 (무슨 사이일까) 의문을 유발하며 탐정이 되어보길 부추긴다. 해외에서는 인연에 대해 잘 몰라서 단어를 설명해 주어야 했다. 해성과 나영의 관계는 첫사랑, 친구, 연인도 아니다. 친구는 맞지만 사귄 사이는 아니고, 남이라고 하기에는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난다. 대체 이 관계를 뭐라고 정의해야 하냐, 그걸 해석하는 단어가 인연이었다. 아서와 해성의 사이도 마찬가지다. 나영을 사이에 둔 어떤 관계다. 적도 친구도 남도 아닌, 한 단어로 정해주어야 했다. 그래서 영화에 인연의 뜻을 모르는 관객을 위해 친절히 설명하는 장면이 삽입되어 있는 거다."
 
-북미나 세계적인 반응이 심상치 않은데, 한국과 감성과 문화가 달라서 생기는 호기심일까. 
"북미에서 공부하고 자랐던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누구나 공감할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겉으로 봐서는) 이민 이야기 같지만 나이 먹고, 다른 언어도 배우고, 이사를 가거나 직장을 옮기면서 일어나는 일들이 이민자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전 세계 영화제를 돌면서 수많은 첫사랑 이야기를 들었다(웃음). 한 아일랜드의 관객은 글래스고에서 사는데 더블린에 두고 온 연인이 생각난다며 울더라. 어떤 관객은 영화를 보고 나니 연인에게 고마움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함께 해서 행복하고 같이 늙어가는게 기대된다는 사람, 관계를 더 깊게 만들어 주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살아서 자주 못 보던 상대가 문득 생각나서 비행기 티켓을 샀다는 관객도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이번 생은 아니라며 관계를 정리한 사람도 있었다(웃음).
 
"어른과 아이의 모순이 담긴 얼굴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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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태오의 극 중 배역은 전형적인 한국 남성이다. 그를 캐스팅한 이유가 궁금하다.
"둘 다 오디션 테이프를 보고 캐스팅하게 되었다. 300명 중 30명을 추려 2차 오디션을 했다. 그중에서도 태오씨가 가장 좋았다. 정체성이 중요하지만 어른과 어린아이가 공존하는 얼굴이어야 했다. 어른인 저에게 12살의 아이는 이제 없지만 과거 12살의 저는 엄연히 존재했다. 잊고 살다가 12살을 기억하는 사람과 대화하다 보면 12살 아이가 살아나는 모순이 중요했다. 참고로 해성 역에 장기하씨가 오디션을 봤었다. 이후 친분이 생겨 해성의 친구 역을 제안했고 출연하게 되었다."
 
- 3시간 반 동안 온라인 오디션을 하면서 어떤 대화를 나눈 건가.
"배역 이야기도 했지만 신을 읽어 보라고 했다. 사실 변화 가능성을 테스트해 보는 자리였다. 2차 오디션 30명 중 태오씨가 마지막이었다. 제가 느낀 첫인상이 맞는지 알고 싶었다. 시간에 쫓겨 마음에도 없는 배역을 찾은 건 아닌지 확인해야 했다. 이것저것 부탁했더니 3시간 반이 지나 있었다. 해성은 말없이 표정으로 감정을 표현해야 했다. 작은 감정도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사람이라. 저와 함께 벼랑 끝에 갈 수 있는지, 함께 할 수 있는지 보려고 했다."
 
-해성을 연기한 유태오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남성 자체였다. 디렉션 주안점이 궁금하다.
"둘의 관계를 앞서 본 관객은 해성이 24년 만에 나영을 만나러 왔으니 멋있게 기다리길 바랐겠지만 저희는 잔인하게 만들었다(웃음). 초조한 마음을 가진 어린아이같이 보이도록 했다. 일부러 셔츠는 크고 바지는 작게 입혀 언밸런스를 부각했다. 태오씨가 실제 불편해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왔다(웃음). 일부러 둘이 재회하는 장면을 찍기까지 악수도 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분리했다. 내내 스킨십이 없다가 처음으로 포옹하는 장면이 공원에서 만나는 장면이다. 그 장면을 찍을 때 여태까지의 감정이 겹쳐지도록 유도했다. 어린 시절에는 손도 잡고 놀았지만 성인이 돼서 만나자 서로 바라보기만 한다. 낯설고 어색한 순간을 그대로 담기로 했다."
 
-대본을 직접 쓰고 배우가 캐스팅되면서 달라진 지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달리진 점은 없었지만 마지막에 첨부한 장면은 있다. 아서와 나영의 침실 대화 장면이다. 나영과 해성의 사이에 아서가 등장하자 관객은 그를 환영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아서를 연기한 존 마가로와 이야기 나눈 끝에 아서를 좀 밀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침대에서 진솔하게 대화하는 장면을 넣어서 아서가 나영을 사랑하는 마음을 (관객이) 이해하도록 했다. 오랜 신뢰 관계일 경우 사랑이라는 표현을 넘어서는 어떤 것,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게 있다."
 
"어린 시절의 나와 작별 인사"
      
-나영의 눈물은 어떤 마음을 의미하나. 두 사람이 우버를 기다리러 가는 롱테이크 장면이 인상적이다.
"눈물은 한국에 두고 온 12살 아이를 떠나보내는 마음이다. 해성이 뉴욕에 와서도 아직 12살의 나영을 종종 이야기한다. 어릴 때 노벨상 타고 싶어 했는데 지금은 어떤 상을 타고 싶냐고 묻는다. 욕심 많았던 12살이 이제는 아닌데. 그 말이 나영을 불편하게 한다. 마지막 장면의 길은 시공간의 타임라인을 의미한다. 45m 트랙을 깔아 수평으로 카메라를 움직였다. 현재에서 과거(왼쪽)로 해성과 나영이 걸어간다. 2분을 기다리고 우버가 해성을 과거로 데려간다. 그때 뉴욕의 바람이 우리를 기적처럼 도와주었다. 나영의 치마가 바람에 날려 과거 쪽으로 펄럭인다. 하지만 바람을 거슬러서 현재와 미래가 있는 집(오른쪽)으로 향한다. 그 끝에는 아서가 서 있다. 해성이 공항에 가는 장면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향한다. 해성도 과거를 털고 미래로 나아간다는 설정이다. 그래서 셋 다 해피엔딩이다."

-우정과 사랑의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두 사람은 이후 정말 만나지 않았을까.
"대사처럼 다음 생에나 만나겠지(웃음). 엔딩 크레딧 후 마지막에 나오는 노래가 둘이 스카이프에서 재회할 때 음악이다. 일부러 그 음악을 넣어 다음 생에 만났을 거라고 상상하게 했다. 우정과 사랑의 차이는 없는 것 같다. 연애는 기승전결이 있지만 인간과 인간 대 사랑은 여러 형태기 때문이다. 친구와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이해하는 관계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차기작도 한국적인 것, 디아스포라적인 이야기인지 궁금하다.
"어떤 소재든 저를 쏟아부어야 한다. 그래야 밥 안 먹고도 신나서 작업에 올인한다. 좋아서 하는 일이어야 하고 마음에 들어야 한다. 다음 작품도 저만의 것, 자전적인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다. 자세한 건 그 영화를 만든 후 다시 와서 대화하고 싶다. 그때 또 만나자!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