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보성 어부 살인사건'은 당시 어부 오모씨가 전라남도 보성으로 여행을 온 젊은이들을 속여 자신의 배에 태운뒤, 여성에게 성추행을 시도하다가 바다에 빠뜨려 살해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칠순의 힘없고 평범해보이던 노인이 자신의 욕망을 위하여 무고한 젊은이들을 4명이나 잇달아 잔혹하게 살해한 이 사건은, 일반적인 성범죄-살인범죄나 가해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며 전 국민들에게 더 큰 충격을 안겼다. 또한 이 사건은 사형제와 '노인범죄'의 현실을 재조명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과연 70대 어부는 왜 20대 청년들을 살해했으며, 그 죄의 댓가를 어떻게 치렀을까.

미궁에 빠진 사건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의 한 장면.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의 한 장면. ⓒ SBS

 
 
2월 29일 방송된 SBS 실화 스토리텔링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노인과 바다'편을 통하여 보성 어부살인사건의 진실과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조명했다.
 
2007년 9월, 한 가족이 추석을 맞아 보성으로 전남 여행을 떠났다. 남편은 오토바이를 타고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차를 타고 뒤따르던 중 남편과 길이 엇갈렸다. 하필 아내에게는 연락할 휴대폰도 없었던 상황. 당황한 아내는 마침 근처를 지나던 여성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휴대전화를 빌려서 다행히 남편과 연락이 닿을 수 있었다.
 
다시 만난 부부는 도움을 준 여성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헤어졌다. 그런데 5분도 안되는 서로의 짧은 만남이, 부부에게 평생 기억에 남는 일이 될 줄은 이 때만 해도 아무도 몰랐다.
 
집으로 돌아가던 중, 남편의 휴대전화로 이상한 문자 메시지가 도착한다. 방금 전 만난 여성의 번호로 보내진 문자 메시지에는 "배타다 갇힌 것 같아요. 경찰 보트 좀 불러주세요"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심상치않은 상황을 직감한 부부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리고 여성들에게도 다시 메시지와 통화로 거듭 연락을 시도했지만 받지않았다. 부부는 밤새 경찰서에 계속 연락을 취하며 여성들의 소식을 확인했다.
 
다음날 부부에게 경찰서로부터 출석해달라는 연락과 함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진다. 부부에게 구조 요청을 한 두 여성 중 한 명의 시신이 바다에서 발견되었고 한 명은 여전히 실종 중이라는 것이었다.
 
부부는 피해 여성들을 어디에서 만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최대한 자세하게 진술했다. 당시 부부는 여성들에게 터미널까지 태워주겠다고 제안했으나, 그녀들은 배를 타러 갈 예정이라고 밝히며 사양했다고 한다.
 
부부의 6살 어린 딸은 선착장에서 작은 배가 들어오던 모습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아내도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해당 배가 선실이 딸린 '소형 어선이었고, 피해 여성들이 "마음씨 착한 할아버지가 배를 태워 준다고 했다"고 이야기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이를 단서로 경찰은 해당 어선과 노인의 정체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실 이 풍광 좋고 평화로운 마을에서 끔찍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바로 얼마 전 비슷한 사건이 또 있었던 것이다. 사건 한 달 전쯤 대학교 1학년 신입생 남녀 커플이 여행을 왔다가 연락이 두절되었고, 얼마 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커플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포착된 인근 CCTV에는 두 사람이 선착장으로 향하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커플이 함께 배를 타러 갔을 가능성이 높은 결정적인 증거였다. 당시 커플 중 여학생으로부터 119에 4차례나 전화가 걸려왔다. 하지만 엔진 소음 소리만 가득 담겨있던 통화는 구조 요청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두 사람은 며칠 후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고 말았다.
 
여성 2명이 실종된 2차사건까지 포함하여 짧은 기간에 같은 지역에서 3명이 바다에서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된 것이다. 경찰은 연쇄 살인사건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주변을 탐문한 끝에 사건 당일 오전과 오후에 정박 위치가 바뀐 단 한 척의 배를 찾아냈다. 해당 어선에서는 피해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머리카락 수십 가닥과 머리끈, 그리고 전화를 빌려준 여성 중 한 명의 신용카드가 발견됐다.
 
경찰은 곧바로 배의 주인을 체포했다. 용의자는 70대 남성인 어부 오 씨였다. 그는 얼핏봐도 나이들고 체구도 왜소해보이는 평범한 노인이었다. 오씨는 살인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는 2차사건의 피해여성들을 배에 태워준 사실은 인정했지만, 여성 한 명이 소변을 본다고 선수 쪽으로 이동하다가 바다에 빠졌고 이를 도우려던 친구가 같이 빠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1차 사건의 피해자들은 아예 본 적도 없다고 발뺌했다.
 
당시 사건 담당 검사였던 윤진섭 변호사는 피의자가 범인임을 직감했지만, 본인이 강하게 부인하는데다가 결정적인 범행 증거가 아무 것도 없어서 "기소하기가 요원하겠구나"라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동안 2차 사건의 실종자였던 또 다른 피해 여성이 바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되며 사망자는 네 명으로 늘어났다. 경찰은 오씨의 자백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서울경찰청에서 당시 범죄행동분석팀 팀장이었던 권일용 프로파일러를 긴급 투입했다.
 
권일용은 경찰 신문을 받는 오씨의 태도를 유심히 주시하며 관찰했다. 권일용은 피의자가 현실적 인지능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오 씨는 권일용과의 대면에서 본인이 "힘없는 노인"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며 "내가 어떻게 젊은이들을 죽일 수 있냐"고 강조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실제로 피해자 4명은 모두 젊은이들이었고 심지어 그 중 한명은 건장한 남학생이었다. 경찰로서는 젊은 피해자들이 어떻게 70대 노인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입증하는게 관건이었다.
 
권일용은 현장 상황을 재구성하여 진실을 규명해냈다. 권일용은 마을 주민과의 대화를 통하여 오씨의 배 같은 소형 어선들을 두고 "저런 배를 한번 타고 바닷가에 나가서 출렁거리기 시작하면, 장정들도 거의 서 있지 못할만큼 위험한 배"라는 중요한 사실을 파악했다.
 
심신미약 주장한 노인

오씨는 비록 노인이지만 평생 어부로 살아오며 배에서 지내는게 익숙했고, 출렁하는 바다 위에서도 활동이 자유로웠다. 하물며 범행 당시에는 아무도 도와줄 이가 없는 망망대해 한복판이라는 절대적으로 오씨에게 유리한 환경에 놓여있었다.
 
반면 피해자들에게는 아무리 젊고 건장해도 익숙하지않은 배 위에서는 행동이 제약되고 공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범죄자가 이용한 도구는 '상황'이다. 바다 위의 배라는 상황 자체가 범행 도구"라는 것이 권일용이 내린 최종 결론이었다.
 
긴급체포 3일만에 오 씨는 결국 모든 범행을 인정했고, 1차 사건까지 본인이 한 짓이라고 자백했다. 그렇다면 일면식도 없는 청년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이유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오씨가 밝힌 범행 목적은 다름 아닌 성추행이었다. 오씨는 "아가씨의 유방을 좀 만져보고 싶었다"고 어처구니없는 범행 이유를 자백했다.
 
1차 사건 당시 오씨는 남성을 먼저 바다로 밀어버렸다. 그리고 여성에게 성추행을 시도하려다가 거부하고 119에 신고하려는 여성마저도 몸싸움 끝에 바다에 빠뜨렸다. 심지어 어떻게든 배를 잡고 다시 올라오려는 피해자들을 배안에 부표 등을 건져올리는 도구로 사용되던 갈고리 장대와 다른 도구들을 이용하여 잔인하게 내려치기까지 했다.
 
피해자들의 시신은 하나같이 곳곳에 찔리고 찢긴 상처와 골절이 있는 등 처참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당시 이를 확인한 윤 검사는 "영혼이 멍드는 느낌"이었다고 고백하며 씁쓸해했다.
 
하지만 검찰은 정작 오씨를 기소할 수 있을지 내심 걱정이 컸다. 문제는 살인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피해자의 신용카드가 발견되어 최소한 배에 탔다는 사실이 입증된 2차 사건에 비하여, 1차 사건은 언제든 번복될 수도 있는 오씨의 자백 외에는 피해자들과 연관되었음을 입증할 증거가 전무했다.
 
당시는 엄중한 과학수사와 객관적 증거를 강조하는 분위기였고 만일 법정에서 오씨가 말을 바꿔버리면 이전에 경찰과 검찰 조사에서 있었던 자백은 효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유가족들은 증거부족으로 오씨에 대한 기소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소식에 눈물만 흘리며 비통한 심경을 감추지못했다고 한다.
 
사람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든 것은, 오씨가 자신이 저지른 범행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오씨는 피해자들이 주꾸미를 좋아해서 자신의 배에 승선시켜줬고, 문득 가슴을 만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오씨는 "가슴 한번 만지게 해주면 되지, 왜 거부를 해서 죽냐"고 피해자를 탓하는가하면, "서로 죽이고 죽으라는 팔자로 태어났다보다"라는 망언을 하기도 했다.
 
윤 검사는 오씨에 대하여 "인간으로서의 양심이나 도덕관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인물"이었다고 회상했다. 오씨의 범죄특성을 분석한 전문가는 그를 철저한 '쾌락추구형 범죄자'로 분류했다. 오씨는 피해자들을 자신의 성적인 쾌락과 만족을 얻기 위한 도구로만 생각했고, 그로 인하여 언제든 살인까지 거리낌 없이 저지를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
 
증거 부재로 애를 태우던 수사팀에게 결정적인 전환점이 찾아온다. 피해자의 119 신고 녹취 속에 남아있던 배의 엔진 소음을 토대로, 해당 배가 오씨의 것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단서를 찾게 된 것.
 
수사팀은 119 신고 당시와 동일한 상황을 만들어 배의 엔진 소리를 녹음하는 식으로 수십 개의 데이터를 모았다. 배의 엔진 소리는 비슷해보이지만 배마다 다르게 나타난다고 한다. 국과수에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단 한 대의 엔진 소리가 구조 요청 녹취 속 엔진 소리와 90% 이상 유사성이 있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그것은 바로 피의자 오씨의 배였다.
 
또한 기소를 7일 앞두고 1차 사건 피해 여학생의 부친을 통하여 딸이 항상 가지고 다니던 '디지털카메라'의 존재가 드러났다. 증거물 목록에서 피해자의 디지털카메라는 발견되지 않았고 피해자와 바닷속에 추락할 때 함께 가라앉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도 검찰은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만일 현장에서 디지털카메라가 발견되면 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불과 다음날에 해당 디지털카메라를 찾았다는 경찰의 연락이 전해졌다. 인근에서 바지락을 채취하던 어선의 어망에 디카가 걸려들어왔다는 것이다. 믿기힘든 기적같은 소식에, 윤 검사는 문득 원통하게 생을 마감해야했던 피해자들을 떠올리며 "혹시 그 아이가 보내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해수에 무려 50일이나 잠겨있던 디지털카메라는 국과수에 보내며 험난한 복구 작업을 거쳐야했고, 기소 당일에야 극적으로 모든 데이터 복원이 완료됐다. 그 안에는 행복하게 웃으며 여행을 즐기는 젊은 커플의 마지막 모습들이 담긴 사진들을 여러 장 발견되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리고 거의 마지막 사진에서는 범인 오씨와 그가 몰고있는 배의 모습도 포착됐다. 마침내 피해자들이 오씨의 배에 탔다는 확실한 증거가 발견된 것이다.
 
또한 윤 검사는 법정에서 오씨가 피해자들에게 주꾸미를 잡아줬다고 주장하는 것을 이용하여 함정 신문을 펼쳤다. 윤 검사가 일부러 "피해자들 위 속에는 주꾸미가 없는데 왜 계속 주꾸미를 잡아줬다고 거짓말을 하냐"라고 묻자, 이에 낚인 오씨는 "거짓말 아니다. 다들 정말 좋아하면서 맛있게 먹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결국 스스로 피해자들을 자신의 배에 태웠다는 것을 자백한 꼴이었다.
 
피의자의 자백에 객관적 증거들까지 모이며 1심에서 오씨에게 사형이 선고되었다. 그러나 오 씨는 이에 불복하고 항소했고 심지어 '사형제가 위헌'이라는 위헌 법률 심판 제청신청까지 하는 뻔뻔한 모습을 보였다. 오씨는 재판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당시 피해자의 복장 탓을 하면서 책임을 전가하는가하면, 자신이 힘든 인생을 살아왔고 늙어서 몸도 아프다며 심신미약을 호소하는 등, 여전히 반성보다는 자기 합리화에만 바빴다.
 
결국 오씨에게는 최종적으로 사형판결이 내려졌다. 헌법재판소 역시 사형은 합헌이라고 판결하며 오씨의 신청을 기각했다. 하지만 사형은 아직 집행되지 않았다. 꽃다운 청춘 네 사람의 목숨을 앗가간 현재 오 씨는 아직도 목숨을 부지한채 최고령 사형수로 수감 중이다.
 
 이 사건은 흔히 범죄의 대상이자 피해자로만 인식되던 '노인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우리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고령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노인 범죄'는 이제 우리 사회에 던져진 새로운 숙제가 됐다.

대문호 톨스토이는 "착한 일을 힘쓰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나쁜 일을 하지않으려고 힘쓰고 애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는 격언을 남겼다. 사람의 본성은 과연 선한가 악한가에 대한 논쟁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선과 악은, 결국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달린 것이 아닐까.
 
꼬꼬무 보성어부살인사건 실화 노인범죄 사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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