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민 감독

김다민 감독 ⓒ 판씨네마(주)

 
2월 22일 필동 판씨네마에서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김다민 감독과 만나 영화를 향한 애정과 다양한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인생 권태기 11살 동춘이와 말하는 막걸리의 판타스틱한 우정과 모험을 그린 성장 드라마다.
 
김다민 감독은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에서 영상 연출을 공부하며 단편 <미열>(2009)로 제12회 한국청소년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일찍이 두각을 보였다. <억수>(2012), <수면>(2013)을 연출하며 단편 <웅비와 인간 아닌 친구들>(2020)로 국내외 영화제에 초청되었다.
 
이후 동명의 단편 소설을 담은 앤솔로지 <영어로 뭐게요 대머리가>(2021)를 출간했고, 이를 장편 시나리오로 옮기며 2020년 하반기 경기 시나리오 기획개발지원 대상을 받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살인자o난감>의 각본까지 쓰며 멈추지 않는 이야기꾼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중학교 때부터 영화에 관심이 있었지만 영화를 하게 된 계기는 특별했다.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 것도 만화와 영화 둘 다 좋아서였다. 학교에서 영상연출을 배우며 영화감독이란 꿈에 다가갔다. 그때도 영화를 좋아한다고 당당히 말했던 건 만화보다는 실현 가능성이 더 있어 보였다고 했다. "만화를 좋아한다고 하면 커서 만화가가 될 거냐고 물어보더니,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영화감독이 꿈이냐고 물어봤다"면서 영화만의 아우라가 멋있었다고 수줍게 대답했다.
 
많은 장르 중에 SF로 풀어낸 이유도 맞닿아있었다. 실험적인 허용이 가능한 장르이기 때문이었다. 물리, 우주, 생물 같은 1차 과학기술만이 아닌, SF 테두리 안에서 시도되는 상상력을 즐겼던 아이였다. 그 아이는 커서 자기가 꿈꾸던 영화를 직접 쓰고 만드는 작가 겸 감독이 된다. 김다민 감독을 주목해야 할 이유다.

"주민센터에서 배운 막걸리에서 아이디어"
  
 영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스틸컷

영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스틸컷 ⓒ 판씨네마(주)

 
-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연관성 없는 것의 아이러니다. 어린이, 막걸리, 페르시아어, 모스부호, 우주까지 연결하며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을 던진다. 발효식품 중에서도 유독 막걸리였던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영화 연출부를 하던 중 몇 개월 쉬게 되었다. 종종 동네 구청 홈페이지 둘러보는 게 취미가 되었다. 내성적이지만 호기심은 많은 편이라 새로운 수업이 개설되면 등록한다. 그때 전통 막걸리 제조 수업을 들었다.
 
순전히 '처음'이라는 이유였지만 배워보니 재미있었다. 멀리 나가지 않고도 동네 주민들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였다. 영화 만들거나 창작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서 좋았다. 무엇보다 막걸리 제조 하나만 신경 쓰게 되니까 스트레스도 풀리더라. 막걸리를 집에 가져와서 오래 두고 관찰하다 보니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막걸리는 어른들이 좋아하는 술이니까. 아이를 주인공으로 붙이면 재미있는 조합이 될 거라 생각했다.
 
페르시아어도 배웠던 경험을 녹인 거다. 동춘의 입장에서 봤을 때 최대한 일상과 떨어져 있는 것, 어순이 달라서 배우기도 쉽지 않은 언어였다. 모스부호도 나라마다 다르다는 걸 알고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다양성 영화의 지원과 흥행이라는 선순환 구조여야 건강한 생태계지만, 한국영화계 현실은 참으로 혹독하다. 독특한 소재와 결말이라 투자 받기 쉽지 않았겠다.
 
"아이가 주인공이고 엔딩이 파격적이다 보니까 그 언밸런스함이 제작과 투자에 크게 작용했다. 이 작품은 이 작품 그대로 재미있으니까 다른 작품을 해보자는 곳도 있었다.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예전에 연출부로 일한 <레슬러> 제작사였던 안나푸르나 대표님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어렵게 제작에 들어갔고 크라우드 펀딩으로 지금까지 왔다. 이런저런 시도하면서 스케일을 키워 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결국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의 원형이 점점 없어져서 포기했다. 그때 지원받을 수 있는 공공기관의 문을 여러 곳 두드렸고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 단편 소설, 영화 장편 시나리오, 시리즈 시나리오, 영화제작사 구하기 등 데뷔까지 바쁜 몇 년이었겠다.
"소설과 시나리오를 동시에 썼다. 단편 소설에서 장편 시나리오로 발전해 나갔다. <살인자o난감>은 경기 시나리오 기획개발이 끝나고 의뢰가 들어왔다. 여전히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제작사를 찾던 중이었는데 생계 해결도 할 겸 참여하게 되었다. 두 가지가 서로 장르나 소재도 다르지만 건강식만 먹다가 라면도 먹는 것처럼 상호보완하면서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었다"
 
- <살인자o난감> 시나리오 작업과 <막걸리가 알려줄거야>의 작업은 전혀 달랐다고 봐야하나. 힘든 점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살인자o난감>은 오래전에 재미있게 본 웹툰이라 현 상황에 맞게 공감할 부분을 넣어야 했다. 20대 남자인 이탕 캐릭터를 구체화하는 게 목표였다. 원형을 유지하면서도 철학적인 부분을 더 넣고 싶었다. 또한 그 사이 사적 복수를 소재로 한 사이다 콘텐츠가 많이 나왔기 때문에 이와 다른 장르적 재미와 계속 찝찝한 부분을 살리려고 했다. 좀 다르게 풀어내고 싶었다.
 
쓰는 스트레스보다는 전혀 다른 장르라 재미있었다.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라면 현실적으로 어려울 장소 헌팅부터 재정적인 부분에 구애 없이 상상력을 발휘하고 해소할 수 있었다. 둘 다 시나리오를 썼지만 지인들은 <막걸리가 알려줄거야>가 훨씬 저다운 이야기라고 말해주더라."
 
 영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스틸컷

영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스틸컷 ⓒ 판씨네마(주)

   
- 한국 제목은 의뭉스러움이 드는 '판타지' 같은데 영어 제목 FAQ는 명확한 '다큐멘터리' 같다.
"동춘이 질문을 많이 하니까. (웃음) FAQ의 뜻인 자주 묻는 말처럼. 답을 못 듣다가 드디어 납득할 만한 답을 듣고, 스스로 내린 자신만의 정답이라 볼 수 있다. 처음부터 뻔뻔한 해피엔딩이었다(웃음). 지금까지 학습한 모든 것이 대학이라는 너무 큰 목표의 준비 과정이라고만 여겼는데 아닌 거다. 나사(NASA) 가서 우주인 훈련했던 것처럼 납득할 만한 목표라고 생각하니 기쁜 거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딱 맞아떨어지는 현실적인 정답을 얻은 거다. 막걸리가 알려주는 번호가 하필이면 로또 4등인 것도 막걸리 제조의 돈이라는 현실적인 이유였다."
 
- 이름에 관한 다양한 은유를 숨겨 놓은 것 같아 재미있다. 마치 이스터에그를 찾는 숨바꼭질 같다. 소설에는 선인장 동선과 막걸리도 동막이란 이름이 있더라.
"주인공 '동춘'의 이름을 두고 여러 해석을 즐겨주셔서 신기하다. 정확히는 막걸리 수업을 듣던 평생학습센터가 있던 곳이 인천 동막, 동춘역 근처라는 사소한 이유였다. (웃음) 영화 속에서 이름을 쓰지 않은 건 제목의 막걸리를 더 빨리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 '원'에 대한 메타포가 많다. 탄산 기포, 동춘의 눈, 생수통 구멍, 웜홀, 동전, 신호등 앞 볼록 거울 등도 의도된 건가.
"맞다(웃음). 덧붙이자면 미생물이나 세상도 동그란 모양이다. 시작과 끝이 반복되는 원은 웜홀이 시작이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동춘이 새벽 4시에 암호 풀 듯 각성하고 엄마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장면이 있다. 그때 엄마는 과거 산후우울증을 고백하는 동시에 이인삼각 경기에 비유해 육아의 보람을 설명한다. 동춘의 어리둥절한 표정이 엄마 눈 속에 비친다. 벗어나려고 하면 엄마가 동공(원)으로 끌어오는 게 하나로 이어지는 메타포다. 갇힌 건지, 벗어난 건지, 드러난 건지. 의문스럽도록 연출했다."
 
- 단편 <웅비와 인간 아닌 친구들>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에 초청되었다. 꾸준히 아이의 시선에서 상상의 친구(털북, 숭이), 외계인 등. 인간 아닌 존재를 주목한다.
"아이가 주인공일 때 서로 다른 존재의 만남이 친구처럼 보였으면 했다. 웅비가 만난 까만 그것(이름은 장발)도 스타워즈 츄바카 같은 외형의 인형처럼 만들었다. 상상의 친구 털북숭이도 친근해서 안고 싶은 무해한 존재로 그려내고 싶었다."
 
- 주인공 박나은 배우 성격이 그대로 동춘인 것 같아 신기했다.
"약간 뚱한 표정에도 많은 느낌이 들어있었다. 스태프들도 귀여워했었다. 말수가 많지 않지만 하고 싶은 말은 똑 부러지게 하는 성격이었다. 싫고 좋고가 분명한 게 동춘과 닮았다. 대화보다는 서로 그림을 그려 주면서 친해졌는데 둘 다 내성적이라 재미있게 촬영했다."
 
"인생은 끊임 없이 질문을 주고 받는 일"
 
 김다민 감독

김다민 감독 ⓒ 판씨네마(주)

 
- 동네 아저씨인 줄 알았던 삼촌(이희원)은 단편 소설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삼촌 영진과 엄마 혜진(박효주)의 대비도 형성된다.
"가족관계의 역동성을 주고 싶었다. 영진의 등장으로 혜진의 완벽한 통제에 균열이 생긴다. 영진과 혜진은 대립하는 존재이면서 각자의 딜레마가 있다. 혜진은 오빠와 은근한 차별을 받으며 자랐다는 전사가 있었다. 장학금을 놓치지 않고 대기업에 입사해 높은 연봉도 받았던 거다. 어렵게 성취한 과거를 뒤로하고 산후우울증으로 다른 길을 가게 된다. 도태라는 단어를 쓰면서 아이, 경력도 멈춰 마냥 갇혀 있는 기분을 느낀다. 이것저것 시키는 것도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동춘이 살았으면 하는 응원이지만 '이렇게 살아도 될까?'라는 끊임없이 자문의 연장선이다."
 
- 서울대 나와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가족과 모든 것을 버리고 자연인이 된 영진은 어쩌면 동춘의 미래처럼 보이기도 했다.
"영진의 전사는 착한 사람이었다. 엄마 말을 잘 듣는 착한 아들이었지만 어느 순간 넘쳐서 방황하게 된 사람이다. 완전히 다른 길이 선택했는데 여전히 잘 모르겠는 상황인 거다. 정신 차려 보니 치매에 걸린 엄마는 동생에게 떠민 격이었고 돈도 없다.
 
그래서 삼촌은 중요한 캐릭터다. 동춘은 삼촌과 닮아 긴장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동춘의 세상에서 멀쩡하다고 믿는 부모님이 아닌 자유로운 어른을 처음 봤던 거다. 삼촌을 만나 명확한 해답이 아닌 고민을 얹어 준 격이다. 삼촌 같은 어른을 보고 마지막 선택에도 영향을 미친다.
 
'어떻게 살아야 하지' 고민은 깊어졌고 동춘이 부모님을 벗어나서 길거리를 달리는 장면으로 상징화된다. 그때 학원 마친 고등학생, 술 먹다가 비틀거리는 어른들이 지나간다. 정답이라고 믿는 길에서 벗어나 다른 길을 가는 동춘 옆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평범한 미래가 펼쳐지며 대비를 주고 싶었다."
 
- 김희원은 시나리오를 보고 "아이들에게 상상력과 창의력을 길러주지 못하는 교육 문화와 그런 교육을 받고 가치관을 형성한 기성세대의 비겁함에 대해 생각하는 너무 좋은 시나리오"라고 했다.
"나중에 영진만 따로 떼서 스핀오프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 영진 자체를 좋아해 주셨다. 춤도 열심히 준비해 오셨는데 현장에서는 죄송하지만 오쇼의 쿤달리니 명상춤을 배우셔야 했다. 격정적으로 잘 춰 주셔서 재미있는 장면이 나오게 된 거다."
 
- 동춘은 멍 때리기를 명상이라며 즐긴다. 태권도를 그만두지 않은 것도 명상을 핑계로 멍 때릴 수 있어서였다. 그때마다 들판에서 털북, 숭이가 등장해서 도움 주는 장면도 흥미롭다.
"사실 동춘이 하는 건 명상이 아니라 공상이다. 털북, 숭이는 영어 말하기 대회 때 생긴 트라우마의 결과물이다. 동춘이 잘 적응할 수 있게 돕는 상상의 친구다. 세상에 적응하려면 질문하지 말라고 조언해 주다가 페르시아어 말하기 대회에서 극복하면서 사라진다."
 
- 영화 속 대사처럼 문제를 알면 답이 보이는 걸까? 마음을 후벼 파는 촌철살인 대사다.
"왜 이래야 하는지의 내내 정답을 주지 않고 질문이 계속된다. 한 가지에 매몰되면 오히려 질문을 까먹게 되지 않나? 영화를 통해 계속해서 해소되지 않는 질문을 찾아가는 여정이고 싶었다. 동춘이 마침내, 자신만의 답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 모두가 같은 길을 가야만 하는 건지 의문이다. 한국 교육의 획일화, 잘못된 점을 꼬집는다는 의견도 있다.
"영화를 통해 교육 문제를 다루겠다는 의도는 없었다. 지금의 교육 방식에 적응하는 아이도 있을 거고 벗어나는 아이도 있을 텐데 똑같은 교육과정을 따라가야 하는 가혹함이 안타깝다. 아이들의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원하는 것 못지않게 원하지 않는 것도 물어봐 주길 바란다.

애니메이션 고등학교 재학 당시 교복도 없이 자유롭게 생활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우리 졸업하고 뭐 하지',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건가', '과연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까'를 동시에 고민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졸업하면, 대학교 가서 똑같은 고민을 하고, 사회 가서도 마찬가지더라."
 
- 유년 시절 교과서에 없는 정답을 재치 있게 쓰는 초등학생, 동춘처럼 질문 많은 학생이었을 것 같다. 기발한 상상력의 원천은 어디인지 궁금하다.
"저는 질문보다는 공상이나 혼자 대답을 많이 했던 편이었다(웃음). 염세적인 인간이었다. 그러다가 대학에서 심리학과 문화인류학을 배워보니, 인간을 알아가고 싶은 호기심이 커졌다. 문화인류학은 지역이나 특정 직업 등 현장에 들어가서 총합하는 학문이라 다큐멘터리와 맞닿아 있더라.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배우는 접근 방식도 마음에 들었다. 아마 그 연장선이 주민센터나 평생학습관을 기웃거리면서 뭔가를 배우고 사람들을 사귀는 연장선 같다. 그러면서 여러 소스를 얻는다. 요즘은 동네 바둑학원에 다니다가 온라인으로 과외를 받고 있다. (웃음) 바둑에 관한 격언도 많고 웃긴 말도 많아서 재미있게 배우고 있다."
 
- 곧 바둑 영화가 나온 건 아닌지 기대하겠다(웃음). 마지막으로 준비 중인 작품이나 앞으로의 행보가 들려달라.
"작년부터 준비하고 있는 OTT, 시리즈가 몇 편 기획 개발 단계다. 아마 시리즈가 속도가 붙으면 가장 먼저 나올 것 같다."
막걸리가알려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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