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박찬욱, 봉준호 감독처럼 만드는 영화마다 관객들의 찬사를 받으며 큰 화제를 몰고 다니는 감독들도 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감독들은 관객들의 극찬을 받는 영화를 만들었다가도 차기작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실망스러운 작품을 선보이기도 한다. 네덜란드 출신 폴 버호벤 감독도 후자에 해당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버호벤 감독은 1987년 새턴상 시상식 SF영화상을 수상했던 <로보캅>을 연출하며 할리우드에서 본격적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90년 소설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를 원작으로 만들었던 아놀드 슈왈제네거 주연의 <토탈리콜> 역시 SF영화의 걸작으로 평가 받으면서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버호벤 감독은 1995년 <쇼걸>과 2000년 <할로우맨>의 참패로 명성에 금이 가면서 유럽으로 돌아갔다.

버호벤 감독은 잔혹하고 선정적인 연출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전성기 시절에는 상업적으로 재미 있는 영화를 만들면서도 작품 속에 사회풍자를 잘 녹여내는 감독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버호벤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활동했던 기간 동안 가장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했던 영화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로보캅>도 <토탈리콜>도 아니었다. 바로 샤론 스톤이라는 1990년대 최고의 섹시배우를 탄생시킨 에로틱 스릴러 <원초적 본능>이었다.
 
 <원초적 본능>은 국내에서도 엄청난 화제를 일으키며 서울에서만 97만 관객을 동원했다.

<원초적 본능>은 국내에서도 엄청난 화제를 일으키며 서울에서만 97만 관객을 동원했다. ⓒ (주)동아수출공사

 
아카데미 작품상-남우주연상 휩쓴 배우

지난 1944년 할리우드의 원로배우 고 커크 더글라스와 역시 배우로 활동했던 고 다이애나 딜 사이에서 태어난 마이클 더글라스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드라마를 전공했다. 그리고 22세가 되던 1966년 아버지 커크 더글라스가 출연한 전쟁 영화 <팔레스타의 영웅>에서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배우로 데뷔했다. 그리고 3년 후 <헤일, 히어로>를 통해 골든글로브 신인상 후보에 오르며 할리우드에 안착했다.

1975년 밀로스 포먼 감독이 연출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제작하며 아카데미 작품상을 들어올린 더글라스는 1980년대부터 배우활동에 전념하며 할리우드에서 입지를 넓혔다. 1983년<이중함정>과 1987년 <위험한 정사> 등에 출연한 더글라스는 같은 해 올리버 스톤 감독의 <월 스트리트>에서 '탐욕은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고든 게코를 연기하며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 배우로서도 정점을 찍었다. 

1989년 대니 드비토 감독의 <장미의 전쟁>과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랙 레인>에서 상반된 매력을 보인 더글라스는 1992년 에로틱 스릴러 <원초적 본능>에 출연했다. 더글라스는 <원초적 본능>에서 캐서린 트러멜(샤론 스톤 분)이라는 살인용의자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는 강력계형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더글라스는 <원초적 본능> 이후 <폴링 다운>과 <대통령의 연인>,<폭로>,<고스트 앤 다크니스> 등 다양한 영화에 출연했다.

2000년대 들어 활동이 다소 뜸해진 더글라스는 2003년 코미디 영화 <위험한 사돈>에 출연했고 2010년에는 23년 만에 제작된 <월스트리트>의 후속작 <월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에서 오랜만에 고든 게코를 연기했다. 2015년부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합류한 더글라스는 초대 엔트맨 힝크 팸 역을 맡아 세 편의 <앤트맨> 시리즈와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출연하면서 70대의 나이에도 건재를 과시했다.

샤론 스톤의 인생을 바꾼 영화
 
 샤론 스톤의 취조실 장면은 국내외 각종 영화와 예능을를 통해 패러디됐다.

샤론 스톤의 취조실 장면은 국내외 각종 영화와 예능을를 통해 패러디됐다. ⓒ (주)동아수출공사

 
폴 버호벤 감독은 <원초적 본능>의 주인공 캐서린 트러멜 역에 <나인 하프 위크>로 유명한 당대 최고의 섹시스타 킴 베이싱어를 캐스팅하고 싶었다. 하지만 섹시배우 이미지를 벗으려 했던 베이싱어는 <원초적 본능> 출연을 일언지하에 거절했고 버호벤 감독은 그후 무려 13명의 배우들에게 출연제의를 했다가 거절 당했다. 결국 돌고 돌아 버호벤 감독의 전작 <토탈리콜>에 출연했던 샤론 스톤이 캐서린 역에 낙점됐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사실 <원초적 본능>은 개봉 당시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성소수자를 살인광으로 표현했다는 이유로 성소수자들에게도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개막작으로 선정됐던 칸 영화제에서도 외설시비에 시달렸던 <원초적 본능>은 49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 3억52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할리우드에서 다소 애매한 위치에 있었던 샤론 스톤은 <원초적 본능>을 통해 단숨에 세계적인 섹시스타로 도약했다.

실제로 <원초적 본능>에 등장하는 수위는 지금까지 그 어떤 상업영화에서도 보기 힘들었을 만큼 강하고 자극적이다. 특히 1980년대 <애마부인> 시리즈로 대표되는 저예산 에로영화에 익숙했던 국내 관객들에게 샤론 스톤이 선보인 노출 수위는 파격 그 자체였다. 샤론 스톤은 <원초적 본능> 개봉 후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원초적 본능>이 대단히 수위가 높은 영화인 것은 분명하지만 스릴러 영화로서도 꽤나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자극적인 부분만 강조한 것이 아니라 추리소설처럼 치밀하고 탄탄하게 짜여진 스토리는 관객들을 쫄깃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범인이 누군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함에도 끝까지 범인을 특정하지 않았고 열린 결말로 영화를 끝냈다는 점도 관객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반전의 키를 쥔 서브 여주인공
 
 <원초적 본능>에서 엘리자베스 가너를 연기한 진 트리플혼은 <원초적 본능>이 영화 데뷔작이었다.

<원초적 본능>에서 엘리자베스 가너를 연기한 진 트리플혼은 <원초적 본능>이 영화 데뷔작이었다. ⓒ (주)동아수출공사

 
마이클 더글라스가 연기한 닉 커렌 형사와 샤론 스톤이 맡은 살인용의자 캐서린 트러멜이 영화를 이끌어 가지만 <원초적 본능>에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캐릭터가 또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닉의 전 애인이자 경찰서의 심리 상담사 엘리자베스 가너였다. 영화 중반까지 남자주인공의 전 여친 역할에 충실하던 가너는 리사 호버맨이라는 본명이 밝혀지면서 메인 스토리에 등장한다. 하지만 가너는 자신을 범인으로 오해한 닉의 총에 맞고 세상을 떠난다.

<원초적 본능>에서 가너를 연기한 배우 진 트리플혼은 연극배우로 활동하다가 <원초적 본능>을 통해 영화배우로 데뷔했다. <원초적 본능>의 서브 주인공으로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트리플혼은 1993년 톰 크루즈와 진 핵크만 주연의 <야망의 함정>에 출연했다. 1995년에는 1억7200만 달러라는 당시로서는 역대 최대 제작비가 투입됐던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워터 월드>에서 여주인공 헬렌을 연기했다.

<원초적 본능>에서 다혈질의 닉은 파트너 없이 단독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경찰들은 항상 '2인1조'로 행동하는 것이 원칙이다. <원초적 본능>에서 닉의 파트너는 독일 출신배우 조지 던자가 연기한 거스 모란이었다. 거스는 자신의 파트너이자 절친한 친구인 닉이 살인용의자 캐서린과 가까워지는 것을 싫어했다. 하지만 거스는 검은 우비를 입은 괴한에게 <원초적 본능>의 시그니처 무기(?)인 '얼음송곳'에 찔려 무참히 살해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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