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재난영화 <해운대>를 통해 천만 감독으로 올라선 윤제균 감독은 2014년 한국 산업화 시대를 온 몸으로 겪은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국제시장>으로 '쌍천만 감독'에 등극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2014년 연말에 개봉한 <국제시장>은 1426만 관객을 동원하며 현재까지도 <명량>과 <극한직업> <신과 함께: 죄와 벌>에 이어 역대 한국영화 흥행 4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두 편 연속 천만 영화를 만들며 흥행보증수표로 떠오른 윤제균 감독은 차기작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바로 동명의 뮤지컬을 영화화한 뮤지컬 영화 <영웅>이었다. 2019년에 촬영을 끝낸 <영웅>은 코로나19 대유행 때문에 2년 이상 개봉이 미뤄지면서 2022년 연말에야 관객들을 만났다. 하지만 <아바타: 물의 길>이라는 강적을 만난 <영웅>은 326만 관객으로 극장수익 만으로는 손익분기점에 살짝 미치지 못했다.

사실 <해운대>를 기점으로 제작비와 스케일이 대폭 커지긴 했지만 사실 윤제균 감독은 그리 많지 않은 제작비로도 최고의 재미와 흥행성적을 뽑아내는 감독으로 유명했다. 특히 2002년 겨울에는 대학 기숙사와 동아리를 배경으로 하는 섹시코미디를 연출하며 윤제균 감독 커리어에서 세 번째로 많은 408만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다. 임창정과 하지원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는 섹시코미디 영화 <색즉시공>이다.
 
 2002년 연말에 개봉한 <색즉시공>은 '한국판 아메리칸파이'로 불리며 400만 관객을 불러 모았다.

2002년 연말에 개봉한 <색즉시공>은 '한국판 아메리칸파이'로 불리며 400만 관객을 불러 모았다. ⓒ (주)쇼박스

 
2000년대 잠시 주류로 올라섰던 섹시 코미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성(性)을 주제로 한 영화는 주로 노출을 강조한 영화였다. 물론 대놓고 여성배우의 노출을 앞세워 흥행을 노리던 영화들도 적지 않았지만 1994년 서울에서만 38만 관객을 동원했던 <너에게 나를 보낸다>처럼 장선우 감독의 실험정신이 돋보였던 영화도 그저 '노출영화'로 매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성을 주제로 한 가벼운 영화들이 잇따라 개봉해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2002년 11월에 개봉한 정초신 감독의 <몽정기>는 <색즉시공>보다 한 달 먼저 개봉하며 2000년대 섹시 코미디의 시작을 열었다. <몽정기>는 중학교를 배경으로 성에 한창 관심이 많은 사춘기 남학생들과 선생님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다룬 영화로 서울에서만 76만 관객을 동원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편의 흥행에 힘입어 2005년 여고로 배경을 옮겨 제작·개봉한 <몽정기2> 역시 전국 118만 관객을 동원했다.

2002년 <몽정기>와 <색즉시공>이 흥행에 성공하자 한동안 섹시코미디가 극장가의 주류로 떠올랐다. 2003년 신애와 오지호 주연의 <은장도>와 2004년 임은경, 은지원 주연의 <여고생 시집가기>, 2006년 김사랑과 하하가 출연했던 <누가 그녀와 잤을까?> 같은 영화들이 차례로 개봉한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쏟아져 나온 섹시코미디 영화에 피로감을 느낀 관객들은 이 영화들에 큰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금 침체에 빠졌던 섹시 코미디는 2012년 연말 변성현 감독의 <나의 PS 파트너>가 개봉하면서 명맥을 이어갔다. 도발적인 제목 때문에 배우 김아중의 노출 여부가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됐는데 이 때문에 제작사에서는 '김아중의 노출은 없다'고 미리 해명해야 했다. 하지만 <나의 PS 파트너>는 183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고 2014년부터는 영화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연극이 공연되고 있다.

2018년에는 첫 번째 상업영화 <스물>로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충무로의 이야기꾼으로 떠오른 이병헌 감독이 신작 <바람 바람 바람>을 선보였다. 체코영화 <희망에 빠진 남자들>을 원작으로 한 이성민, 신하균, 송지효 주연의 <바람 바람 바람>은 불륜을 소재로 한 성인 코미디를 표방했다. 하지만 <바람 바람 바람>은 이병헌 감독의 전작 <스물>에 비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전국 119만 관객으로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쌍천만' 윤제균 감독의 세 번째 흥행영화 
 
 임창정이 연기한 은식은 은효 뒤에 서 있었다는 이유 만으로 치한으로 몰릴 만큼 불운한 캐릭터였다.

임창정이 연기한 은식은 은효 뒤에 서 있었다는 이유 만으로 치한으로 몰릴 만큼 불운한 캐릭터였다. ⓒ (주)쇼박스

 
<색즉시공>이 개봉했던 2000년대 초반에는 조폭 코미디가 대한민국 극장가를 지배하고 있었다. <색즉시공>을 연출한 윤제균 감독 역시 2001년 조폭이 비리학교에 편입해 학교를 접수한다는 내용의 <두사부일체>를 통해 충무로에 안착한 바 있다. 따라서 윤제균 감독이 대학교의 차력 동아리와 에어로빅부를 중심으로 성을 주제로 한 섹시 코미디 <색즉시공>을 차기작으로 선보였을 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윤제균 감독 특유의 '웃기다 울리는' 이야기 진행과 몸을 사리지 않은 임창정의 열연, 그리고 한창 떠오르는 신예스타 하지원의 인기가 더해진 <색즉시공>은 2002년 연말에 개봉해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색즉시공>은 현재까지도 '천만 영화' <국제시장>과 <해운대>에 이어 윤제균 감독이 연출한 영화 중 세 번째로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임창정이 연기한 은식은 이럴 수도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영화 속에서 불운한 캐릭터로 나온다. 군대를 다녀온 후 20대 후반에 대학에 입학했음에도 1학년이라는 이유만으로 한참 어린 동생들에게 반말을 듣는 것은 기본이고 기숙사를 소독하는 것을 불이 났다고 착각해 기숙사 창문으로 뛰어 내린다. 심지어 본의 아니게 민망한 행동을 하고 있을 때는 여지 없이 짝사랑하는 에어로빅부의 퀸카 은효(하지원 분)와 마주친다.

웃기다 울리는 윤제균 감독의 많은 영화들처럼 <색즉시공> 역시 은효가 교내 킹카 상욱(정민 분)의 아이를 가지면서부터 갑자기 장르가 바뀐다. 영화 속에서 은효는 상욱에게 버림 받자마자 아이를 지우는 쪽을 선택한다. 결국 가장 불쌍한 이는 은효의 낙태수술을 위해 산부인과에서 가짜아빠 노릇을 하고 은효를 위로하기 위해 '1인 차력쇼'를 선보인 은식이었다.

4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한 <색즉시공>은 2007년 에어로빅부가 수영부로, 차력 동아리가 격투기 동아리로 바뀌고 여자 주인공이 하지원에서 송지효로 바뀐 속편이 개봉했다(하지원은 카메오 출연). 전편을 연출했던 윤제균 감독이 제작과 각본에만 참여했음에도 <색즉시공 시즌2>는 김태희 주연의 <싸움>, 한예슬 주연의 <용의주도 미스신>, 최강희 주연의 <내 사랑> 등과 맞붙어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쏠쏠한 흥행성적을 올렸다.

악녀였지만 남성팬들에게 사랑 받은 진재영
 
 1년 전 쿨의 <아로하> 뮤직비디오에서 비운의 여주인공을 연기했던 진재영은 <색즉시공>에서 파격적인 연기변신을 시도했다.

1년 전 쿨의 <아로하> 뮤직비디오에서 비운의 여주인공을 연기했던 진재영은 <색즉시공>에서 파격적인 연기변신을 시도했다. ⓒ (주)쇼박스

 
두 주인공 임창정과 하지원을 제외하고 <색즉시공>을 통해 가장 빛을 본 배우는 단연 차력 동아리의 리더 성국을 연기했던 최성국이었다. 고 유채영과 러브라인을 형성하며 <색즉시공>의 웃음을 담당했던 최성국은 영화에서 윤종신의 히트곡 <너의 결혼식>을 우스꽝스럽게 부르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양한 표정연기로 '한국의 짐 캐리'로 불리던 최성국은 2000년대 중·후반까지 많은 영화에 출연하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1994년 혼성그룹 쿨로 데뷔해 혼성듀오 어스, 솔로가수 등으로 활약했던 고 유채영은 2장의 솔로앨범을 발표한 후 <색즉시공>에서 에어로빅부의 주장 한유미 역을 맡으며 영화에 도전했다. <색즉시공>에서 특유의 오버액션으로 인상적인 코믹연기를 선보인 유채영은 <휘파람 공주>와 <누가 그녀와 잤을까?> <색즉시공 시즌2> 등에 출연했고 영화와 예능을 넘나들며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지난 2014년 위암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1990년대 중·후반 드라마와 CF를 넘나들며 활발하게 활동했다가 2010년 4살 연하의 프로골퍼와 결혼 후 활동이 뜸해진 진재영은 <색즉시공>에서 학교의 퀸카이자 은효의 에어로빅부 라이벌 지원을 연기했다. 지원은 영화에서 주인공 은효와 대립하는 악녀에 가까운 캐릭터지만 진재영의 섹시한 매력 때문에 남성 관객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기도 했다. 진재영은 2003년 윤제균 감독의 차기작 <낭만자객>에서도 처녀귀신을 연기했다.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영화 색즉시공 윤제균감독 임창정 하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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