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현지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4강전 한국과 요르단 경기. 요르단 무사 알타마리가 팀의 두 번째 골을 성공시키고 있다.
연합뉴스
요르단전은 패배도 패배지만, 한국축구의 역대 아시안컵 도전사에서 손에 꼽힐만한 역대급 참사였다. 국제축구연맹(피파랭킹) 랭킹 23위의 한국은 87위에 불과한 요르단에게 경기 내내 압도당했다.
한국은 경기 동안 점유율은 69.6-30.4%로 크게 앞섰지만, 정작 슈팅 시도는 8-17로 뒤졌다. 심지어 유효 슈팅은 요르단이 7개를 때릴 동안 한국은 단 한 개도 기록하지 못했다. 이는 주로 월드컵 본선같은 큰 무대에서 한국보다 객관적 전력에서 앞선 유럽이나 남미의 강팀을 상대했을 때나 나올만한 충격적인 기록이다.
한국은 불과 1년여전 동일한 카타르에서 개최된 월드컵에서, 세계적인 강호들에게도 밀리지 않는 경기력을 선보이며 포르투갈을 꺾고 16강에 진출했다. 여기에 이번 대회 멤버는 한국축구 역대 최강으로까지 꼽히던 '호화멤버'였다.
반면 요르단은 월드컵 본선진출 경험이 전무하고 아시안컵도 종전 8강이 최고성적이었을만큼 아시아에서도 강호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팀이었다. 한국을 상대로도 이번 대회 이전까지 한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조별리그에서 바레인과 한국에 이어 E조 3위를 기록하며 와일드카드로 턱걸이 통과했던 요르단이, 토너먼트에서 우승후보 한국을 격침시키고 자국 역사상 첫 아시안컵 결승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뤄낸 것이다.
한국은 이미 조별리그에서도 요르단을 만나 고전 끝에 2-2로 간신히 비기며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요르단의 선전에 주목하기보다는, 한국이 방심한 탓에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한번 붙어본 상대와 재대결이라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는 초반부터 처참하게 무너졌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날 요르단이 전력상 한 수위로 꼽힌 한국을 상대로 언더독 팀들 특유의 선수비 후역습이 아닌, 과감한 전방압박을 통한 '정면승부'를 택하고도 완승을 거뒀다는 것이다. 한국축구가 아시아무대에서 당했던 그 어떤 패배보다도 굴욕적이었던 이유다. 이로써 한국은 요르단과 상대 전적에서 7경기에서 첫 패배를 기록하며 3승 3무 1패가 됐다.
더구나 이번 대회에서 한국의 부진은 요르단전 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토너먼트에서 사우디(승부차기 승)와 호주(연장전 2-1 승)를 상대로 극적인 2연속 역전 드라마를 거두며 잠시 가려졌을뿐, 경기력은 대회 내내 심각했다.
클린스만호는 이번 대회에서 조별리그부터 준결승까지 6경기동안 무려 10실점을 내줬다. 이는 8강전에서 이란을 만나 6골을 내주는 '식스투 참사(2-6 패)'가 벌어졌던 1996년 UAE 대회(11 실점) 이후 단일 대회로는 두 번째로 많은 실점 기록이었다. 한국은 6경기 동안 단 한번의 클린시트도 기록하지 못했고, 심지어 피파랭킹 130위의 최약체 말레이시아에도 3실점을 내주는 등 내내 불안한 수비를 이어갔다.
대표팀은 아시안컵 내내 2-3선간의 공수간격 유지에 실패하며 상대에게 무수히 많은 침투공간을 내주었으며 이는 개선되지 않았다. 특히 요르단과의 4강전에서는 경고누적으로 결장한 김민재의 공백이 컸다. 첫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박용우의 부진 등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의 부재라는 불안요소가 끝내 발목을 잡고 말았다.
공격력도 뛰어나지 못했다. 무득점에 그친 요르단전 직전까지는 5경기에서 11골을 기록하며 경기당 2골 이상을 뽑아낸 것 같았지만, 득점루트를 자세히 살펴보면 절반 이상인 6골이 PK(3골), 프리킥(2골), 코너킥(1골) 등 '데드볼' 상황에서 나왔다.
세밀한 공격전술의 부재로 인해 선수들간의 약속된 패턴이나 유기적인 패스플레이를 통한 필드 플레이 득점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선수의 개인기량 혹은 상대 실수로 얻어낸 득점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이중 스트라이커가 올린 점수는 사우다와의 16강전에서 종료 직전 조규성의 헤더골이 유일했다.
2선 공격수인 손흥민과 이강인이 각각 3골로 팀내 공동 최다득점을 기록했다. 손흥민은 PK 2골, 세트피스(프리킥)로 1골을 각각 올리며 역시 온더볼 상황에서 득점은 전무했고, 이강인도 토너먼트에서는 무득점으로 침묵했다.
한국축구는 이번 아시안컵에서 2승 3무 1패를 기록했다. 승부차기로 이긴 사우디와의 16강전을 무승부로 감안하면, 정규시간 90분 이내에 승리를 거둔 경기는 바레인(3-1)과의 조별리그 첫 경기가 유일했다.
결과적으로는 지난 2019년 아시안컵 당시 벤투호(8강)보다 한 계단 더 올라온 성적표를 받아들었지만(4강), 경기력은 오히려 퇴행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참사의 중심에는 클린스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