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맨> 1편을 보면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토니 스타크는 아버지로부터 천재적인 두뇌를 물려 받은 바람둥이 재벌 군수업자로 슈퍼히어로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하지만 미사일 판매를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갔다가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 당한 스타크는 골방에서 첫 번째 슈트 Mk.1을 제작해 탈출에 성공했다. 토니 스타크는 이 사건을 계기로 많은 것을 깨닫고 '아이언맨 슈트'를 개발해 히어로가 되기로 결심한다.

<스파이더맨>의 주인공 피터 파커도 마찬가지. 대학교 실험실 견학 도중 슈퍼거미에게 물리면서 신비한 힘을 얻게 된 피터는 짝사랑하는 이웃 메리 제인을 태울 중고차를 사기 위해 프로레슬링 대회에 출전한다. 하지만 대회장에서 강도사건이 일어나고 피터가 외면한 강도는 아버지와도 같은 벤 숙부를 살해한다. 그리고 벤 숙부는 숨을 거두면서 피터에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단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람들은 슈퍼히어로라면 당연히 착하고 정의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바람둥이 사업가였던 토니 스타크와 소심하고 속 좁은 학생 피터 파커처럼 인간의 본성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히어로 역시 하늘을 날고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으며 불사의 몸을 가지고 있음에도 삐딱한 성격 때문에 시민들로부터 미움을 받는다. 지난 2008년에 개봉했던 윌 스미스와 샤를리즈 테론 주연의 <핸콕>이다.
 
 히어로 영화의 전형적인 설정을 살짝 비튼 <핸콕>은 제작비의 4배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히어로 영화의 전형적인 설정을 살짝 비튼 <핸콕>은 제작비의 4배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다.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주)
 
상업영화 무난하게 잘 만드는 감독

지금이야 감독 활동에 전념하고 있지만 피터 버그 감독은 감독 데뷔 전 배우 활동을 먼저 시작했다. 피터 버그 감독은 배우 시절이던 1989년 <나이트메어>와 <스크림>으로 유명한 고 웨스 그레이븐 감독이 연출한 <영혼의 목걸이>에서 주인공 조나단을 연기했지만 관객들에게 큰 인상을 남기진 못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1999년 카메론 디아즈와 크리스찬 슬레이터 주연의 <배리 배드 씽>을 연출하면서 감독으로 데뷔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배우활동을 이어가던 피터 버그 감독은 2003년 지금은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배우 중 한 명으로 성장한 드웨인 존슨 주연의 <웰컴 투 더 정글>을 연출하며 감독으로 입지를 굳혔다. 2007년에는 마이클 만 감독이 제작하고 제이미 폭스와 크리스 쿠퍼, 제니퍼 가너 등이 출연한 <킹덤>을 연출했다. <킹덤>은 7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8600만 달러의 성적을 올리며 흥행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하지만 피터 버그 감독은 1년 후 마이클 만 감독과 스타배우 윌 스미스가 제작에 참여하고 윌 스미스가 직접 주연을 맡은 액션 히어로 영화를 만들게 됐다. 감독 데뷔 후 가장 많은 1억50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핸콕>이었다. 화끈한 물량공세와 윌스미스, 샤를리즈 테론의 스타파워가 결합된 영화 <핸콕>은 제작비의 4배가 넘는 6억24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고 피터 버그 감독도 본격적으로 연출 능력을 인정 받았다. 

피터 버그 감독은 2012년 2억 달러가 넘는 제작비가 투입된 해양액션대작 <배틀십>을 연출했지만 3억300만 달러 흥행으로 기대 이하의 성적에 그쳤다. 오히려 2013년에 개봉한 <론 서바이버>가 밀리터리 영화 마니아들에게 극찬을 받았고 흥행에서도 좋은 성적을 올렸다. 2016년에 개봉한 해양재난 영화 <딥워터 호라이즌>도 흥행성적은 다소 아쉬웠지만 아카데미 시각효과상과 음향편집상 후보에 오르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피터 버그 감독은 화려한 폭발장면으로 유명한 마이클 베이 감독이나 특유의 슬로우 모션 연출이 돋보이는 잭 스나이더 감독처럼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가진 감독으로 평가 받진 못한다. 하지만 영상미와 액션, 그리고 스토리가 어우러진 영화들을 무난하게 연출하며 관객들에게 고른 평가를 받는 상업영화 감독이다. 마크 월버그와 유난히 여러 작품을 함께 했던 피터 버그 감독은 지난 2020년 넷플릭스 영화 <스펜서 컨피덴셜>을 만들었다.

빌런과의 대결보다 내면 고민 다룬 히어로 영화
 
 핸콕은 사람들을 위험에서 구하는 히어로임에도 시민들의 미움을 받는 캐릭터로 나온다.
핸콕은 사람들을 위험에서 구하는 히어로임에도 시민들의 미움을 받는 캐릭터로 나온다.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주)
 
<인디펜던스데이>와 <맨 인 블랙>,<아이, 로봇>,<나는 전설이다> 등 여러 영화에서 이미 세상을 구하는 캐릭터를 연기했던 윌 스미스는 자신이 제작을 겸한 <핸콕>에서 불량한 히어로 존 핸콕을 연기했다. 핸콕은 범죄자들을 혼내주고 사람들을 구하는 히어로지만 방탕한 생활과 제멋대로의 성격, 그리고 나타나는 곳마다 엄청난 기물파손을 일삼으면서 시민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실제로 영화 <핸콕>은 기존 히어로들과 정반대의 캐릭터를 가진 불량한 히어로를 통해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핸콕은 언제나 한 손에 위스키병을 들고 살짝 취한 상태로 '음주비행'을 서슴지 않는다. 히어로 영화의 상식을 깨는 장면들을 통해 관객들은 반전의 웃음과 함께 의외로 통쾌한 기분도 느낄 수 있다. 

히어로 영화의 플롯은 기본적으로 히어로와 빌런의 대립으로 이뤄진다. 정의의 편에 서는 영웅과 개인의 욕심 또는 악의 편에 서는 빌런이 서로 갈등하고 대결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지만 <핸콕>에는 주인공 핸콕과 대립을 이루는 '빌런'이라 부를 수 있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핸콕에게 원한을 가진 강도일당의 두목 레드(에디 마산 분)가 나오지만 '평범한 인간' 레드는 핸콕에게 큰 위협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핸콕>에서는 선과 악의 싸움 대신 그간 히어로 영화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초인적인 힘을 가진 자의 외로움', '무분별한 초능력이 주는 사회적 혼란과 대중의 반발' 등에 초점을 맞췄다. 이는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해 대중들에게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에서도 나타나는 부분이다. 실제로 선의를 가지고 한 행동이 반발을 사게 된다면 히어로들도 핸콕처럼 나쁜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사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초·중반에 관객과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든  '떡밥'들을 후반부에 얼마나 잘 회수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핸콕>은 떡밥회수가 아쉬웠던 영화 중 하나였는데 관객들은 <핸콕>이 속편제작을 위해 떡밥회수를 일부러 하지 않은 거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핸콕>은 1편의 높은 흥행성적에도 불구, 개봉 1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속편제작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다.

핸콕보다 더 강한 '힘을 숨긴' 여성 히어로
 
 연약해 보이는 메리는 핸콕보다 더 강한 힘을 숨기고 있었다.
연약해 보이는 메리는 핸콕보다 더 강한 힘을 숨기고 있었다.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주)
 
슈퍼히어로임에도 대중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던 핸콕은 기차 건널목에서 PR전문가 레이의 목숨을 구해준 후 레이의 컨설팅을 받는다. 핸콕은 레이의 집에서 미모의 아내 메리를 만나는데 연약하고 조용한 메리는 핸콕과 이상한 분위기를 연출하다가 갑자기 엄청난 괴력으로 핸콕을 집 밖으로 날려 버린다. 알고 보니 핸콕과 메리는 무려 3천 년을 함께 하며 사람들로부터 '신' 또는 '천사'로 불리던 존재였던 것이다.

핸콕과의 몸싸움만으로 주변의 날씨를 변화시킬 정도로 엄청난 힘을 가진 메리 역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배우 샤를리즈 테론이 연기했다. 모델출신 배우로 활동하던 샤를리즈 테론은 2003년 <몬스터>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휩쓸며 '연기까지 되는' 배우로 거듭났다. 2008년에 출연했던 <핸콕>은 <몬스터>의 열연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던 샤를리즈 테론의 미모를 관객들에게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영화였다.

TV와 영화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제이슨 베이트먼은 <핸콕>에서 메리의 남편이자 최악의 이미지를 가진 핸콕의 이미지를 바꿔주려 하는 PR전문가 레이를 연기했다. 레이는 영화에서 핸콕과 메리를 만나게 해주는 작은 역할에 머물렀다. 하지만 레이를 연기한 베이트먼은 2016년 <주토피아>에서 닉 와일드의 목소리 연기를 맡았고 2005년에는 시트콤 <못말리는 패밀리>를 통해 골든글로브 TV시리즈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배우다.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영화 핸콕 피터버그감독 윌스미스 샤를리즈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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