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기말의 사랑>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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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은 병명이 무엇인지, 언제부터 어떻게 아프기 시작했는지 등 전사가 감춰진 신비로운 여성이다. 내외적으로 상당한 준비 없이는 함부로 뛰어들 수 없는 캐릭터다.
"유진은 국가 보조금도 있지만 자기 힘으로 먹고사는 여성이다. 냉장고에 붙은 팸플릿을 영미가 보는 장면에서 짧게 지나간다. 한마디로 '얼굴로 먹고사는 여자'다. 잡지나 팸플릿 모델이라 외적으로 준비 사항이 있었다. 색 입히지 않은 자연 생머리였다. 특히 말하는 태도가 중요했고 사람 대하는 태도 변화에 중점을 두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안하무인인 것은 스스로 방어하느라 갑옷을 입고 있어서 그렇다. 그러다가 영미를 만나 점점 무장해제된다. 마지막 도영과 만나는 장면에서는 잘 몰랐던 맨얼굴이 툭하고 튀어나온다."
- 유진은 장애인의 여러 이미지를 탈피한 독특한 인물이다. 실제 임선애 감독의 친척을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고 들었다.
"이모님은 일단 꼿꼿하게 한 인간으로 앉아 계셨다. 호탕한 웃음으로 담담하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살아온 이야기, 장애 때문에 벌어지는 일상생활 에피소드 등등. 극 중에서 유진이 모기를 무서워하는 건 이모님을 참고했다. 도우미가 오후 6시에 퇴근하면 다음 날 아침 출근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도 포함이다.
이모님을 참고했지만 유진은 허구의 인물이지 이모님이 절대 아니다. 만나서 하고 싶은 질문이 있었는데 직접 하지 못했다. 막상 대화를 해보니까 자잘한 질문이 뭐가 중요할까 싶었다. 이모님을 보며 제약이 있어도 자신의 삶을 사는 거라고 생각했고 그걸 유진의 태도에 반영했다."
- 내내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장면이 많아서 상대를 보고 연기할 수 없었을 텐데 어려웠을 것 같다. 특히 영미 역의 이유영과 자주 붙어 있어 호흡도 잘 맞아야 했겠다.
"저만 상대방의 눈을 보면서 연기할 수 없었다. 장애만 생각했지 의외의 복병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고 후회했다. 관객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수평적인 관계를 고려해 촬영했다. 누가 누구를 올려다보고 내려다보는 앵글이 없다. 그래서 상대가 주는 기운이나 분위기만 듣고 의지해야 했다. 쉽게 경험할 수 없었던 작업이라서 그만큼 재미있었다. 그때는 상대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상상만 했었는데 영화를 직접 보니까 표정이 매칭되는 즐거움이 있었다.
이유영 배우는 처음 만났지만 호흡이 좋다고 단박에 느꼈다. 서로 의지하면서 찍었던 기억이다. 완성된 영화를 보니 유영 배우가 좋은 연기를 펼쳤다고 생각 들더라. 어느 순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워졌다."
- 유진은 도영과 법적 부부이고 영미도 도영의 공금횡령을 대신 갚아 줄 정도로 마음에 둔다. 대체 두 여성이 도영을 왜 좋아하는 걸까.
"(웃음) 노재원 배우는 소풍 장면에서 처음 만났는데 우직한 성격이라 유진이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세기말의 사랑>은 흔히 생각하는 사랑 이야기라기보다 큰 테두리의 사랑을 보여주는 영화다. 영미, 유진, 도영 모두 소외된 인물이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도록 설정한 것 같다. 확실히 유진은 도영을 좋아하고 도영도 유진을 좋아한다고 봤다."
유진을 위해 모두 쏟아부었고, 새롭게 채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