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외+계인> 스틸컷
CJ ENM
영화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우선 보이는 건 레퍼런스의 적극적인 활용이다. 영화 마니아가 아니라도 모티브를 따왔을 영화들이 머릿속에서 휙휙 지나간다. <아이언 맨> <에일리언> <서유기> <백 투 더 퓨처>처럼 문화적 DNA로 각인된 수준의 작품들이다. 감독의 취향이 반영된 것처럼 보이는 레퍼런스들을 통해 관객들에게 부족한 현실감 대신 친밀감을 불어넣으려고 하지만 긴밀한 화학적 결합이 아니라 시각적 유사함만 따온 상황에선 과도한 기시감만 충전되는 역효과가 발생했다.
문제는 이렇게 현실감이 사라진 환경이 캐릭터들의 감정선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외계+인>의 주인공은 이안(김태리 분), 무륵(류준열 분), 가드(김우빈 분)이다. 현대 시점에서 외계의 죄수들이 풀려나 도시를 파괴하는 장면을 본 이안과 가드가 그들을 막기 위해 과거라는 시간 안에 죄수들을 가둔 것은 그렇다 치자. 정의로운 캐릭터가 정의를 위해 희생하는 건 뻔하지만 숭고한 감동적인 테마이다. 그러나 극 중에서 이들의 정의감이 제대로 설계되어 발현됐는지는 의문이다.
가드는 인간의 일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이안을 키우며 가드에게 부성애가 생겼을 수 있지만 그건 인류를 구하겠다는 정의감보다 자녀를 지키겠다는 개인적 바람이 우선이다. 이안은 고려에서 넘어와 가드와 썬더의 손에 자랐고 큰 문제없이 학교 다니며 친구들과 노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초등학생이다. 가드의 생체실험(?)으로 또래보다는 뛰어난 지능과 신체 능력을 지녔지만 고려시대와 현대를 넘나들며 무시무시한 외계인의 손에서 지구를 지킬 막대한 책임감을 지닌다는 게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이안과 무륵은 어린 시절에 목숨을 구해준 인연으로 얽혀있으며 서로의 물음에 해답이 되어주는 파트너이기도 하다. 외계 죄수가 몸 안에 가둬져 있다고 생각하는 무륵에게 이안은 '네 안에 뭐가 있든 너는 너야'라고 말한다. 영화의 최종전투가 시작되면 무륵은 이안에게 이 말을 그대로 전해준다. 외계인의 힘으로 얼치기 도사가 됐다고 생각하는 무륵의 무력감, 고려에서 태어나 현대에서 또 다른 외계인의 손에 큰 이안의 외로움은 주고받는 한마디 말로 조금이나마 치유가 된다.
그러나 그들의 감정을 문장으로 읽는 것과 영상을 보는 건 다르다. <외계+인>에서 이안은 무륵이 생명의 은인임을 알고 반가워하지만 극의 전개를 위해 5분 만에 헤어진다. 러닝타임 내내 흘러가야 하는 영상은 문장과 달리 감정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암살>에서 안옥윤(전지현 분)은 쌍둥이 언니 마츠코(전지현 분)가 친일파 아버지 강인국(이경영 분)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다. 마찬가지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인물이지만 극적으로 변하게 된 계기를 마련하며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감정을 이입할 시간을 준 것과는 대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