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민덕희>에서 덕희 역을 맡은 배우 라미란.

영화 <시민덕희>에서 덕희 역을 맡은 배우 라미란. ⓒ (주)쇼박스


 
 
데뷔 16년 만에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2021년 이후 라미란은 말 그대로 꾸준했다. 사실 그전부터 드라마와 영화 가리지 않고 자신이 맡은 역할을 소화해 온 그는 곧 소시민적 미덕과 해학성을 두루 갖춘 배우로 분류해볼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주연을 맡은 영화 <걸캅스>(2019),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임에도 나름의 성과를 거둔 <용감한 시민> 시리즈 등. 그는 특유의 소탈한 이미지로 관객에게 늘 친숙하게 다가갔다.
 
오는 24일 개봉하는 <시민덕희>는 라미란 스스로도 많이 기대했고, 기다린 작품이다. 2020년 12월 촬영을 마쳤음에도 팬데믹 상황 등을 이유로 이제야 관객과 만나게 된 것에 그는 남다른 감회가 있었다. "내심 이 작품으로 여우주연상을 받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며 "제가 덕희라는 캐릭터를 좋아한 나머지 매번 언제 개봉하는지 물어보곤 했다"고 16일 인터뷰 자리에서 기자에게 애정부터 드러냈다.
 
영화 속 덕희의 힘
 
<시민덕희>는 2016년 실제로 발생한 사건을 기반으로 했다. 대출이 급한 나머지 은행원이라고 속인 범인에게 3200만 원을 입금하고 절망에 빠진 김성자씨의 이야기다. 좌절하던 그에게 범인이 직접 접촉해 총책임자의 정보를 주고, 경찰에 제보한 끝에 범인을 잡게 된 사연이었다. 영화는 여기에 더해 주인공이 동료들을 모아 중국으로 직접 날아가 일망타진하게 되는 과정을 그려 넣었다.
 
"우선 실화가 가진 힘이 컸다. 다행인 건 현재 진행형인 사건이 아니라 그나마 절망적이진 않았다. 영화적 요소를 넣긴 했는데 현실성이 있어야 했기에 스스로도 가짜처럼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다. 여전히 지금도 보이스피싱이 성행하고 있고 수법도 진화하고 있다. 영화를 보시고 재미를 느끼면서도 동시에 경각심도 가지셨으면 좋겠다.
 
보면 은행원도 피싱을 당한다. 똑똑하다고 안 당하는 게 아닌 만큼 이 영화를 통해 범인들의 수법들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우리 영화에 형사로 출연한 박병은씨도 동생이 응급실에 있다고 연락이 와서 급히 나가려던 차에 혹시나 해서 방문을 열어 보니 동생이 자고 있었다더라. 이젠 AI를 이용해 목소리르 변조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그만큼 우리 가까이에 있는 범죄다."

  
 영화 <시민덕희>의 한 장면.

영화 <시민덕희>의 한 장면. ⓒ 쇼박스


 
영화 속 덕희가 경찰의 소극적 태도와 무시에 화를 삭이지 못하다가 직장 동료들과 함께 중국으로 떠나는 지점이 또 하나의 포인트다. 덕희에게 돈을 빌려주는 등 물심양면 정을 베푸는 숙자(장윤주)와 조선족 출신으로 덕희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봉림(염혜란), 그리고 봉림의 동생 애림(안은진) 등이 좌충우돌하며 코믹한 모습을 보인다. 무거운 범죄지만 나름 대중영화로써의 미덕을 갖추려 한 흔적이 보인다.
 
"최종 버전에선 일부 편집됐지만 덕희와 친구들이 친해진 계기들이 있다. 봉림이 한국에 적응하는 데에 덕희가 힘이 된 일도 있었고 숙자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사실 실제 사건을 되도록 참고하진 않으려 했다. 거기에 잠식당하면 안되니까. 우린 재현드라마가 아니잖나. 실제 인물이 시사회 때 영화를 보고 가셨는데 굉장히 잘 보셨다고 들었다. 마지막 장면에도 위로받고 가셨다고 한다. 그분처럼 덕희라는 인물 자체에 존경받을 만한 지점이 많다. 단순히 억척스러운 엄마가 아니라 한 사람의 시민이자 어른으로서 자존감을 채워가는 면모가 있다. 그게 제게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여성서사, 그 중심에 제가 있다는 평가도 있는데 좀 부담스럽긴 하다. 남성 배우에게 남성 서사의 중심이 됐다고 말하진 않잖나. 그저 전 제가 할 수 있는 작품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물론 저나 염혜란 배우나 이런 사람들이 <걸캅스> 등의 작품으로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건 좋은 일이다. 아, 그러면 적극 나를 어필해야 하려나? 맞다! 제가 좀 큰 역할을 한 것 같다(웃음)."


질리지 않는 매력 

재치 있게 응수하는 모습에서 특유의 편안함이 묻어나왔다. 라미란은 "제가 좀비나 무슨 초현실적 능력을 가진 캐릭터를 하지 않는 이상 제 모습이 담겨 있는 연기를 하는 것 같다"며 "<시민덕희>도 몸무게를 좀 관리하고 출연하고 싶었는데 실패했다. 근데 사람들은 캐릭터를 위해 일부러 찌웠다고 보시더라"고 유쾌하게 덧붙였다.
 
"이야기와 그 상황에 몰입하려 한다. 뭔가 제가 더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더 어렵고 힘들더라. <시민덕희>에서 총책에게 그렇게 맞고, 돈으로 회유당하면서도 끝까지 총책(이무생)을 쫓잖나. 한 사람의 피해자로 총책이 던져주는 알량한 돈을 받고 찌그러져 살 수도 있겠지만,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그런 부분에서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물론 공권력의 부재가 답답하게 다가오지. 굳이 보이스피싱 관련이 아니더라도 우리 일상에서 공권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답답한 게 많잖나. 그렇다고 그들이 아예 손놓고 있는 건 아니다. 영화에도 나오듯 박병은 배우가 연기한 형사도 노는 게 아니잖나. 어떻게 해서든 공권력의 공백은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다만 영화는 그걸 비판하기보다는 덕희 같은 용감한 시민이 우리 이웃이다. 여러분들도 자존감을 회복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고 생각한다."

 
칸영화제에서 중단편 영화로 호평을 받고 이번 영화로 대중영화 신고식을 치르게 된 박영주 감독에게도 라미란은 애정 어린 말을 덧붙였다. "처음 만났을 땐 학생처럼 보여서 내심 걱정도 했는데, 또랑또랑하시고 의견을 굽히지 않을 땐 나름 안 굽히더라"고 말했다.
  
 영화 <시민덕희>에서 덕희 역을 맡은 배우 라미란.

영화 <시민덕희>에서 덕희 역을 맡은 배우 라미란. ⓒ (주)쇼박스


 
수년전부터 로맨스 장르를 해보고 싶다고 내심 밝혀온 그다.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수식어, 특히 주조연 배우에서 주연 배우로 이어지는 과정을 두고 오르내리는 찬사에 라미란은 "너무 거기에 짓눌리지 않고, 감사하게 생각하며 즐기려 한다"고 속마음을 밝혔다. "지금 찍고 있는 드라마 말고는 아직 일이 들어온 게 없다. 어서 로맨스 영화 출연 의지를 잘 담아서 써달라"고 기자에게 요청하는 등 특유의 밝은 에너지를 발산하기도 했다.
 
"이무생씨와의 로맨스도 좋지! '라미란로즈'와 '이무새로랑'의 만남 어떤가? 빨리 그렇게 써달라(웃음). 사실 한편으론 제 이미지를 바꿔보고 싶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 운동도 하고 살을 좀 빼야 하는데 내년 이맘때에 '실패했어요'라고 말할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제 이미지가 질리지만 않으면 좋겠다.

연기라는 게 사실 잘하고 못하고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얼마나 그 사람이 매력적인지, 대중들이 기꺼이 보러 갈 수 있는 호감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세간의 칭찬이 부담스러운 이유가 그것이다. 언제든 허점이 나올 수도 있는 거잖나. 지치지 않고 즐기면서 해나가려 한다."
시민덕희 라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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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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