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사랑을 아름답게들 묘사하지만, 사랑만큼 삶을 뒤틀어 괴롭게 하는 것도 그리 많지는 않다. 사랑이란 마음처럼 일어나지 않는 것, 일어나야 할 때 일어나지 않고 일어나선 안 되는 때 일어나는 일이 얼마만큼 많은가. 내가 사랑하는 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또 내가 관심 없는 이가 나를 사랑하는 것, 사랑보다는 이 같은 엇갈림이 차라리 흔하다고 불러야 할 것이다.
 
대문호라는 호칭을 받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하나,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또한 남녀의 엇갈림에 관심을 가졌다. 그가 제 재능을 살려 써내려간 소설 가운데 하나가 바로 <백야>인데, 짧은 만남 가운데 남녀의 엇갈리는 모습을 담은 단편으로 수백 년을 건너 큰 관심을 받았다. 백야가 이어지는 페테르부르크의 어느 밤, 우연히 한 여자를 구한 남자가 그녀와 연일 만나 끊이지 않는 대화를 나눈다. 그로부터 어떤 마음들이 피어나고 일어나며 엇갈리다 사그라진다.
 
소설이 세기를 건너 살아남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이 소설의 중심을 흐르는 남녀의 미묘한 마음, 그 엇갈림이 오늘날 우리네 세태 속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공감이 한 몫을 하고 있을 테다. 이 소설에 영감을 받은 이 가운데는 창작자 또한 적지 않았는데, 그중 할리우드에서 잔뼈 굵은 작가 제임스 그레이가 있었다.
 
 영화 <투 러버스> 포스터

영화 <투 러버스> 포스터 ⓒ 수키픽쳐스

 
도스토예프스키로부터 할리우드까지
 
그레이는 이 소설로부터 착안하여 한 편의 드라마를 완성하는데, 그 작품이 바로 <투 러버스>가 되겠다. 그레이의 대표작 가운데 한 편으로 기억되는 이 영화는 각본부터 남다르단 평가를 받으며 상업적으로 규모가 작은 작품임에도 호아킨 피닉스, 기네스 펠트로, 이사벨라 로셀리니 등 이름난 배우들이 출연을 확정지었다.
 
이야기는 한 겨울 물속에 뛰어든 한 남자의 모습으로부터 시작된다.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던 그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물 밖으로 끄집어내진다. 그렇게 살아난 그는 물로 뛰어든 제 모습을 감추려는 듯이 황급히 자리를 피한다. 그의 이름은 레너드(호아킨 피닉스 분), 약혼녀와 이별한 뒤 벌써 몇 차례나 자살을 시도한 남자다. 조울증 약을 챙겨먹지만 이따금은 지독한 우울에 몸부림치는 그의 마음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다.
 
그러나 그의 곁엔 그를 아끼는 이들이 있다. 목 좋은 곳에서 작은 세탁소를 오래 운영해온 부모가 그들로, 부모는 기계식 세탁소를 여럿 운영하는 사업가와 좋은 조건으로 합병을 준비하는 중이다. 레너드가 물에 몸을 던진 그날 밤, 부모는 제 사업체를 인수하려는 사업가 부부를 초대해 함께할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그렇게 레너드는 산드라(비네사 쇼 분)와 만난다.
  
 <투 러버스> 스틸컷

<투 러버스> 스틸컷 ⓒ 수키픽쳐스

 
사랑이란 마음처럼 흐르지 않는 것
 
산드라는 사업가 부부의 맏딸로, 내심 레너드를 마음에 두고 있다. 그들의 만남 또한 부모들의 사업 때문만이 아닌 것이, 그녀가 우연히 레너드의 부모가 운영하는 세탁소 앞을 지나다 가게 안에서 어머니에게 춤을 청하던 레너드를 보고 마음에 품은 끝에 제 부모에게 그와의 만남을 주선해 달라 부탁하기에 이르렀단 이야기다. 매력적인 여성이 제게 먼저 호감을 품었다는 사실을 듣고 마음이 동하지 않을 남자가 몇이나 있을까, 레너드 또한 산드라에게 조금씩 마음이 가기 시작한다.
 
한때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여 결혼까지 약속했었던 그다. 그러나 그와 그녀에겐 유전질환이 있었고, 같은 질환을 가진 둘이 아이를 낳게 되면 아이는 얼마 살지 못하고 죽게 된다는 사실을 들은 여자의 부모가 둘을 갈라놓았다. 이처럼 아픈 과거가 오늘의 레너드를 자유롭게 놓아두지 않는다. 그의 마음을 찢어놓았던 비극은 새로운 시작 또한 주저하게 하지만, 산드라의 적극적 공세 속에서 레너드는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그러나 사랑이란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는 것이다. 레너드는 제 집 앞에서 우연히 한 여자를 발견한다. 첫 눈에도 남다른 미모를 지닌 여자의 이름은 미쉘(기네스 펠트로 분), 이제 막 레너드의 집 윗 층에 이사를 온 참이다. 그녀에게 단박에 반한 레너드는 이후 그녀와 만날 기회를 기다린다. 산드라와는 아직 특별히 관계가 진전되지 않은 참이니 안 될 것도 없는 일이다. 그저 부모의 사업과 저의 연애가 요상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제가 나서서 이렇다 저렇다 하기도 어려운 노릇이고 말이다. 그리하여 레너드는 산드라와 만나며 미쉘을 좋아하는 애매한 상황을 이어가게 된다.
 
 <투 러버스> 스틸컷

<투 러버스> 스틸컷 ⓒ 수키픽쳐스

 
두 여자 사이 흔들리는 마음
 
영화는 레너드가 미쉘과 산드라 모두와 관계를 진전시키는 난감한 상황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길을 걷다 미쉘과 우연히 만나 그녀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고, 만나보니 더욱 매력적인 그녀에게 전보다 큰 호감을 품게 되며, 심지어는 그녀가 유부남과 연애를 하며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고 곁을 지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미쉘이 레너드에게 바라는 건 어디까지나 마음의 지지가 되어 주는 친구관계일 뿐이지 남자는 아니다. 그녀가 사랑하는 사내는 레너드보다 훨씬 잘 나가는 유부남으로, 레너드가 감히 어찌할 수 없는 상대다.
 
그 사이 레너드와 산드라 또한 특별한 관계로 접어든다. 티 나게 둘 사이를 밀어주는 부모를 실망시킬 수도 없는 노릇인데다, 미쉘과 진전되지 않는 상황에 실망한 마음을 산드라에게 돌리다 보니 어느새 둘은 양가가 공인한 커플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확실하게 관계를 정리하는 사내도 있기야 있겠으나 불행히도 삶을 살다보면 레너드와 같은 이를 자주 보게 되는 것도 흔한 일이라 영화 또한 무리 없이 그의 양다리를 흥미롭게 그려낸다.
 
두 여자 사이를 오간다고 레너드도 마냥 행복하진 않다. 그의 마음을 빼앗은 건 어디까지나 미쉘인데, 그녀는 레너드가 넘볼 수 없는 상대의 행동에 일희일비하며 즐거워하고 절망하는 것이다. 그 곁에서 레너드가 할 수 있는 건 갈망을 숨긴 헛된 위로뿐이다. 산드라는 참한 여성이지만 레너드의 눈엔 전혀 차지 않는다. 미쉘 만한 미녀도 아닐뿐더러, 저를 자극하는 매력도 갖지 않은 탓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야멸찰 수 없는 레너드는 두 여자 사이에서 솔직할 수 없는 제 모습에 불안을 느낄 밖에 없다.
 
 <투 러버스> 스틸컷

<투 러버스> 스틸컷 ⓒ 수키픽쳐스

 
흔해빠진 연애담을 넘어 선택과 책임을 말하다
 
인간으로서, 또 애인으로서의 도리를 말하는 건 어디까지나 이 같은 사랑을 겪지 못한 이의 이야기일 밖에 없다. 영화는 레너드와 산드라의 아버지의 대화 가운데 '너는 개자식이냐 Are you a fuck up?'이라는 의미심장한 문장을 넣지만, 레너드가 스스로 그를 자인할 수도 없는 일이다. 어떠한 마음을 먹어도 미쉘을 보는 순간 모조리 무너지고 마니 말이다.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의 엇갈림 속에 레너드는 들끓었다 차갑게 식고, 얼어붙었다가 와장창 깨어지기를 반복한다. 마치 <백야>가 그러하듯 여자는 제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집중하고 저를 사랑하는 남자를 좀처럼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가 제게 관심을 거두기를 원치 않으니 레너드와 같은 이는 또 다른 나쁜 놈이 되어가는 것이다.
 
얼핏 이야기는 남자와 여자의 흔해빠진 연애담처럼 보인다. 영화로 만들기엔 아름답지 않고 구질구질하며 비겁해보이기만 하는 이야기, 그러나 현실 가운데 얼마든지 있고 있을 밖에 없는 이야기가 <투 러버스>의 관심이기도 하다. 사랑은 인간을 언제나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오로지 그가 감당할 수 있을 때, 감당할 수 있는 모습으로 찾아오는 사랑만이 인간을 더 낫게 하는 것이다. <백야> 속 주인공의 상실과 <투 러버스> 속 레너드의 비겁 사이에서 나는 그들보단 낫다 할 수 있는 관객이 얼마나 될지가 나는 몹시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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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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