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 중독'. 아마 2023년 동안 가장 많이 쓰인 키워드일 것이다. 이 단어에는 SNS의 무한 스크롤로 상징되는 시간 낭비와 집중력 저하, 그에 대한 사회의 경계와 우려가 깔려 있다.
 
요한 하리의 책 <도둑맞은 집중력>이 해외 도서 부문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 역시 그 흐름의 반영이다. 신경정신과 의사들과 뇌과학자들은 저마다 뇌에 지속적인 자극이 가해졌을 때 생길 수 있는 정신건강적 폐해들을 설파했다. 유튜브에서는 '도파민 디독스'에 도전하겠다며 금욕 생활을 자처하는 콘텐츠가 유행처럼 생산됐다.
 
하지만 팝을 위시한 음악계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약 2년 전부터 하이퍼팝(전자음악, 힙합 등 다양한 댄스 음악 장르를 극단적으로 재해석한 팝) 스타일이 음악시장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점점 묵직하고 요란해지는 하이퍼팝
 
 최근 몇 년간 전자음악 신은 하이퍼팝이 주도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전자음악 신은 하이퍼팝이 주도하고 있다. ⓒ 픽사베이

 
유튜브, 틱톡, 사운드클라우드로 음악을 접한 세대들이 이제 막 성인으로 접어들면서 생긴 흐름이다. 짧은 콘텐츠를 즐기며 유년기를 보낸 세대들이 본격적으로 음악시장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음악은 기존의 스타일을 비틀고 재해석하는 걸 넘어섰다. 요란하고 난잡하다. 몇몇 노래들은 뇌에 전기 자극을 가하는 기분마저 든다. 차분한 노래에 익숙한 이라면 10분 이상 듣기 힘들다. 어지럽다 못해 핑핑 돈다.
 
이들은 하이퍼팝, 그 중에서도 드럼 앤 베이스(Drum and Bass)와 저지클럽(Jersey Club)이라는 세부 장르를 앞세우며 등장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드럼 앤 베이스다. 아이조엑소(ISOxo)나 핀치(FiNCH), 니클라스 디(Niklas Dee) 가 대표격인데, 극단적으로 쪼갠 박자와 서브 베이스 위에 고음역의 효과음을 얹어 입체적인 사운드를 연출한다.
 
여기에 러닝타임은 절반 이하로 줄였다. 2000년대의 드럼 앤 베이스는 음악에 서사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러닝타임이 길었다. 6분짜리 곡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숏폼 콘텐츠와 함께 가는 음악시장
 
 하이퍼팝 흐름의 최첨단에는 뉴진스(NewJeans)도 있다. 섬세한 콘셉트를 앞세우면서도 극단적으로 쪼갠 박자로 시선을 잡아끈다.

하이퍼팝 흐름의 최첨단에는 뉴진스(NewJeans)도 있다. 섬세한 콘셉트를 앞세우면서도 극단적으로 쪼갠 박자로 시선을 잡아끈다. ⓒ 어도어

 
요즘 드럼 앤 베이스는 대부분 2분짜리 곡들이다. 1분대의 노래도 종종 보인다. 그만큼 짧은 시간 안에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대치의 청각적 자극을 담아낸다. 베이스가 머리를 울리고, 드럼이 정신없이 박자를 쪼갠다.

그 흐름의 최첨단에는 뉴진스(NewJeans)도 있다. 두 번째 EP앨범 수록곡 < ETA >는 아예 다급함이 콘셉트다. '네 남자친구가 지금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으니 빨리 와 달라'는 가사로 듣는 이를 조마조마하게 한다. 심리적 조급함을 음악에 끌어들여 감정이입을 극대화했다. 지능적이다.
 
드럼 앤 베이스를 저지클럽 스타일에 녹여낸 < Super Shy >는 그들의 곡들 중에서 가장 입체적이다. 소심한 화자의 마음을 담아내면서도 극단적으로 쪼갠 박자로 시선을 잡아끈다. 이 모든 전개가 2분 35초 안에 끝난다. 그만큼 압축적이다. SNS 무한 스크롤에 최적화된 곡이다. 뉴진스의 노래가 수많은 피드, 릴스, 쇼츠 영상에 배경으로 깔리는 이유다.

이는 SNS 기업들이 음악 스트리밍 시장에 뛰어든 흐름과도 궤를 같이한다. 지금의 10대들은 짧은 영상과 이미지, 여기에 음악을 곁들여 즐긴다.
 
하이퍼팝, 지금 세대가 내면을 분출시키는 방식

기성세대의 눈으로 봤을 때 이 흐름을 '도파민 중독'과 연결 짓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러운 사고의 흐름이다. 하지만 음악은 늘 젊은 세대에게 해방구 역할을 해왔다. 젊은이들은 언제나 한계에 가깝게 음악을 즐기길 원했다. 때로는 신체적-정신적 위험을 감수하는 일도 벌어졌다. 장발에 헤드뱅잉을 하던 1980년대 헤비메탈 세대가 그랬고, 1990년대 세기말 감성의 선두에 섰던 네오 펑크족들이 그랬다.

지금의 하이퍼팝도 사실 그 계보의 일부다. 아이조엑소가 "록과 메탈에서 일렉트로닉(하이퍼팝)으로 전환하는 것은 나에게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밝힌 건 그래서다.
 
1990년대 그런지 뮤직은 당시 사춘기 소년들의 우울과 절망을 대변했다. 2000년대 뉴메틀과 하드코어 비트는 구시대의 해체와 성적 에너지를 담아냈다. 2010년대의 개러지 펑크와 하우스는 이성과 즐겁게 춤추고 싶은 욕망을 표현했다. 음악이 때로 퇴폐적이거나 과격해져도 괜찮은 건, 이를 소비하는 이들의 젊음 때문이다. 소설가 김연수의 말대로 젊음이 좋은 이유는 낭비할 수 있는 몸, 즉, "과잉의 육체"를 지녔기 때문이니까.
 
그러니까 지금의 음악시장 트렌드가 '도파민 중독'을 따라간들 젊은 세대에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음악적 자극에 뇌를 푹 절여주는 것. 그게 지금 젊은 세대가 자신의 내면을 분출시키는 방식이다. 1990년대의 젊은이들이 너바나에 열광하며 땀내 가득한 클럽에서 머리를 흔들던 것처럼. 2024년, SNS 무한 스크롤 시대의 음악은 짧고 강렬하다.
뉴진스 하이퍼팝 도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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