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규가 고려를 국난에서 구해내고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다.

1월 7일 방송된 KBS 2TV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 16회에서는 거란의 대군에 당당히 맞선 양규(지승현)와 김숙흥(주연우), 두 영웅의 마지막 혈투와 2차 여요전쟁의 결말이 그려졌다.
 
서북면 도순검사 양규가 이끄는 결사대는 철군하는 거란군을 게릴라전으로 기습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수많은 고려 포로들을 구해낸다. 이에 분노한 거란 성종 야율융서(김혁)는 소배압(김준배)에게 고려를 떠나기전에 양규만은 제거하고 가겠다며 이를 간다.
 
양규의 고려군은 야율융서가 이끄는 거란군의 본대와 마주하게 된다. 양규는 포로들이 도망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하여 마지막 항전을 결심한다. 야율융서는 강조에게 그랬던 것처럼 양규에게도 거란의 신하가 될 것을 회유했지만 양규는 이를 거부한다.
 
마지막을 직감한 양규는 장병들에게"지금까지 모두 잘 싸웠다. 너희들의 용맹한 모습을 모두가 기억할 것이다. 모든 만백성과 온 산천이, 이 고려가 우리를 영원토록 기억할 것이다. 그동안 고마웠다"는 훈시를 전하면서 "마지막 싸움이다. 모두 거란주를 향하여 돌진하라. 마지막 한 사람까지 저자의 목을 향하여 돌진하라"고 지시하며 최후의 전투에 돌입한다.

열세 속 사투
 
 KBS2 <고려 거란 전쟁> 관련 이미지.

KBS2 <고려 거란 전쟁> 관련 이미지. ⓒ KBS2

 
양규의 결사대는 압도적인 전력의 열세 속에서도 거란군에 돌진하여 사투를 벌였다. 쏟아지는 창칼과 화살 세례에 고려군은 하나둘씩 쓰러져가고 결국 양규와 김숙흥만이 남았다.
 
피투성이가 된 양규는 이미 온몸에 중상을 입은 상황에서 고통을 참으며 마지막 힘을 모아 활을 들고 야율융서를 겨냥한다. 백보 안으로 진입하여 날린 화살은 야율융서에게 도달하지 못하고 힘없이 떨어진다. 양규는 "아직 열 보 부족하다"고 혼잣말을 되뇌이며 힘겹게 한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어느새 양규의 용맹에 질린 거란군들도 어느새 뒷걸음치기 시작하고 야율융서는 "지독한 놈"이라고 경악한다.
 
양규는 마지막 포효를 내지르며 포기하지 않고 야율융서를 향하여 전진하지만, 끝내 기력이 다하여 최후의 화살을 쏘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 김숙흥은 양규를 애타게 부르짖지만 그 역시 거란군의 포위에 둘러싸여 최후를 맞이한다. 이어 온몸에 화살을 맞는 양규와 김숙흥이 선 채로 장렬하게 전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고려사> 94권 '양규열전'에 따르면 "양규는 원군도 없이 한달 사이 일곱 번 싸워 수많은 적군의 목을 베었고, 포로가 되었던 3만여명의 백성들을 되찾았다. 양규와 김숙흥은 거란군과 싸우다가 온몸에 고슴도치처럼 화살을 맞고 전사하였다"고 그들의 활약상과 최후를 기술하고 있다.
 
이후 야율융서가 끝내 고려와 양규를 굴복시키지 못했다고 씁쓸해 하는 모습과, 고려군의 추격을 피하여 압록강을 건너 도주하는 모습을 끝으로 2차 여요전쟁은 막을 내린다.
 
양규와 김숙흥의 시신은 고려군에 의하여 다시 성으로 돌아온다. 운명하던 순간까지도 김숙흥의 주먹은 펴지지 않았고 양규는 손에 화살을 든 채였다. 살아남은 장수들은 두 사람의 장렬한 최후에 모두 눈물을 쏟았다. 흥화진부사 정성(김신호)는 양규의 손을 어루만지며"그동안 수고하셨다. 이제 좀 주무십시오"라고 마지막 작별인사를 남기며 끝내 통곡했다.
 
양규는 현종-서희-강감찬과 더불어 여요전쟁의 대표적인 영웅이지만 그동안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못했던 인물이다. 1차 여요전쟁에서 외교담판만으로 강동 6주를 얻어낸 서희, 3차 여요전쟁에서 귀주대첩의 대승을 이끈 강감찬의 인지도가 워낙 높은 반면, 양규는 고려가 가장 열세를 기록했던 2차 여요전쟁 막바지에 전사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양규의 활약이 고려에 미친 영향은 결코 서희나 강감찬에 뒤지지 않는다. 2차여요전쟁은 고려가 건국 이후 가장 멸망에 근접했던 최대의 위기였다. 고려의 서북면 방어지휘관이었던 양규는 당대 동아 시아 최고의 강군이던 거란의 대군을 맞이하여 소수의 병력으로 흥화진을 지켜낸데 이어, 곽주 탈환전 등 각지에서 거란군을 격파하여 포로로 잡혀가던 백성들까지 구출해내는 놀라운 전과를 올렸다. 양규가 고려 역사를 통틀어 유금필, 척준경, 김경손, 최영 등과 함께 손꼽히는 최고의 용장으로 추앙받는 이유다.
 
만일 양규의 활약이 없었다면 고려의 최전방 방어선은 맥없이 뜷렸을 것이고 배후의 위협이 사라진 거란군은 더 적극적으로 남하하여 서경(평양)을 함락하거나 남쪽으로 몽진한 현종을 끝까지 추격하여 사로잡았을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양규가 배후에서 끊임없이 거란의 보급 거점과 회군 루트를 위협한 덕분에 거란군은 고려의 수도인 개경을 함락하고도 결국 오래 버티지 못하고 막대한 피해만 입은 채 소득없이 철군할 수밖에 없었다.

제2차 여요전쟁의 실질적인 주인공
 
 KBS2 <고려 거란 전쟁> 관련 이미지.

KBS2 <고려 거란 전쟁> 관련 이미지. ⓒ KBS2

 
심지어 양규의 군공 대부분은 일개 지방 지휘관으로 맡은 역할을 넘어서 별다른 지원도 없이 단독으로 자청한 활약이었다. 양규는 고려사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기인 제2차 여요전쟁의 실질적인 주인공으로 국가의 멸망을 막아낸 구국의 명장이다.
 
그동안 국내 대중매체에서 이러한 양규의 활약상을 제대로 조명한 작품은 <고려거란전쟁>이 사실상 최초다. 2차 여요전쟁 당시 강조는 패전하여 처형당하고, 강감찬은 거란에 사로잡혀 고문을 당하고 현종은 남쪽으로 몽진하는 등, 고려 측 주역들이 내내 수난을 당하는 와중에 유일하게 승전보를 알리며 고려의 자존심을 지키는 양규의 독보적인 활약상은 그것이 곧 실제 역사이기에 더욱 빛난다.
 
드라마는 역사상 중반에 퇴장해야하는 양규라는 인물을 강감찬-현종과 대등한 주역으로 설정하며 많은 비중을 할애하여 깊이있게 조명했다. 강조의 정변에 동참하지 않고 현종에게 충성을 다하며 군인으로서의 본분을 지키는 장면, 야생마같은 부하 김숙흥과 티격태격하면서도 내심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는 케미, 흥화진 전투에서 인간방패가 된 고려 백성들의 모습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끝내 공격을 명하는 장면, 목숨을 내걸고 포로를 구하기 위하여 사지에 뛰어드는 마지막 전투 장면 등을 통하여 양규의 행적에 개연성을 입히고 인간적인 매력까지 부여한다.
 
<고려거란전쟁>은 2차 여요전쟁 파트에서 제작비의 한계 때문인지 통주 전투, 서경 공방전등  주요 전투들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여 아쉽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흥화진과 곽주전투 등 양규가 활약한 전투신들에 공 들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정된 사료 속에 많이 알려지지 못했던 양규는 <고려거란전쟁>을 통해 매력적인 캐릭터로 부활했다. 

배우 지승현의 열연
 
또한 양규를 완벽하게 소화해낸 배우 지승현의 열연도 호평을 받고 있다. 지승현은 그동안 여러 작품에서 주로 조연으로 활약해왔고 심지어 대하사극 출연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승현(양규 역)은 김동준(현종 역)과 더불어 <고려거란전쟁>에서 가장 파격적인 캐스팅으로 평가받는다. 결과적으로 이는 신의 한수가 됐다. 지승현은 특유의 낮은 저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중한 분위기와 절제된 감정표현으로 오히려 기존 사극과는 차별화된 자신만의 장군 캐릭터를 구축해냈다. 지승현의 섬세한 연기로 지장과 용장을 넘나드는 양규라는 인물의 매력이 더 빛날 수 있었다.

활약상에 비하여 그동안 주목을 덜 받았던 양규의 재조명처럼, 지승현이라는 새로운 주연급 배우를 발굴해낸 것은, 대하사극 세대교체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여겨진다. <고려거란전쟁>이 빚은 또 하나의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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