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재개봉 포스터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재개봉 포스터 ⓒ 워터홀컴퍼니(주)

 
연말이면 주목받는 영화가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돌아오던 <나홀로 집에> 시리즈가 그렇고, 전성기를 구가하던 니콜라스 케이지와 독보적인 미모의 티아 레오니가 공연한 <패밀리 맨>도 그렇다. 이밖에도 연말에 특별한 관심을 받는 많은 작품들이 있는데, 그중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도 한 자리를 차지할 게 분명하다.
 
이들 영화엔 공통점이 있다. 영화의 중심을 흐르는 주제가 가족과 통한다는 점이다. 날씨가 추울수록 몸과 마음을 녹이는 따스함을 찾게 되는 것이 우리 사는 삶이기 때문일 터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휩쓰는 동안 세계는 원치 않는 단절을 겪었다. 비대면을 비롯한 비일상의 일상화로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전과 비할 바 없이 줄어들었다. 특히 기성세대와 자라나는 세대 사이의 화합 또한 귀한 일이 되어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단절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었다. 비로소 팬데믹 국면이 종식되고 전과 같은 일상이 도래하자 사람들의 관심이 관계의 회복에 쏟아진 건 자연스런 일이다.
 
코로나19 이후 가장 주목받은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 워터홀컴퍼니(주)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이 같은 국면에서 수혜를 받았다 해도 좋겠다. 2022년 개봉해 미국에서 큰 화제를 모았고,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 자리를 꿰찼다. 가히 이변이라 해도 좋을 일이었다. 이 해 아카데미 시상식엔 역대급이라 할 만큼 좋은 작품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글쟁이를 격동시킬 만큼 완성도 있는 드라마를 쓴 <더 웨일>, 스티븐 스필버그가 자전적 이야기를 격조 높게 완성한 <파벨만스>, 이 시대 가장 주목받는 감독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데미언 셔젤의 인생작 <바빌론>, 칸느의 화제작 <슬픔의 삼각형>, 전 세계 영화역사상 가장 성공한 속편인 <아바타: 물의 길> 등이 한꺼번에 쏟아진 것이다.
 
그러나 뚜껑을 연 시상식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잔치였다.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 각본, 편집, 여우주연, 남우조연, 여우조연 등 주요부문을 이 영화 한 편이 모두 휩쓴 것이다. 주요부문 중 남우주연만 <더 웨일>의 브렌든 프레이저에게 돌아갔을 만큼 독무대라 해도 좋았다. 백인중심적이란 논란 끝에 다양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아카데미 시상식의 흐름을 감안하더라도 놀라운 일이었다.
 
이 영화가 가진 파괴력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개봉한 지 1년이 넘도록 각종 OTT 서비스에서 인기순위 최상단을 차지한 건 기본이고, 올 겨울을 앞두고 한국에서도 다시 재개봉할 만큼 그칠 줄 모르는 인기를 누려온 것이다. 도대체 어떤 영화이기에 이러한 관심을 일으킨 것일까.
 
미국 문화계가 주목하는 아시아 이민자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 워터홀컴퍼니(주)


영화는 아시아계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다. 미국으로 이민을 와 남편과 세탁소를 운영하는 에블린(양자경 분)이 주인공으로, 일과 가정 모두에서 고단한 일상을 보내는 여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무당국의 조사까지 이뤄지는데 말도 통하지 않고 법규는 어렵기 짝이 없어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다. 아버지는 퇴행성 질환을 앓고 하나뿐인 딸은 어느 날 갑자기 여자를 제 짝으로 데려오니 뭐 하나 마음처럼 안 된다는 푸념에도 이유는 있다.
 
뿐인가. 설상가상이라고 저 아니면 사람구실 못하리라 여긴 남편까지 이혼서류를 만들어 놓았다. 혼자 동분서주하며 타지에서 가족을 이끌어온 에블린으로선 분통이 터질 밖에 없는 일이다.
 
영화는 이 같은 난국 가운데 에블린의 일상에 찾아온 비일상을 영화적으로 풀어낸다. 소위 멀티버스라고 부르는 다중우주의 만화적 설정이 에블린의 일상 가운데 펼쳐지는 것이다. 함께 국세청을 찾은 남편이 난 데 없이 첩보원 행세를 하며 에블린에게 이어폰과 메시지를 전하고, 그로부터 이제껏 느낀 적 없는 낯선 광경과 마주하게 된다. 말하자면 세상엔 수많은 우주가 동시에 존재하고 그 모든 곳엔 에블린과 남편, 또 그녀의 아버지와 딸들이 수없이 많은 형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러나 그 모든 우주가 일대 위기에 처한 가운데 오로지 에블린이 파멸을 막을 구세주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매트릭스> 시리즈를 보는 듯한 이 장엄한 임무는 모든 우주를 파멸시키려는 악당 조부 투바키(스테파니 수 분)를 저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부가 에블린이 사는 세계에선 다름 아닌 그녀의 딸 조이가 아닌가. 다시 말해 다른 우주에서도 에블린과 남편, 딸 조이 등 주변인물들은 여전히 긴밀한 관계를 갖고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이 중 조이는 현실에서와 같이 에블린과 갈등을 빚고, 그로부터 전 우주를 멸망시키려는 대악당이 되기에 이른다.
 
돌고 돌아 도착하는 가족과 사랑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 워터홀컴퍼니(주)

 
영화는 에블린이 조이에 맞서 제가 사는 세상, 나아가 전 우주를 지키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멀티버스라 불리는 수많은 우주 속 다양한 저의 삶을 확인하는 것이 이 영화의 멋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에블린의 그 모든 삶 가운데 어느 하나도 제가 사는 이 세상의 삶보다 못한 게 없다는 게 아프게 다가온다.
 
똑같은 이들이 살아가는 수많은 세상에서 다른 삶이 펼쳐지는 건 바로 선택 때문이다. 선택의 기로에서 어느 길을 걷느냐가 곧 삶을 전혀 다른 모양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로부터 누구는 쿵푸의 전문가가 되고, 또 누구는 요리사가 되며, 세탁소를 지키고 살아가는 오늘의 에블린이 되기도 한다. 오늘의 선택이 나를 어떤 길로 이끌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선택에서 비롯된 결과가 내일을 만든다니 어느 선택 하나도 쉬이 내릴 수는 없는 일이다.
 
수많은 나와 또 수많은 우주의 존재는 사람을 가벼이 대할 수 없도록 이끈다. 각자가 어느날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닌, 수많은 선택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음을 이해한다면 그 결과를 존중하는 마음가짐을 품을 밖에 없는 일이다. 또 가장 가까운 사람, 즉 모녀와 부부, 부녀의 사이조차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음을 그리고 있단 점도 인상적이다. 그러면서도 최종 귀착지는 그 몰이해가 아닌 사랑으로 서로의 다름을 감싸 안아야 한다는 마땅한 결론이어서 영화가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데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볼 밖에 없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여러모로 보편적 주제를 색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영화다. 물론 앞서 언급한 수많은 명작보다 더 뛰어나다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오늘의 대중 앞에 충분한 호소력 있는 작품이란 건 부인할 수 없겠다. 무엇보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도 결코 변치 않는 가족과 인생이란 주제만큼은 오늘의 관객에게 반드시 통한다는 걸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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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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