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즌 프로농구 통합챔피언 안양 정관장이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다. 정관장은 최근 4연패 포함 12경기에서 1승 11패라는 극도의 부진에 빠져있다. 시즌 성적 10승 15패를 기록중인 정관장은 어느덧 순위가 7위까지 떨어졌다.
정관장의 마지막 승리는 지난 16일 최하위 서울 삼성전(84-75)이었다. 삼성은 지난 2년 연속 최하위이자 올시즌도 4승 20패(.167)로 독보적인 꼴찌를 지키고 있는 약체팀이다. 하지만 다른 팀들을 상대로는 별달리 힘을 쓰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히 크리스마스 주간에 4연패를 당하는 동안 정관장은 상대팀에게 모두 두 자릿수 이상의 큰 점수차로 대패했다. 18일 대구 한국가스공사(80-91)에 11점차가 그나마 가장 근소한 차이였고, 22일부터 부산 KCC(75-104)에 29점차, 24일 수원 KT(85-113)에 28점차, 26일 창원 LG(75-94)에 19점차로 줄줄이 완패했다. 평균 실점이 100점(100.5점)을 넘겼고 점수차는 –21.8점에 이를만큼 '악몽의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정관장은 2라운드 중반까지만 해도 9승 4패를 기록하며 선두권 경쟁을 벌일만큼 선전했다. 주축 선수들이 대거 이적과 군입대, 부상 등으로 전력누수가 심했던 것을 감안하면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하지만 믿었던 오마리 스펠맨의 복귀가 오히려 재앙의 시작이 됐다. 지난 2년간 정관장에서 활약했던 스펠맨은 뛰어난 득점력을 바탕으로 통합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정관장은 체중 증가와 정강이 피로골절 부상으로 시즌 초반 전력에서 이탈했던 스팰맨의 복귀를 믿고 기다려주며 노장 대릴 먼로와 일시 대체 선수 듀반 맥스웰로 버텨왔다.
스펠맨은 지난달 21일 마침내 부상을 털고 복귀했다. 정관장과 계약기간이 끝낸 맥스웰은 곧바로 가스공사로 이적했다. 그러나 부상 여파에 파괴력을 잃어버린 스펠맨은 5경기 평균 8득점이라는 극심한 부진을 보였고, 설상가상 지난 10일 원주 DB전(83-88)에서는 김상식 감독의 교체 지시를 거부하는 태업 논란까지 일으키며 구단의 분노를 샀다.
정관장은 스펠맨의 복귀 시점을 전후하여 7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정관장은 결국 DB전을 끝으로 스팰맨을 퇴출하고, 완전 대체선수로 로버트 카터를 영입했다. 카터는 22일 KCC전부터 정관장 유니폼을 입고 출전하여 3경기에서 24.3점, 8.3리바운드의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또다시 '부상폭풍'이 정관장을 덮쳤다. 정관장은 스펠맨의 초반 공백에 이어 정효근, 배병준, 최성원, 김경원, 렌즈 아반도, 대릴 먼로 등이 번갈아가며 줄줄이 부상으로 쓰러졌다. 이로 인하여 정관장은 개막 전에 구상한 베스트5가 올시즌 정상적으로 가동된 경기가 단 한번도 없었다.
또한 스펠맨의 부상 복귀와 맥스웰의 계악만료 시점과 맞물려 노장 먼로가 홀로 뛰어야 했던 경기들도 많았다. 카터가 대체선수로 합류하여 겨우 한숨을 돌리는가 했는데, 이번엔 그동안 과부하가 걸린 먼로가 햄스트링 부상으로 쓰러지며 또다시 카터 혼자 외국인 선수 1명으로 버텨야만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평소 침착하고 신중한 성격의 김상식 감독마저 "총체적 난국이다. 지도자 인생에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할 정도다.
현재 정관장은 먼로의 일시 대체선수를 알아보고 있지만 쉽지않은 상황이다. 먼로가 노장인 데다 햄스트링은 또다시 부상을 당하기 쉬운 부위인만큼 충분한 회복기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단기계약 조건으로 쓸만한 외국인 선수를 데려오는 일은 어렵다. 그렇다고 우승주역이자 스펠맨과 달리 팀공헌도도 높은 먼로같은 효자 선수를 섣불리 완전 대체하는 것도 모험이다.
한편으로 정관장의 추락은 어쩌면 구단의 소극적인 투자가 불러온 예고된 비극이기도 하다. 스펠맨의 부상과 태업이 본격적인 하락세의 트리거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외국인 선수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구단에 있었다.
정관장은 우승 주역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오세근(SK)과 문성곤(KT)이 모두 FA자격을 얻어 팀을 떠났다. 여기에 팀의 정신적 지주였던 양희종은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고, 돌격대장 변준형은 군에 입대했다. 여기에 스펠맨까지 불명에스럽게 퇴출되면서 지난 시즌의 우승 주역들이 모두 사라졌다.
나이는 들었어도 여전히 리그 최고의 토종빅맨인 오세근과 4년연속 수비왕에 빛나는 문성곤 중 최소 한 명 이상은 지켰어야 한다는 평가가 많다. 실제로 이들이 모두 건재했더라면 올시즌 정관장의 상황은 현재와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지난 10여년간의 황금기를 뒤로 하고 올시즌의 정관장은 사실상 강제 리빌딩의 기로에 놓여있다. 정관장은 앞으로 28일 고양 소노, 30일 서울 SK, 31일 원주 DB를 차례로 상대하며 4일간 3경기의 연말 강행군을 이어가야 한다. 특히 8연패 늪에 빠진 소노와의 '김승기 더비'는 정관장에게는 연패 탈출과 하위권 추락 사이에서 최대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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