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월드컵을 준비하던 한국 여자농구는 지난해 여름 큰 비상에 걸렸다. 한국여자농구의 기둥이자 분당경영고 시절부터 성인대표팀의 주전센터로 활약했던 박지수(KB스타즈)가 공황장애 증세로 대표팀에서 이탈한 것이다. 박지수가 빠진 대표팀은 농구월드컵에서 1승4패로 8강 진출에 실패했고 소속팀 KB 역시 지난 시즌 25승5패였던 성적이 10승20패로 추락하면서 2010-2011 시즌 이후 무려 12년 만에 봄 농구 진출이 좌절됐다.

공황장애와 손가락 수술로 약 1년의 공백을 가졌던 박지수는 지난 6월 대표팀에 복귀했고 다시금 대표팀의 기둥으로 활약했다. 한국 여자농구는 2024 파리올림픽 예선을 통과하지 못하면서 2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했지만 박지수가 맹활약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두 차례의 남북대결에서 승리하면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박지수가 건강을 회복한 KB는 27일 현재 우리은행 우리WON과 공동선두를 달리고 있다.

한국 여자농구는 박지수가 없었던 지난 1년 동안 젊은 선수들을 대표팀에 선발해 가능성을 시험했다. 그 중에서도 이 선수는 작년 농구월드컵 퀄리파잉 토너먼트에서 처음 성인대표팀에 선발된 후 올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국제대회에서 값진 경험을 쌓았다. 프로 데뷔 세 시즌 만에 삼성생명의 핵심선수로 성장하고 있는 183cm의 장신 포워드 유망주 이해란이 그 주인공이다.

좋은 신장과 뛰어난 기량 겸비했던 선수들
 
 연령별 대표팀을 거친 이해란은 2021-2022 시즌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삼성생명에 입단했다.

연령별 대표팀을 거친 이해란은 2021-2022 시즌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삼성생명에 입단했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이번 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은 고현지(KB)의 어머니이자 1989-1990 시즌 농구대잔치 MVP였던 조문주의 신장은 180cm다. 물론 1980년대에도 박찬숙(190cm) 같은 장신선수들이 있었지만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180cm 정도만 되면 대부분 팀에서 센터를 맡을 정도로 선수들의 신장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정은순(185cm)과 정선민(184cm)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여자농구에도 신장이 큰 포워드들이 배출되기 시작했다.

장신포워드의 원조로 활약했던 대표적인 선수는 여자농구 최초의 포인트포워드로 불리는 BNK 썸의 박정은 감독이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시작으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까지 총 4번의 올림픽에 참가한 박정은은 180cm의 좋은 신장을 가지고 있음에도 세 시즌 연속 3점슛 1위에 오를 만큼 뛰어난 외곽슛의 소유자였다. 여기에 통산5.5리바운드3.7어시스트를 기록했을 정도로 다재다능함을 상징하는 포워드였다.

현재 박정은 감독을 보좌해 BNK의 수석코치를 역임하고 있는 변연하 코치 역시 현역 시절 좋은 신장(180cm)과 뛰어난 득점력을 자랑하며 한 시대를 풍미한 장신 포워드였다. 특히 통산 34.9%의 성공률로 무려 1014개의 3점슛을 적중시켰을 정도로 외곽슛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현역 최고의 슈터로 불리는 강이슬(KB)이 통산 38.3%의 성공률로 726개의 3점슛을 성공시키며 변연하의 기록에 도전하고 있다.

박정은에 버금가는 다재다능한 포워드는 나오기 힘들 거라 했던 WKBL에서 박정은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는 선수가 등장했으니 바로 현존하는 최고의 포워드 김단비(우리은행 우리WON)다. 신한은행 에스버드 시절부터 득점과 리바운드, 어시스트,스틸, 블록슛 등 공수 전반에 걸쳐 뛰어난 기량을 자랑하던 김단비는 우리은행으로 이적한 지난 시즌 데뷔 후 처음으로 정규리그와 챔프전 MVP를 휩쓸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2018-2019 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183cm의 가드 박지현이 등장해 농구팬들을 놀라게 했다. 고1때부터 박지수와 맞대결을 펼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 박지현은 프로 입단 후 위성우 감독의 지도를 받고 순조롭게 성장해 2020-2021 시즌부터 우리은행의 핵심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박지현은 입단 초 약점으로 지적되던 자유투 성공률을 이번 시즌 82%까지 끌어 올리면서 리그에서 가장 까다로운 선수 중 한 명으로 거듭나고 있다.

프로 3년 차에 삼성생명의 에이스로 성장
 
 이해란은 이번 시즌 배혜윤을 제치고 삼성생명에서 가장 높은 평균득점을 기록하고 있다.

이해란은 이번 시즌 배혜윤을 제치고 삼성생명에서 가장 높은 평균득점을 기록하고 있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다른 구단이 우리은행을 상대하면서 박지현 수비에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존재 만으로도 '미스매치'를 발생시키는 좋은 신장 때문이다. 삼성생명 블루밍스에도 지난 2021-2022 시즌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주전센터 배혜윤과 신장이 같은 포워드 유망주가 전체 1순위로 입단했다. 2020-2021 시즌 챔프전 MVP에 빛나는 김한별(BNK)을 포기하면서 얻은 1순위 지명권으로 영입한 수피아여고의 특급 유망주 이해란이다.

1학년 때부터 수피아여고의 주말리그 왕중왕전 우승을 이끌며 MVP에 선정됐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과시했던 이해란은 2019년과 2021년 19세 이하 농구월드컵에 참가해 좋은 활약을 선보였다. 이해란은 프로입단 후에도 루키시즌부터 28경기에 출전해 평균 16분51초를 소화하며 5.8득점3.1리바운드0.9스틸의 성적으로 신인왕에 올랐다. 이해란은 출전시간이 24분16초로 늘어난 지난 시즌 9.1득점4.4리바운드1.2스틸로 더욱 성장한 기량을 선보였다.

프로 입단 후 착실히 경험을 쌓은 이해란은 지난 9월에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대표팀의 막내로 선발됐다. 비록 언니들에게 밀려 경기당 평균 10분 내외의 출전시간 밖에 가져가지 못했지만 대표팀에서 선배들과 함께 생활하며 아시아의 여러 나라와 격돌해 본 경험은 청소년대표 시절과는 또 다른 값진 경험이었다. 그리고 이해란은 아시안게임에서 얻은경험을 이번 시즌 소속팀 삼성생명에서 폭발시키고 있다.

이해란은 이번 시즌 종아리 부상으로 2경기에 결장했지만 12경기에 출전해 평균 31분26초를 소화하며 13.33득점(8위)7.17리바운드(7위)1.75스틸(3위)0.58블록슛(6위)를 기록하고 있다. 평균 1.3개에 그치고 있는 어시스트만 제외하면 흡사 김단비가 '레알 신한'에서 주전 선수로 도약했을 때의 성적을 보는 듯 하다. 그만큼 이해란이 프로 입단 3년 만에 공수 각 부문에서 삼성생명의 핵심 선수로 급부상했다는 뜻이다.

물론 이해란이 지금보다 더 좋은 선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아직 보완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60.5%의 자유투 성공률도 70%대 중반까지 끌어 올려야 하고 앞으로 자신에게 많은 수비가 몰릴 것을 대비해 더 넓은 시야와 정확한 패스워크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해란은 아직 만 20세에 불과한 어린 선수다. 앞으로 부상 없이 지금 같은 성장속도를 유지한다면 머지 않은 시간에 WKBL의 장신포워드 계보를 잇는 선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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