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스틸 이미지
찬란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안나와 홀라파 두 사람의 로맨스 물이다. 아마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전작들을 접한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예상치가 꽤 차이가 날 테다. 이 핀란드 작가의 영화세계를 미리 체험한 적 없는 이들이라면 크리스마스와 연말 대비 북유럽 풍의 이국적 멜로영화를 상상하며 관람을 결정할 테다. 분명히 본 작품은 로맨스 물이 맞다. 핀란드의 사회현실과 국제정세가 진하게 묻어난 것을 더한 것뿐이다. 지독히 현실적이라 오히려 어색한 느낌이 들 정도다.
우리가 대개 접하는 멜로 장르는 대강 이렇다. 선남선녀 배우가 자기들은 평범하다 못해 덜 떨어졌다며 의기소침하거나 자괴감에 빠진 행세를 하는 그런 부류, 이제는 그런 껍데기도 거추장스럽다며 노골적인 신데렐라 재연, 또는 아예 '상류사회' 그들만의 리그를 대리만족시켜주는 걸로 먹고 떨어져라 하는 데도 현실의 고단함을 잊기 위해서 '허구'라는 걸 알지만 빨려드는 형세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아이러니와는 동떨어져 있기에 더 희소성이 있다, 실제 거리에서 우연히 스칠 것 같은 인물들, 그것도 구질구질해 보일 정도로 보잘것없는 이들이 벌이는 로맨스 물이다. 하지만 우리가 접하는 숱한 영화나 드라마 풍경이 오히려 비현실적이기에, 이 지극히 현실적인 멜로드라마는 오히려 시선을 잡아끄는 마법을 펼친다. 첫 티타임에서 실업자 신세인 상대를 배려해 빵을 주문하라는 권유와 냉큼 요깃감이 될 빵을 가져오는 장면이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 없지만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에선 도저히 나올 수 없는 풍경이란 점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북유럽 식 유머를 절묘하게 구사하는 감독이다. 무표정하게 툭툭 내뱉지만 '촌철살인'을 구현하는 간결한 위트는 봉준호 감독이 자신의 영화를 표현할 때 종종 구사하는 '삑사리의 미학'(어이없는 실수나 예외적인 상황으로 웃음이 유발되는 장면을 가리킨다)과 닮은꼴이다. 이번 신작에서도 감독의 그런 장기는 유감없이 발휘된다. 억지로 웃기려 하지 않는데도 정교하게 배치된 핀란드 식 유머의 위력에 영화를 보는 이들은 금방 함락당하고 말 테다. 과장된 몸 개그나 이러고도 안 웃고 배기겠냐는 식으로 음악과 소품과 온갖 장치를 쏟아 붓는 코미디와는 차별화된 '하이 개그'다. 우리가 간혹 접하며 감탄하던 북유럽 가구나 건축양식의 매력처럼 '미니멀'로 승부하는 '고급진' 유머 코드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관객에게 선보인다.
복지국가 핀란드의 현실이 시사하는 흥미로운 디테일
그런 유머러스함은 생생하게 구현된 캐릭터와 배경 묘사에서 힘을 얻는다. 안사는 동정심이 많은 인물이다. 마트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물품을 폐기하던 중에도 배고픈 이들이 나눔을 요청하면 기꺼이 응한다. 하지만 그런 안사의 행동을 의심한 경비원과 관리자에 의해 부당해고를 당한다. 차가운 시장경제의 풍경이다. 한국영화나 드라마에서 사회적 문제를 강조할 때 간간이 묘사되는 소재이긴 하지만 핀란드와 한국사회 시민-노동자 의식 차이가 흥미로운 장면을 조성한다. 안사는 해고를 당하고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퇴근길에는 동료들의 위로와 (결과를 바꾸지는 못하지만) 노사 대치가 펼쳐진다. 큰 경계에선 다를 바 없는 결론이지만 적어도 핀란드에선 '꽥' 하고 소리라도 지르는 차이가 괜히 울림이 있다.
한편 홀라파는 권태로운 일상을 술로 때우는 육체노동자의 전형성을 띈 유형이다. 그는 일하던 공장에서 노후 장비 때문에 사고를 당한다. 하지만 그 때문에 음주근무가 발각되어 해고당하고 만다. 그를 위로하던 동료는 '노동조합'에 가입되어 있으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조언하지만 홀라파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자신은 '금속산업노동조합' 소속이라 건설현장 일용직 일을 하게 되면 별로 도움 될 게 없을 거라 답한다. 안사의 경우와 매한가지로 결과는 우울하지만 한국사회 현실보다는 조금의 차별성은 확연하다. 영화로 보는 핀란드 사회와 노사관계 편으로 영상 클립을 만든다면 제법 흥미로운 토론거리가 될 법하다.
두 주인공의 연이은 부당해고는 한국독립영화에서도 어렵지 않게 목격 가능한 장면들이지만 핀란드 사회의 면모를 확인시켜주는 차별점이 한국 관객들에겐 핀란드란 나라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킬 법하다. 지극히 평범한 개인들, 비정규직이나 일용직 노동으로 삶을 영위하는 이들이 살면서 자주는 아니라도 드물지 않게 겪을법한 '노동문제'가 이 영화에선 주인공들의 상황을 좌우하는 주요한 요소로 자리한다. 감독의 영화 속에서 주요한 배경으로 항상 활용되는 불안정 노동의 세계화가 본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주요하게 구성에 기여한다.
안사와 홀라파는 이후 각자의 사정으로 거듭 이직을 겪게 된다. 안사의 경우 불가항력적인 경우에 가까운 반면, 홀라파는 음주문제가 늘 발목을 잡는다. 이 경우 피상적으로 묘사된다면 홀라파 개인의 과실로 그에게 닥치는 해고의 책임이 전가되겠지만, 사실감 넘치는 핀란드의 황량한 풍경이 생생하게 묘사되기에 일방적으로 노동자 개인에게 도덕적 책임을 단죄하기보단 복합적으로 해당 캐릭터에 대해 돌아보게 만드는 여지를 충분히 남긴다.
복지국가 핀란드라는 장미 빛 환상 대신에 그 나라에도 불어 닥친 비정규직과 불안정노동의 현실이 있는 그대로 그려진다. 세상에 '유토피아'란 원래 없는 법이다. 그럼에도 한국사회와는 확연히 다른 제도와 인식의 차이가 느껴지는 연출이다. 그런 극사실적인 표현 덕분에 주인공들이 각자, 함께 겪는 위기는 관객들에게 더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예술영화작가의 선물, 깨알 같은 보물찾기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