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며, 2023년 내 마음을 벅차게 한 '최고의 드라마'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지난 9월 빅데이터 전문가로 우리에게 친숙한 송길영씨가 책을 한 권 냈다. 바로 <시대 예보: 핵개인의 시대>이다. 날씨를 미리 알려주는 일기 예보처럼 우리가 살아가야 할 미래를 미리 알려주겠다는 취지에서 낸 책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야 할 미래는 어떤 곳일까? 

송길영씨는 '핵개인'의 시대가 될 것이라 예견한다. 모두 쪼개지고, 흩어지고 홀로 살아가야 하는 '핵개인'이 사회의 기본 단위가 될 것이라 한다. 단출한 가족이 함께 사는 '핵가족'의 수를 넘어서는 시대에 '핵개인'이란 용어는 의미심장하다. 집단과 기성의 문법이 약해지는 사회, 개인이 삶의 기본 단위로써 삶을 영위해 나가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핵가족을 넘어, 핵개인이 새로운 물결로 다가오는 2023년의 끝자락, 올 한 해 가장 기억에 남는 드라마가 무엇이 있을까 하고 되돌이켜 보니 <사랑의 이해(2022, 12, 22~2023, 2, 9, jtbc)>가 떠올랐다. 
 
 사랑의 이해

사랑의 이해 ⓒ JTBC

 

드라마는 '이야기'이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 사람들이 즐겨볼 수 있는 이야기. 그래서일까, 올 한 해도 인기를 끄는 많은 드라마들은 여태까지 그래왔듯이, '우리'를 말했다.

우리 함께 이 역경을 헤쳐나가요. 우리가 함께라면 행복할 거예요(여기서 '우리'는 가족일 수도, 연인일 수도, 그리고 조직일 수도 있다). 여전히 우리의 드라마들은 함께라야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다.  

여전히 '우리'에 대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는 시절에 <사랑의 이해>는 중뿔난 드라마다 싶다. 드라마가 펼쳐내보이는 이야기의 결이 흡사 요즘 인기를 끄는 예능 '나는 솔로'와 같다. 

'나는 솔로'에 등장하는 영숙, 상철, 옥순 등의 갑남을녀는 단 몇 회차의 시간 동안 적나라한 마음을 드러낸다. 처음에는 그저 눈에 보이는 아웃핏으로 선택을 하던 이들이 중간쯤 각자의 스펙이 알려지는 순간 또 다른 이합집산을 펼친다. 외모와 스펙과, 거기에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하며 알게 된 '인간성' 등의 복잡한 셈법을 거쳐 최종 선택의 결과를 기다린다.

조건의 파고를 넘어 끌림의 결과를 향해 나아가는 젊은 군상들의 이야기가 만만치 않기에 시청자들은 매번 새로운 영수와 영자의 이야기에 열광한 게 아닐까. 

2023년 가장 진솔했던 사랑 이야기 

<사랑의 이해> 역시 보고 있노라면 이 드라마가 말하는 이해가 이해(理解)인지, 이해(利害)인지 헷갈린다. 예전 스타일대로라면 '사랑 앞에 뭔 놈의 이해(利害)' 하겠지만 '핵개인'의 미래를 살아가야 할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사랑의 이해는 그리 녹록지 않다. 그런 면에서 그 어떤 드라마보다 진솔한 드라마가 아니었을까.

드라마는 한 은행의 지점에 근무하는 하상수(유연석 분)와 안수영(문가영 분), 두 사람의 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연수를 마치고 KCU 은행 영포점에 처음 배치됐을 때만 해도 고참인 안수영이 하상수에게 업무를 가르쳐줘야 했다. 그녀가 전해준 업무 노하우가 담긴 다이어리를 하상수는 두 손 모아 받아들었다. 하지만 대학을 나온 하상수와 고등학교만 나온 안수영의 관계는 곧 역전된다.

안수영은 갓 대학을 졸업한 하상수에게 업무를 가르쳐 줄 정도로 능력이 뛰어나지만 일반직 전환에서 번번이 미끄러진다. 그런 안수영이 여전히 창구 전담직을 맡는 동안 연수원 실적 1등 하상수는 승진을 거듭한다. 그렇게 은행이라는 전통적 조직 내의 계급 속에 편재된 두 사람은 서로를 마음에 둔다.  

하지만 조심스레 다가가던 두 사람의 관계는 엇물린다. 그런데 드라마는 그런 두 사람이 가진 사회적 딜레마를 그저 기존 러브 스토리들이 극복해야 할 사랑의 장애물처럼 다루지 않는다. 아니, 외려 두 사람의 사랑보다, 홀로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삶의 무게에 더 비중을 둔다. 그런 면에서 <사랑의 이해>는 말 그대로 '핵개인'의 이야기이다. 

드라마는 하상수와 안수영의 관계 위에 박미경(금새록 분)과 정종현(정가람 분)을 얹는다. 직급은 대리에 불과하지만 날 때부터 VIP여서, 하상수에게 선뜻 외제차와 명품을 선물하는 박미경과, 갈 곳조차 없어 안수영에게 의탁해야 하는 공시생 청경 정종현의 등장으로, 사회적 계급의 층위는 적나라해지고 사랑은 복잡하게 얽혀든다. 

안수영은 자신에게 한결같이 따스한, 그리고 사람들이 어울린다고 하는 정종현을 선택하고, 하상수는 자신을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는 박미경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 선택은 또 다른 불편함과 자괴감을 낳는다. 그렇다면, 다시 하상수와 안수영이 이루어지면 되는 것일까?
 
 사랑의 이해

사랑의 이해 ⓒ JTBC

 
하지만 <사랑의 이해>는 다른 말을 전한다. 관계로 인해 피폐해진 그들은 저마다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오랫동안 서울살이를 하며 어떻게든 정규직 전환을 통해 은행 안에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으려던 안수영은 그 끈을 놓는다. 자신을 끊임없이 비정규직 사원으로 규정하던 그 체계에서 자유로워기로 한 것이다. 사랑을 통해 행복을 취하려 했던 마음도 놓아버린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을 향해 걸어간다.  

박미경 역시 마찬가지다. 하상수를 가짐으로써 얻으려던 사랑의 그림자를 깨닫게 된 그녀 또한 다른 선택을 하면서 자유로워진다. 사랑을 하려 했지만 자신을 둘러싼 삶의 이해(利害)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던 주인공들은 관계의 질곡을 통해 비로소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

내가 나로 행복할 수 없다면, 그 누군가와 함께라도 행복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게 바로 이 시대 젊은이들, 이른바 '핵개인'의 행복관과 닮은 모습이 아닐까.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원작과 달리)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됐다. 하상수와 안수영을 응원하는 시청자들은 그럼에도 그들의 관계를 긍정의 시선으로 보지만, 현실의 그들은 원작에서처럼 쿨하게 스쳐지나갔을 지도 모르겠다. '핵개인'의 행복론, 진솔한 이야기가 전하는 감동은 일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이 드라마를 기억하게 하는 힘이 아닐까.
사랑의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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