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매직' 김기동 감독이 포항 스틸러스를 떠나 FC서울의 지휘봉을 잡았다. 지난 12월 14일 서울 구단은 김기동 감독을 구단의 15대 사령탑으로 선임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김기동 감독은 1991년 포항의 전신인 포항제철 아톰즈에 연습생 신분으로 입단하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고, 부천 SK(1993-2002)를 거쳐 다시 포항(2003-2012)에 복귀하여 선수생활을 보냈다. 다재다능한 미드필더였던 김 감독은 국가대표와는 A매치 3경기 출전에 그쳐 큰 인연이 없었지만, K리그에서는 통산 502경기에 출전하며 이동국에 이어 역대 필드 플레이어 출전 2위를 기록한 레전드였다. 특히 세르히오 파리아스 감독 시절이던 2007년 K리그, 2008년 FA컵, 2009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 포항의 전성시대를 함께했다.
 
 부임 후 리그 첫 우승을 노렸던 포항 김기동 감독

FC서울 지휘봉 잡게 된 김기동 감독. ⓒ 대한축구협회

 
은퇴 이후에는 23세 이하 대표팀 코치를 거쳐 2016년 친정팀 포항의 수석코치를 역임했고 2019년에는 포항의 12대 감독으로 승격했다. 김 감독은 첫 시즌 포항을 리그 4위로 이끌었고, 2020시즌에는 리그 3위- FA컵 4강을 달성하며 우승트로피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K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일으켰다. 또한 2021시즌에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달성했다.
 
포항의 창단 50주년을 맞이한 2023시즌에는 울산에 이어 리그 2위에 이어 FA컵 우승이라는 값진 결실을 맺으며 감독 경력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쾌거를 이룩했다. 포항이 K리그 상위권 클럽들에 비하여 부족한 투자와 얇은 선수층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매년 상위권의 성적을 올릴수 있었던데는, 김기동 감독의 유연한 전술 변화와 선수장악력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는 평가다.
 
어느덧 K리그에서 손꼽히는 명장으로 올라선 김기동 감독을 국내외 다른 구단들도 주목했다. 최강희-서정원 등 한국 지도자들을 영입하여 재미를 본 중국 슈퍼리그 구단들도 김 감독 영입에 관심을 보였고 특히 상하이 하이강이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고심 끝에 김 감독의 최종 선택지는 K리그 잔류와 서울행이었다.
 
김기동 감독은 포항과 계약기간이 남아있는 상태였지만 원만하게 결별에 합의했다. 김 감독은 지난 2022시즌이 끝나고 구단과 3년 재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계약조건에 포항보다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국내·외 구단이 나올 경우 위약금 없이 풀어주는 조항이 포함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포항도 이미 김 감독과의 이별이 가시화되면서 대안 마련을 준비해왔고, 서울행이 공식 확정되자마자 같은 날 곧바로 구단의 또다른 레전드인 박태하 프로축구연맹 기술위원장을 신임 감독으로 발표했다.
 
김 감독은 포항의 공식채널을 통하여 포항 팬들에게 자필 손편지로 작별인사를 전했다. 그는 "오늘 전 꺼내기 힘든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24년 동안 포항에 살면서 포항이란 도시를 사랑했다. 또한 포항 스틸러스만 바라보고 살아왔다. 프로 선수로서 김기동의 시작과 지도자 김기동 시작엔 늘 포항 스틸러스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김 감독은 서울행을 결정한데 양해를 구하며 포항 팬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김 감독은 "많은 고심 끝에 결정을 내렸다. 가슴이 먹먹하고 쓰리고 아프다. 매일매일 마음이 불편하다"고 토로하며 "어디에 있든 한국축구 발전을 위하여 더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는 지도자가 되겠다. 저도 스틸러스 팬들에게 받았던 사랑 잊지않고 살겠다"고 약속했다.
 
포항 팬들의 반응은 대체로 아쉬움 반, 서운함 반으로 나뉘어진다. 김기동 감독의 선택에 대해서는 대체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분위기다. 프로 지도자로서 변화를 추구하고 더 큰 목표를 갈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김 감독이 K리그의 아르센 벵거(아스날)나 디에고 시메오네(아틀레티코)처럼 한 팀의 지휘봉을 잡아 오랫동안 장기집권해주기를 기대했던 포항 팬들로서는 갑작스러운 이별 소식에  허탈할 수밖에 없다.
 
포항 팬들이 가장 씁쓸하게 여기는 본질적인 문제는, K리그의 '화수분'으로 전락해버린 포항 구단의 현실이다. 포항은 K리그를 대표하는 명문구단임에도 투자와 운영비 규모는 중위권 수준에 불과하다. 송민규나 강상우처럼 기껏 공들여 키운 주전급 선수들을 국내외팀에 연달아 빼앗기며 '셀링클럽' 취급을 받은지도 오래됐다.
 
심지어 포항의 전력 유출은 선수만이 아니었다. 2009년 ACL 우승 직후 파리아스 감독은 계약기간이 남아있던 상태에서 사우디 알 아흘리의 제안을 받아 팀을 떠나버렸다. 2013년 포항의 리그 우승과 FA컵 2연패를 이끌었던 황선홍 감독은 구단과 계약이 만료된 후 반년 뒤에 경쟁팀인 FC서울로 떠났다. 그리고 이번에 또다시 김기동 감독이 7년 만에 서울로 가게되면서, 포항은 또다시 한창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던 명장을 다른 팀에 내주는 아픈 경험을 되풀이해야 했다.
 
포항은 그동안 한정된 전력에도 불구하고 유망주 육성과 조직력의 축구를 바탕으로 빅클럽에 밀리지 않는 K리그의 '언더독' 서사를 이끌어왔다. 프로의 세계에서 조건에 따라 팀을 옮기는 것을 탓할 수는 없지만, 공들여 키워낸 선수와 감독을 계속해서 리그내 라이벌팀에 빼앗기는 상황이 반복되는 구조에 팬들은 허탈할 수밖에 없다. 
 
김기동 감독으로서도 서울의 재건이라는 어려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서울은 K리그를 대표하는 빅클럽 중 하나지만 2016년 마지막 K리그 우승을 끝으로 7년 연속 무관에 그치며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특히 최근 4시즌간은 내리 하위스플릿 추락과 강등권 경쟁을 겪어야 했다. 
 
무엇보다 서울은 '감독들의 무덤'으로도 악명이 높다. 10대 감독이었던 최용수 감독 1기시절 이후 서울은 4명의 정식감독과 6명의 감독대행이 거쳐가는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황선홍을 시작으로 최용수(2기)-박진섭-안익수 전 감독 등은 모두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낙마했다.
 
프런트와 국가대표급 스타 선수들의 입김이 지나치게 강하고, 극성스러운 팬덤의 영향력이 큰 서울은 잔뼈가 굵은 베테랑 감독들에게도 난이도가 높은 구단으로 통한다. 포항에서는 구단 레전드 출신으로 선수단과 팬들에게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던 김기동 감독이지만, 서울에서는 성적이 받쳐주지 않으면 언제든 입지가 흔들릴수 있다는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한편으로 서울은 연고지나 시장규모를 감안할 때 울산-전북 등과 함께 K리그1을 선도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구단이다. 라이벌이자 리그를 대표하는 명문이었던 수원 삼성이 2024시즌부터 2부리그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은 가운데, 서울도 위기의식을 느껴야 할 상황이다.

김기동 감독이 서울을 다시 한번 전성기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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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동감독 FC서울 포항스틸러스 K리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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