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고려거란전쟁>의 한 장면.
KBS2
"승리하기 위하여 치른 대가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패배한 다음에 겪는 고통에는 절대로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폐하께서 지키려는 백성들과의 신의가, 오히려 백성들을 지옥에 빠뜨릴 수도 있다. 제 아무리 숭고한 가치도 승전에 도움이 되 않는다면 가차없이 버려야 한다. 전쟁이란 그런 것이다."
전쟁이라는 국가적 재난 속에서 지도자의 진정한 역할은 무엇일까. 12월 2~3일 방송된 <고려거란전쟁> 7~8회에서는 2차 여요전쟁으로 최대의 위기에 놓인 고려의 모습을 통하여 전쟁 속에 담긴 정치학을 조명했다.
흥화진의 고려군은 양규(지승현)의 지휘 아래 거란(요나라) 40만 대군의 거듭된 공세를 끝내 격퇴해낸다. 거란 황제 아율융서(요 성종, 김혁)는 흥화진 함락에 실패한데 크게 분노하여 선봉장들을 처형하려 하지만, 소배압(김준배)은 이를 만류하며 "폐하께서 선봉장을 참하신다면 그만큼 이 패전의 의미는 무거워진다. 허나 폐하께서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넘기신다면 이 패전의 무게는 아주 가벼워질 것"이라고 일깨워준다.
야율융서는 소배압의 조언을 받아들여 장수들을 용서하고, 흥화진에 예비병력을 남겨둔 뒤 강조(이원종)가 이끄는 고려 본군을 상대하기 위하여 통주로 향한다.
양규는 거란군의 포위를 뚫고 봉화를 올려서 흥화진이 건재하다는 소식을 알린다. 삼수채에 포진한 강조의 고려 본군은 흥화진의 소식에 크게 고무된다.
거란군과의 정면대결에 나선 강조의 고려군은 대기병용 병기로 준비한 '검차진(전투용 수레)'을 앞세워 대회전에서 거란이 자랑하던 철갑기병을 연이어 격퇴한다. 전령을 통하여 전황을 보고받은 현종(김동준)은 직접 백성들 앞에서 나서서 고려군이 이기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며, 개경은 승전의 분위기에 잠시 고무된다.
하지만 거란군 선봉도통 야율분노가 고려군의 본진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찾아내 단독으로 은밀하게 기습을 가한다. 강조는 거란군에 생포당하고 순식간에 수뇌부를 잃은 고려군은 그대로 붕괴되고 만다. 이에 2차 여요전쟁의 주도권은 거란에게 완전히 넘어가게 된다.
<고려거란전쟁>의 전쟁신 관련 연출은 기대가 컸던 만큼 평가가 엇갈린다. 드라마는 제 2차 여요전쟁의 대표적인 전투였던 흥화진 공방전과 통주(삼수채) 전투를 위주로 진행된다. 검차와 진법, 공성전, 인간방패 전략 등 이전의 사극에 비하여 전투의 고증과 사실성에서 진일보한 부분은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스펙터클에 치중한 보여주기식 연출이 아니라 전쟁의 잔혹함과 비극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데 더 주력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제작여건의 한계 때문인지 지나치게 내용이 축약된 급전개와 부실한 세부묘사는 아쉬움을 남긴다. 6회의 클라이맥스를 담당하며 긴박한 분위기를 연출했던 흥화진 전투는, 이어진 7회 오프닝에서는 곧바로 고려군이 승리했다는 결말만 보여주며 시청자들을 맥빠지게 한다.
또한 강조의 최후를 장식한 통주 전투는 그 규모로만 보면 1~3차 여요전쟁은 물론 한반도 전쟁사에 유례없는 대회전이었지만 정작 드라마에서는 그 스케일과 전개가 너무 부실하게 그려진다. 승승장구하던 강조가 단 한 번의 기습으로 어이없이 생포당하고 고려군이 붕괴되는 과정도 개연성이 크게 떨어진다.
<고려사>에 따르면 강조는 초반의 승세에 고무되어 방심하다가 거란군 기병들에게 본진이 돌파당하며 생포된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실제로 이 전투의 패배는 고려를 한때 멸망의 위기까지 몰아넣을 정도로 큰 타격이었다.
그러나 드라마에는 강조가 자신의 장막 안에서 바둑을 두며 전략을 논의하다가, 갑자기 나타난 거란군에게 붙잡히는 장면만 묘사된다. 세부적인 전후 내용은 대부분 대사로만 간략하게 설명하는 데 그친다. 시청자들로서는 내용 전개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