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골 차 대승 결과만 아니라 상대의 밀집 수비 허물기 방법을 확인시켜 준 월드컵 예선 첫 게임이었다. 체격 조건 좋은 스트라이커 조규성의 활동폭을 넓힌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손흥민 뿐만 아니라 이강인에게도 프리 롤에 가까운 선택지를 주었으니 본인은 물론 주위 동료들의 다양한 활용법이 드러난 것이다. 아시아 지역 월드컵 2차 예선은 이제 시작일 뿐 우리 대표팀이 실제로 주목하고 있는 것은 2024년 1월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이라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16일(목)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싱가포르와의 홈 게임에서 나란히 1골 1도움을 기록한 조규성, 이강인의 활약에 힘입어 5-0으로 크게 이겼다. 이제 우리 대표팀이 손흥민, 김민재 등 한 두 명의 에이스에만 의존하는 팀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 게임이었다.

① 조규성의 크로스 어시스트

게임 시작 후 33분만에 스트라이커 조규성이 시원한 오른발 발리슛으로 하산 서니 골키퍼가 지키고 있는 싱가포르 골문 크로스바를 때린 순간부터 우리 공격의 숨통이 트이는 듯 보였다. 예상했던 대로 싱가포르는 10명의 필드 플레이어가 수비벽을 세워 압박을 펼쳤지만 전반전이 끝나기 전에 대승의 물꼬를 틀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 카타르 월드컵 본선에서 확인한 조규성의 능력을 전통적인 9번 스트라이커로만 박아두고 뛰었다면 우리 팀은 계속해서 싱가포르의 밀집 수비를 답답하게 두들기고만 있었을 것이다. 사실 전반전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를 때까지 그런 답답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 선수들은 거기서 머물러 있지 않고 각자 잘 해낼 수 있는 능력들을 끌어내기 위해 더 다양한 방법들을 과감하게 꺼내들었다. 

가장 눈에 띈 변화는 스트라이커 조규성을 고립시키지 않은 것이다. 비록 첫 골로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크로스바를 때린 조규성의 오른발 발리슛도 그의 바로 앞에서 주장 손흥민이 높은 공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세컨드 볼 기회였다.

그렇게 외로운 스트라이커 역할이 아니었던 조규성은 전반전이 끝나기 전에 멋진 첫 골을 터뜨리며 활짝 웃었다. 44분, 이강인이 반대쪽에서 왼발로 절묘하게 올려준 크로스 타이밍을 확인한 조규성은 기막힌 라인 브레이킹 실력까지 보여주며 싱가포르 수비수 뒤쪽으로 돌아들어가 완벽한 왼발 하프발리 골을 차 넣었다. 대체로 이러한 공격 패턴은 스트라이커 역할을 맡은 선수가 상대 수비수의 시선을 끌며 바람을 잡는 틈을 타 미드필더나 날개 공격수가 라인을 깨고 빠져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강인의 크로스 눈빛을 조규성이 정확하게 읽은 것이 돋보였다.

가운데 쪽에 서서 상대 수비수들과 몸싸움을 펼치며 자리만 잡기 위해 안간힘만 썼다면 이런 장면은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조규성의 다른 움직임은 후반전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에 터진 추가골에서도 돋보였다. 이제 우리 대표팀 실질적인 플레이 메이커로 발돋움한 이강인이 오른쪽 측면에서 놀라운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는 순간 바로 옆에서 공간을 파고든 조규성의 크로스가 이어졌다. 

'이강인의 측면 돌파 후 크로스 - 조규성의 헤더 슛'이라는 일반적인 공식이 아니라 이강인의 측면 움직임에 조규성의 공간 침투 특별 옵션이 작동한 것으로 황희찬의 프리 헤더 골(49분)을 만들어낸 것이다. 동료들의 측면 크로스 어시스트를 받아 조규성이 시원한 헤더로 끝내는 패턴이 아니라 그 반대 패턴도 충분히 이룰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명장면이었다.  

② 이강인도 프리 롤

이전까지 우리 대표팀은 누가 봐도 에이스인 손흥민 활용법에 골몰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쩌면 행복한 고민이 한 가지 늘어서 이강인 활용법을 더 고민할 필요가 생겼다. 그런데 이 고민들이 쓸데 없는 것이라는 점을 두 선수가 잘 보여준 셈이다. 

이제 손흥민은 긴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공격 라인 어느 지점에 형식적인 자리만 표시해 줘도 알아서 자신은 물론 동료들을 빛내는 플레이를 엮어내고 있으며 이 게임에서도 충분히 그렇게 해냈다. 여전히 자신에게 두 명 이상의 수비수들이 따라붙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손흥민이 드리블로 상대 선수들을 크게 흔들거나 빠르고도 정확한 2:1 패스로 공간을 열어나가 자신에게도, 동료들에게도 결정적인 슛 기회를 만들어줬다. 

63분에 터진 손흥민의 왼발 감아차기 추가골은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여러 차례 감상한 손흥민의 시그니처 바로 그것이었고, 이 게임에 가운데 미드필더 역할을 맡은 황인범, 이재성과 이룬 움직이는 삼각형 조합은 '황희찬 - 조규성 - 이강인'의 공격 능력을 극대화하는데 기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손흥민의 그것과 또 다른 이강인의 프리 롤이 빛나는 순간이 나온 것이다.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 자리에서 출발한 이강인은 자신의 소속 팀 파리 생 제르맹에서 입증하고 있는 드리블, 방향 전환 탈 압박 능력을 바탕으로 그라운드 이곳저곳에 히트맵을 그리며 날카로운 득점 기회들을 만들어냈다. 

조규성의 전반전 첫 골을 어시스트한 크로스는 더 말할 것도 없고 황희찬의 헤더 추가골(조규성 크로스 어시스트)이 나오기까지 오른쪽 측면에서 싱가포르 수비수 두 명을 따돌리며 앞 공간을 열어나가는 이강인의 드리블 능력은 누구라도 입을 다물 수 없는 경지였다.

이강인은 85분에 상대 수비수가 걷어낸 공을 잡아서 묵직한 왼발 무회전 중거리슛으로 쐐기골까지 꽂아넣었다. 이강인의 프리 롤을 가능하게 한 후방 지원은 오른쪽 풀백으로 나온 설영우가 맡았다. 66분에 과감한 공간 침투로 페널티킥까지 얻어낸 설영우의 폭넓은 후방 지원이 있었기에 이강인은 오른쪽 측면 붙박이 미드필더가 아니라 더 자유롭게 가운데 쪽으로 움직이며 그 실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바이에른 뮌헨 수비를 책임지고 있는 김민재의 듬직한 커버 플레이와 과감한 드리블 빌드업도 앞에서 움직이고 있는 여섯 명 동료들의 공격력을 극대화시키는데 여전히 한몫을 해냈다.

이제 우리 선수들은 중국으로 건너가 오는 21일(화) 오후 9시 선전 유니버시아드 스포츠센터에서 중국과 만나야 한다. 바로 이 게임으로 조 2위까지 받는 3차 예선 티켓 가능성과 2024 아시안컵 전망까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2026 FIFA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조 결과
(11월 16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

한국 5-0 싱가포르 [골 : 조규성(44분,도움-이강인), 황희찬(49분,도움-조규성), 손흥민(63분,도움-설영우), 황의조(68분,PK), 이강인(85분)]

◇ 한국 선수들(4-4-2 포메이션)
FW : 조규성(65분↔황의조), 손흥민
MF : 황희찬(69분↔오현규), 황인범(69분↔이순민), 이재성(65분↔정우영), 이강인
DF : 이기제(65분↔김진수), 김민재, 정승현, 설영우
GK : 김승규

◇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C조 현재 순위
1위 한국 3점 1승 5득점 0실점 +5
2위 중국 3점 1승 2득점 1실점 +1
3위 태국 0점 1패 1득점 2실점 -1
4위 싱가포르 0점 1패 0득점 5실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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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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