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안양 정관장이 또한번 대어사냥에 성공했다. 이번엔 개막 무패행진을 달리던 선두 원주 DB의 8연승 도전마저 저지했다.
11월 10일 원주종합체육관에서 열린 2023-2024 정관장 프로농구 정규리그 경기에서 정관장을 홈팀 DB에 99-94로 승리했다. DB는 시즌 첫 패배를 당하며 7승 1패가 되었으나 선두를 유지했다. 3연승을 달린 정관장은 5승 3패로 울산 현대모비스, 창원 LG와 공동 2위로 도약했다.
이날 승리를 이끈 정관장의 라인업을 살펴보면 지난 시즌 우승 멤버들과는 전혀 달라졌다는 것이 눈에 띈다. 이종현, 최성원, 정효근은 올시즌 새롭게 합류한 이적생이고, 대릴 먼로와 박지훈은 백업멤버였다. 하지만 먼로가 22점 9리바운드 5어시스트로 중심을 잡아줬고, 박지훈이 15점 4어시스트로 승부처를 장악했다. 이적생 3인방은 총 34점 13리바운드를 합작하며 원투펀치를 지원사격했다.
정관장은 올시즌을 앞두고 프랜차이즈스타이자 국내 최고의 빅맨이었던 오세근이 SK로, 수비스페셜리스트 문성곤이 KT로 각각 이적했다. 변준형은 상무 입대, 양희종은 은퇴했다. 여기에 에이스인 외국인 선수 오마리 스펠맨은 초반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다.
완전히 새로운 팀으로 물갈이 된 정관장은 이적생들을 영입하며 나름 공백을 메웠다고 하지만, 지난 시즌보다 전력이 크게 약해진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오히려 경쟁팀들 전력이 대부분 업그레이드되면서 이번 시즌 정관장은 6강도 장담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전문가들도 많았다. 홈개막전에서 일부 홈팬들은 현수막 시위를 통하여 구단의 운영에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정관장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개막 초반 다소 들쭉날쭉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안정감을 찾아가며 1라운드를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5할승률 이상을 예약했다. 특히 그 중심에는 이종현의 부활과 박지훈의 성장이 있다.
국가대표 출신의 센터 이종현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우승 멤버이자, 2016신인드래프트 1순위 지명될만큼 국내에서 손꼽히던 유망주였으나 프로 입단후 큰 부상을 여러 차례 당하며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최근 몇 년간은 현대모비스에서 고양 캐롯(현 고양 소노)-KCC까지 여러 팀을 전전하는 저니맨이 되었지만 번번이 주전경쟁에서 밀려나며 출전시간조차 확보하기 어려울 정도로 위상이 떨어졌다.
과거의 자존심을 모두 내려놓은 이종현은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김상식 감독을 만나 기회를 요청했다. 마침 오세근의 이적으로 빅맨 보강이 절실했던 정관장이지만 이종현에 거는 기대는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런데 이종현은 올시즌 정관장 유니폼을 입고 8.9점, 4.7리바운드 0.9블록슛, 야투율 59.1%를 기록 중이다. 출장시간이 아직 평균 18분 28초에 불과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토종빅맨으로서는 최상급의 생산력이다. SK로 이적한 오세근(5.2점, 5.2리바운드, 야투 28.2%)이 초반 극도의 부진을 보이면서 오히려 그 빈 자리를 나름 잘메우고 있는 이종현의 분전이 더 돋보이게 됐다.
이종현은 지난 2일 삼성전(96-74 승)에서는 불과 13분만 뛰고 13점 10리바운드로 무려 1772일만의 더블-더블을 달성하기도 했다. 7일에는 지난 시즌까지 뛰었던 친정팀 KCC를 상대로 득점은 4점에 그쳤으나 8리바운드 3블록슛 2스틸로 수비에서 엄청난 공헌도를 보이며 74-72 승리에 기여했다.
3일만에 치러진 DB전은 올시즌 이종현의 최고 경기였다. 이종현은 올시즌 개인 최다인 14점에 리바운드도 7개나 잡아냈다. 이중 전반에만 9점 6리바운드를 몰아친 것이 정관장이 경기 주도권을 잡는데 큰 힘이 됐다. 이종현은 DB가 자랑하는 김종규-강상재-로슨의 트리플포스트를 상대로도 적극적인 골밑 공략과 리바운드 가담을 선보였다.
지난 시즌까지 몸싸움을 기피하고 소극적이라는 질타를 받던 것과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김상식 감독이 3연승 기간 내내 최근 이종현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은 이유다. 이종현의 경기당 20분이상을 출장한 것은 현대모비스 시절이던 2018-19시즌(20분 31초, 7.9점, 5리바운드)
박지훈은 변준형의 군입대로 올시즌부터 주전 가드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됐다. KT 시절엔 허훈, 정관장에서는 이재도(LG)-변준형같은 엘리트 가드들이 팀동료였던 탓에 항상 주전경쟁과 벤치멤버를 오락가락해야했지만 올시즌에야 온전히 풀타임 주전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DB전을 마무리한 해결사도 박지훈이었다. 91-91로 동점까지 허용했던 경기 종료 50초를 남기고 박지훈은 레이업으로 리드를 다시 가져온데 이어, DB의 파울작전으로 인한 자유투들을 침착하게 차곡차곡 성공시키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박지훈은 올시즌 현재 경기당 29분을 뛰면서 11.8점, 4.3어시스트, 3.4리바운드, 1.1스틸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고 있다. 아직 기복이 심하다는 단점은 있지만, 김상식 감독이 추구하는 정관장의 빠른 농구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결정적인 순간에 클러치능력으로 팀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모습이 지난 시즌의 변준형을 연상시킨다.
정관장은 KGC 시절부터 '화수분 농구'로 많은 스타급 선수들을 배출했다. 2010년대 KBL을 대표하는 스타였던 오세근-이정현은 말할 것도 없고, 박찬희-전성현-문성곤-이재도-변준형 등이 모두 올스타급 선수들로 성장하는 전통을 이어온 바 있다.
올시즌에는 몇 년간 재능에 비하여 빛을 발하지 못했던 이종현의 부활과 박지훈의 성장까지 이끌어내며 선수 육성뿐 아니라 재활까지 이뤄내는 기적을 연출하고 있다. 모두가 약해졌다고 예상했던 디펜딩챔피언의 유쾌한 반격이 KBL 판도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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