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뉴 노멀> 스틸

영화 <뉴 노멀> 스틸 ⓒ (주)바이포엠스튜디오

 
<뉴 노멀>은 호러 마스터로 불리는 정범식 감독의 신작이다.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었다. 정범식 감독은 <기담> <곤지암> 등 한국 호러의 한 획을 그은 장인이다. 이번에는 어떤 귀신이 등장하나 기대했다면 아쉽게 되었지만 사람만 나온다. <뉴 노멀>은 귀신보다 더 무서운 사람들이 등장해 러닝타임을 채워가는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다.

나흘 동안 서울 사는 6인의 일상 에피소드가 모인 옴니버스 형식이다. 각자 다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보이지만 묘하게 연결된 게 특징이다. 몰카, 스토킹, 연쇄 살인, 장기 매매, 데이트 어플 범죄 등 현실에서 벌어질 법한 범죄를 모티브 했다. 최지우, 이유미, 최민호, 표지훈, 하다인, 정동원 등이 고정된 이미지를 탈피했다. 서로 공통점 없어 보이는 의외의 조합은 기묘한 앙상블을 만들어 내고, 뚜렷한 주제 의식에 묶이며 충격을 안긴다. 인물들은 색다른 역할을 맡아 다음 에피소드를 기다리는 기폭제가 되어준다.

'고립'은 현대인의 키워드
 
 영화 <뉴 노멀> 스틸컷

영화 <뉴 노멀> 스틸컷 ⓒ (주)바이포엠스튜디오

 
영화는 공포가 일상이 된 뉴 노멀을 주제로 고립된 현대인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불과 얼마 전 겪었던 재난을 떠올리듯 영화는 1인 가구를 '공포'와 결합했다. 팬데믹 기간 동안 떨어져 지내야 했을 때 외로움을 느꼈다. 함께하지 말라고 하니 더 누군가와 연결하고 싶은 마음은 커졌고 온라인은 좋은 대안이 되었다.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그러면서도 예측을 깨는 반전 스토리로 놀라움을 준다. 그동안 얼마나 외모, 나이, 직업 등을 편협하게만 바라봤는지 제대로 해체하고야 만다. 큰 키에 단아한 인상을 지닌 현정(최지우)은 최근 독신 여성 살인 사건에 촉각이 곤두서 있다. 그 와중에 가스 검침원(이문식)이 찾아와 어쩔 수 없이 집안에 들이지만 묘하게 희롱당하는 찝찝한 기분이라 나가 줄 것을 요구한다. 이후 이야기는 갑자기 상상하지 못할 상황으로 변하게 되고 짜릿한 반전을 안긴다.

데이트 어플로 사랑을 찾으려던 평범한 20대 취준생 현수(이유미)는 매칭 상대와 첫 만남 장소에서 뜻하지 않은 일을 목격한다. 그 길로 당장 집으로 돌아갔지만 현수의 매칭 상대는 기묘한 방법으로 쫓아와 만나게 된다. 중학생 승진(정동원)은 봉사활동 점수를 받는 것보다 진짜 착한 일을 하고 싶었다. 어느 날 우연히 어려움에 빠진 할머니(이주실)를 선의로 도와주었다가 봉변을 당한다. 그저 칭찬도 받고 좋아하는 강아지도 볼 수 있다는 말을 믿었던 순수한 의도는 악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짓밟히게 된다.
 
 영화 <뉴 노멀> 스틸

영화 <뉴 노멀> 스틸 ⓒ (주)바이포엠스튜디오

 
한편, 인연을 찾길 원하는 외로운 대학생 훈(최민호)은 별자리, 사주 과학에 현혹되어 의문스러운 편지를 쫓는다. 자판기에서 발견한 분홍색 편지는 '헨젤과 그레텔'의 빵 부스러기처럼 어디론가 모험을 떠나라고 부추기는 듯하다. 결국, 달콤할 뻔했지만 살벌해져 버린 결과에 훈은 상처받고야 만다. 인연은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보다.

옆집 사는 승무원을 몰래 훔쳐보는 '취포자' 기진(표지훈)은 과대망상에 빠져있다. 그녀가 자신을 좋아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선 넘는 행동을 했다. 그로 인한 인과응보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형태로 벌어진다. 기진과 온라인 게임 중이었던 연진(하다인)은 사실 반지하에 틀어박혀 세상을 등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다. 진상 손님 처리에 결국 인간을 증오하게 된 절망적인 청춘이다. 편의점에서 유통기한을 넘은 음식을 챙겨오지만 쌓아둔 파인애플 통조림만 먹으며 지낸다. 사람에 지치고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 비극은 연진의 일상에 조금씩 스며들어 잠식하고야 만다.

뉴 노멀, 공포가 일상이 된 시대
 
 영화 <뉴 노멀> 스틸컷

영화 <뉴 노멀> 스틸컷 ⓒ (주)바이포엠스튜디오

 
'뉴 노멀(new nomal)'이란 시대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표준을 말한다. 뜻하지 않게 팬데믹으로 뉴 노멀을 맞이했고 삶은 급격히 변했다. 죽음이 늘 곁을 따라다니는 상황에서 디지털 문명이 가속화되었고 콘텐츠를 향유하는 형태가 바뀌었다. 현대에서 초현대로 급속도로 변화했다.

특히 가장 타격을 받은 분야는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극장이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무언가를 관람하고 싶어 했지만 극장만은 꺼렸고 개념을 탈피해 스마트폰, 노트북, TV로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다. 관객의 발길이 끊긴 텅 빈 극장은 고요했고 을씨년스러웠다. 극장은 차선책을 강구하게 되었다. 사라지는 것보다 형태를 달리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보였다. 엔터테이닝 기능을 강화해 오직 극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함을 선사하는 장소로 탈바꿈하려 고군분투 중이다.

그래서일까. 흥행 여부를 떠나 <뉴 노멀>은 의미가 크다. 한데 모여 있는 듯 보여도 각자의 공간에 틀어박혀 온기를 느끼기엔 부족한 삭막함을 담았다. 인간은 고독한 존재이지만 누군가와 함께이길 원하고 행복을 얻는 아이러니한 존재임을 확인하는 씁쓸한 113분이다.

정범식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팬데믹으로 200억 짜리 액션 프로젝트가 무산되었다"고 밝히며, 그때 떠오른 아이디어가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흉악 범죄였다고 밝혔다. 각종 사건 사고를 영화적 장치를 통해 현실과 맞닿게 연출한 의도는 비현실적인 일들이 현실에서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때아닌 눈송이가 날리는 마지막 장면은 모든 에피소드를 함축한다. 처음에는 놀랍지만 반복되면 무뎌지고야 마는,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는 현대인의 초상이다. 묻지 마 살인은 이제 대낮, 백화점 한복판에서도 일어나 경계가 사라졌다. 아무 이유 없이 폭언, 폭행, 살인을 저지르는 공포가 만연하고, 범죄의 표적이 내가 될 수 있다는 서늘함은 블랙 코미디 이상의 불안함으로 다가온다.
뉴노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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