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뉴 노멀> 하다인 배우

영화 <뉴 노멀> 하다인 배우 ⓒ (주)바이포엠스튜디오

 
지난 7일 서울 삼청동의 어느 카페에서 배우 하다인을 만났다. 하다인은 영화 <뉴 노멀>에서 꿈이 좌절되고 극도로 염세적으로 바라보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연진을 맡아 열연했다.

이날 하다인은 첫 인터뷰를 기억하고 싶다며 작은 선물과 손 편지를 준비했다. 마치 <뉴 노멀>에 등장했던 분홍색 봉투의 편지 같았다. 영화에서는 섬뜩했지만 오랜만에 받은 편지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매력적인 중저음이 자꾸만 말 걸고 싶어진다.
 
하다인은 정범식 감독이 찾은 보석 같은 배우다. 사실 정범식 감독의 액션 프로젝트 주인공으로 발탁되었지만 팬데믹으로 무산되었다고 설명했다. 액션을 잘 하고 싶어 개인 레슨까지 받으면서 열심히 준비했지만 아쉬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쉬던 중 <뉴 노멀>의 제안이 왔다고 전했다.
 
실제 연진과는 다른 성격이라면서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내외적으로 철저한 준비를 했다고 털어놨다. 그래서일까. 데뷔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안정적이고 힘 있는 연기를 보여줬다. 베테랑 배우들과 있어도 기세에 눌리지 않는 아우라를 발산하고 있는 당찬 신예였다.
  
 영화 <뉴 노멀> 하다인 배우

영화 <뉴 노멀> 하다인 배우 ⓒ (주)바이포엠스튜디오

 
-<뉴 노멀>은 서울을 배경으로 6인이 겪게 되는 외로움, 슬픔, 공포를 담은 옴니버스 형식인데요. 그중 연진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셨어요. 영화를 통해 처음 만나셨을 관객분들에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상명대 영화 연기과를 다녔고 그동안 단편, 독립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연기가 꿈이었는데 중2 때부터 너무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어요. 영화가 매력적인 게 글(대본) 이 배우, 스탭을 모이게 하고 영상으로 만들어져 관객에게 메시지나 감동을 주잖아요. 단순히 영상을 보는 건데도 삶에 영향을 주는 게 참 좋더라고요.
 
공백기가 길면 게을러질까 봐 저만의 공부 방법을 익혀나갔어요. 화술 연습, 영화 공부를 하면서 연기를 손 놓지 않았어요. 존경하는 배우의 신인 때부터 현재까지 필모 깨기도 해보고 인터뷰도 많이 찾아서 읽어 봤고요. 캐릭터 분석, 인상적인 장면을 글로 적으면서 좋은 캐릭터를 만나길 기도했습니다."
 
-간절히 기다린 끝에 인생 캐릭터를 만나게 되었네요.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내외적으로 중점 두었던 본인만의 포인트가 있다면요.
"감독님이 첫 미팅부터 연진을 세팅해 놓으셨고 전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어요. 일단 급하게 8kg을 감량해야 해서 무조건 안 먹었는데 그게 은근 도움이 되더라고요. (웃음) 극 중에서 유통기한 지난 삼각김밥이나 파인애플 통조림만 먹잖아요. 갑자기 음식을 안 먹으니까 저절로 피부가 거칠어졌죠. (그걸 살려서) 민낯에 아이라인만 그렸어요.

감독님이 연진이는 막 사는 친구니까 뿌리 염색은 안 되어 있고, 오래 일해서 편의점 포스기도 익숙한 상태라고 들었거든요. 관련 영상을 찾아봤는데 이론만 가지고는 안 되겠다 싶었죠. 끙끙 않다가 동네 편의점 사장님께 부탁드려서 도움받았어요. 몇 시간씩 가서 아르바이트도 했고요. 삼촌이 실제 편의점 운영하셔서 이것저것 자문도 구했습니다. 그랬더니 레슨 선생님이 칭찬해 주시더라고요. (웃음)
 
킥보드를 타는 장면도 공터에 일부러 나가서 연습도 많이 했고,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니까 청춘의 방황을 주제로 한 노래도 일부러 들으면서 한 달 반 동안 캐릭터에 심취했었어요. 촬영할 때 감독님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하다인으로 존재하지 말고 김연진으로 존재해라'라는 말이 힘이 많이 돼서 긴장 없이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꽤 말라 보입니다. 차기작을 위해 유지 중이신가요.
"아직 차기작은 없고요.(웃음) 촬영 이후 계속 그대로예요. 어머니가 아프셨거든요. 전 '연기'랑 '가족'만 생각하는 스타일인데 두 가지가 와르르 무너지던 때가 연진을 만나기 전이였어요. 스트레스를 음식으로 풀어서 통통한 상태였어요. 심적으로 힘든 시기에 기쁜 소식을 접했고, 저의 삶과 연결되어 있어서 연진이 인생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영화 <뉴 노멀> 스틸컷

영화 <뉴 노멀> 스틸컷 ⓒ (주)바이포엠스튜디오

 
-'연진'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자면, 음악을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가 잘 안되었잖아요.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인간을 증오하고 세상을 삐딱하게 봐요. 연진은 어떤 친구인가요.
"연진은 자기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아이예요. 음악도 방황하는 청춘을 상징하는 (스매싱 펌킨스) '1979'만 듣고 그래요. 한 마디로 절망의 아이콘이고 현대 청춘을 대변하고 있어요. 연진이 출퇴근하는 길까지도 절망원로고요. 매사에 부정적이고 세상에 불만도 많아요. 처음에는 이런 생각이 연진을 만들었다고 봤는데, 아프고 상처받은 마음을 이해했더니 세상이 이 친구를 이렇게 만든 거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실력은 있는데 꿈이 무산된 거죠. 어떤 마음이 들까, 힘들겠다 생각했어요. 자취방을 보면 악기들도 반지하 구석에 치워져 있고, 돈이 없으니 그걸 팔아야 되는데 안 팔고.. 미련이 남아 있는 친구죠. 아무튼 킥보드 타는 장면에서 울컥 올라왔어요. 저도 배우로서 삶이 막막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할 때가 있었으니까 공감되었죠.
 
누구나 외롭고 막막하고, 착잡한 생각이 들잖아요. 세상의 쓸모를 찾고 우울함의 끝까지 파고드는 시기가 있었거든요. 자취했던 삼성동에서 석촌호수까지 생각 정리하느라 걸어 다니기도 했었어요."
 
-중간에 욕도 하는 장면도 많아서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욕은 일단 살면서 쓴 적이 없어서 연습을 충분히 했는데도 '헉'이라고 들리더라고요.(웃음)"
 
-편의점에서 진상 손님을 마주하게 되잖아요. 술주정이 일상인 듯한 이문식 배우와 쓰레기봉투 환불해달라는 김미화 배우와 연기 호흡이 실제 상황 같았습니다. 애드리브는 없었나요?
"이문식 배우님 경우 제가 악쓰면서 멱살 잡는 장면이 첫 촬영이었는데요. (웃음) 언제든지 편하게 하라고 멱살도 더 세게 잡으라고 리드해 주셨어요. 실제 취중 연기하였는데 울분과 짜증을 끌어내 주셨고, 점점 취하시니까 몰입이 잘 되었어요. 캐릭터는 촬영 감독님이 잘 찍어 주셔서 돋보이게 해주셨던 것 같은데요. 이게 다 감독님의 빅픽처가 아닐까 싶긴 해요. (웃음)
 
김미화 배우님은 사전 리딩을 많이 가졌어요. 티키타카 합이 잘 맞아서 실제 상황처럼 보이죠. 감독님이 편의점 장면은 현실을 최대한 반영해서 진짜처럼 보이도록 의도한 부분이었어요. 편의점 관련 브이로그나 다큐멘터리를 많이 봤는데 밤에는 정말 별별 손님들이 많더라고요."
  
 영화 <뉴 노멀> 하다인 배우

영화 <뉴 노멀> 하다인 배우 ⓒ (주)바이포엠스튜디오

 
-장편이지만 옴니버스 형식이라 단편 모음집 같고, 주인공이지만 분량이 많지 않아서 아쉽지 않았을지 궁금합니다.
"분량에 불만은 없었어요. 저는 꽤 나온 편이거든요. (웃음) 감독님이 연결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다른 배우 연기는 분석하려 들지 말라고 하셨는데 (영화가) 이렇게 나올지는 몰랐어요. 각각 따로인 것 같은데 한 메시지로 끝나서 새삼 감독님의 능력을 감탄하는 중입니다. (웃음) 특히 성별을 바꾼 고전 오마주도 많이 넣으셔서 찾는 재미도 있을 거예요. 연기나 캐릭터 도움도 많이 받았지만 영화 제작의 가치와 배우로서의 접근 방식을 다양하게 배웠습니다."
 
-<뉴 노멀>은 작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폐막작이었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 영화제도 초청받아서 다녀오셨던 것 같은데요.
"극장에서 관객들과 같이 영화를 봤는데 너무 좋아해 주시는 거예요. 한 관객분이 저에게 디엠을 보내주셨는데 제 연기를 보고 눈물이 터졌다고 해서 같이 울었던 기억이에요. 이 분의 한마디가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해외 영화제는 런던과 바르샤바 두 곳에 사비로 다녀왔어요. 신기하게도 런던 관객은 무서워해야 할 때는 웃어서 한국과 정서 차이를 실감했죠. 바르샤바 관객은 조용하고 진지한 분위기였어요. GV 중에 한국은 잘 사는 나라라고 알고 있는데 가난한 사람 이야기가 왜 이리 많냐는 질문이 기억에 남아요. 아쉬운 건 해외 영화제를 가보니 대충은 알아듣겠는데 말을 못 하니까 답답하고 그랬어요. 영어 공부의 필요성을 실감했죠."
  
 영화 <뉴 노멀> 하다인 배우

영화 <뉴 노멀> 하다인 배우 ⓒ (주)바이포엠스튜디오

 
-좋아하거나 닮고 싶은 감독, 배우도 소개해 주세요.
"당연히 좋아하는 감독님은 <기담>, <탈출> 때부터 너무 좋아했던 정범식 감독님이고요. (웃음) 배우는 '메릴 스트립'이나 '공리' 같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메릴 스트립은 캐릭터 마다의 영혼이 보이더라고요. <소피의 선택>의 연기가 너무 좋아서 돌려 보다 보니 다섯 시간째 보던 기억도 있어요. (웃음) 그때 몸살도 났었거든요. 공리는 눈빛을 보고 있으면 캐릭터가 묻어나서 참 좋아합니다."
 
-앞으로 욕심나는 캐릭터가 있거나 혹은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포부가 궁금합니다.
"저는 서사가 풍부하고 깊이 있는 역할이 좋더라고요.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도 좋아해요. 춤, 무용, 액션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웃음) 자꾸 재능이 있다고 자극하니까 덤블링도 신나서 해봤고, 두 달 전에는 아크로바틱도 배웠어요. 글쓰기를 좋아해서 외가를 소재로 우당탕탕 가족극도 써보고 있거든요. 언제 시간 나면 정범식 감독님께 보여드릴까 하는데.. 왜 이렇게 썼냐고 혼날 것 같기도 하고.. (웃음) 얼마 전에 글쓰기 수업도 들었는데요. 그때 짧게 쓴 에세이를 모아 문집으로도 만들고 그랬어요. 연진의 다이어리 쓰기도 취미였는데 연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뉴 노멀>은 어떤 영화라고 생각하세요. 극장에서 <뉴 노멀>을 선택할 관객에게 간단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뉴 노멀>처럼 요즘은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인사도 잘 안 하잖아요. 랜선으로는 연결된 것처럼 보여도 다들 각자도생, 냉소적인 것 같고요. 혼자 있으면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하고, 같이 있어도 어긋나기도 하잖아요. 현실도 그런 것 같아요. 재미있는 어플이 많아서 즐겁지만 풍요 속의 빈곤인 세상이라고 생각 들었습니다. 부디 관객분들도 그런 고립감을, 각각 혼밥 먹는 장면에서 그 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한편, <뉴 노멀>은 2023년 서울에서 살아가는 여섯 명의 인물이 겪는 예기치 못한 이야기와 섬뜩한 사건들을 담은 옴니버스 영화다. <기담>, <곤지암>으로 한국 호러 마스터라 불리는 정범식 감독의 말세 스릴러다. 각각의 인물이 서로 조금씩 얽혀 있으며 보는 이에 따라 무섭기도 하지만 슬프기도 한 게 특징이다.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었으며 10초 만에 매진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하다인 뉴노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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