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는 관객의 '공포'라는 부정적인 정서를 건드리는 영화로 장르의 특성상 호불호가 많이 갈릴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공포영화라면 아예 관심조차 주지 않는 관객들도 적지 않지만 공포영화만 골라서 관람하는 '마니아 관객'의 수도 상당하다. 특히 다른 장르에 비해 유명배우가 출연하거나 많은 제작비가 투입되지 않아도 되는 만큼 마니아 관객들을 잘 공략해 제작비 대비 쏠쏠한 흥행수익을 올리는 작품도 적지 않다.

하지만 관객들을 놀라게 하거나 소름 끼치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다양한 취향의 관객들을 만족시키기 쉽지 않다. 이에 영화 제작사에서는 공포영화를 비튼 '코믹 호러 영화'를 만들기도 한다. <스크림>을 기반으로 여러 영화들을 패러디해 2000년부터 2013년까지 5편에 걸쳐 제작된 <무서운 영화>를 비롯해 <시체들의 황당한 저주> <좀비랜드> 시리즈 등이 기존의 공포영화 공식을 비틀어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던 대표적인 코믹호러영화들이다.

한국에서도 김지운 감독의 장편 데뷔작 <조용한 가족>을 비롯해 '귀공자' 이미지가 강했던 김승우의 연기변신이 돋보였던 <신장개업>, 배우들의 호연과 독특한 설정의 < 시실리 2km > 등 신선한 코믹 호러영화들이 제작됐다. 그리고 2004년에는 코미디 전문감독으로 유명한 김상진 감독이 네 작품 연속으로 호흡을 맞춘 차승원과 TV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장서희를 주연으로 내세운 휴먼 공포 코미디 <귀신이 산다>를 선보였다.
 
 <귀신이 산다>는 2004년 추석 시즌에 개봉해 300만 가까운 관객을 동원했다.
<귀신이 산다>는 2004년 추석 시즌에 개봉해 300만 가까운 관객을 동원했다.(주)시네마서비스
 
'복수의 여왕'으로 성공한 늦깎이 스타 

1981년 예쁜 어린이 선발대회에서 진으로 선발되며 연예계 활동을 시작한 장서희는 CF나 드라마에 간간이 출연하다가 1989년 MBC 공채탤런트로 선발되면서 본격적인 연기자의 길에 들어섰다. 하지만 장서희는 김찬우와 박지영, 오연수, 이창훈 등 동기들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며 스타로 성장하는 동안 10년이 넘는 무명시절을 보내야 했다. <한명회>와 <왕과 비> <허준> 등 필모그라피는 화려했지만 정작 장서희는 대중들에게 크게 각인되지 못했다.

그렇게 30대가 된 장서희는 2002년 임성한 작가의 <인어아가씨>에서 주인공 은아리영 역에 전격 캐스팅됐다. 장서희는 당시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기에 MBC 내부에서도 반대가 심했지만 <인어아가씨>는 장서희의 엄청난 열연 속에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장서희는 <인어아가씨>를 통해 2002년 MBC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했고 <인어아가씨> 종영 후에는 중국에 진출해 중국드라마 <경자풍운>에 출연했다.

조·단역으로 출연했던 몇 작품을 제외하면 영화 출연이 거의 없던 장서희는 2004년 김상진 감독의 <귀신이 산다>에 출연해 289만 관객을 동원하며 영화에서도 흥행작을 만들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하지만 장서희는 2005년 드라마 <사랑찬가>와 2006년 영화 <마이캡틴 김대출>의 조기종영과 흥행참패로 쓴맛을 경험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인어아가씨>에서의 열연은 우연"이라며 장서희를 폄하하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장서희는 2008년부터 2009년까지 또 한 편의 드라마를 통해 자신을 향한 의심의 시선을 뒤집는 데 성공했다. 바로 '막장계 3대 작가' 중 한 명인 김순옥 작가가 집필한 SBS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이었다. <아내의 유혹>에서 눈 밑에 점만 찍으면 착한 현모양처 구은재에서 복수에 눈이 먼 악녀 민소희로 변신하는 복합적인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한 장서희는 2009년 SBS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하며 '복수의 여왕'으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

2011년 독립영화 <사물의 비밀>에 출연한 장서희는 2014년 KBS의 <뻐꾸기 둥지>에 출연하며 지상파 3사의 일일드라마를 모두 휩쓸었다. 그리고 2017년에는 김순옥 작가와 약 9년 만에 재회한 SBS 주말드라마 <언니는 살아있다!>를 통해 또 한 번 신들린 연기를 선보이며 '장서희 복수 3부작'을 완성했다. 2022년 MBC 드라마 <마녀의 게임>을 통해 오랜만에 시청자들을 만난 장서희는 지난 1일 개봉한 신작영화 <독친>에 출연했다.

콤비 작가 없이 흥행파워 입증한 김상진 감독
 
 장서희(왼쪽)는 차승원이라는 든든한 파트너를 만나 첫 주연 영화를 통해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장서희(왼쪽)는 차승원이라는 든든한 파트너를 만나 첫 주연 영화를 통해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주)시네마서비스
 
세기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충무로의 코미디 장인'으로 군림한 김상진 감독을 이야기할 때는 그의 대표작 세 편의 각본을 쓴 박정우 작가(현 감독)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999년 10월에 개봉해 230만 관객을 동원한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김상진 감독과 첫 호흡을 맞춘 박정우 작가는 2001년 서울 관객 160만의 <신라의 달밤>과 2002년 전국 310만 관객을 모은 <광복절 특사>의 각본을 쓰며 김상진 감독과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다.

하지만 박정우 작가는 감독 데뷔를 위해 김상진 감독의 곁(?)을 떠났고 김상진 감독은 박정우 작가 없이 신작 <귀신이 산다>를 만들었다. <귀신이 산다>에서는 박정우 작가가 쓴 시나리오들처럼 기발한 설정은 없었지만 김상진 감독은 여전히 건재한 코미디 연출 감각을 보여주며 관객들을 웃겼다. 클라이막스에서 서로 대립하는 두 단체의 난장액션이 벌어지는 김상진 감독의 '시그니처 장면' 역시 <귀신이 산다>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아무리 <인어아가씨>를 통해 '대상배우'로 도약했다 해도 장서희는 <귀신이 산다> 출연을 결정하면서 많은 망설임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주연 데뷔작의 상대역이 최고의 코미디 배우로 떠오르던 차승원이었다는 점은 장서희에게 큰 행운이었다. 2003년 영화 <선생 김봉두>와 드라마 <보디가드>에 출연했던 차승원은 <귀신이 산다>를 통해 귀신을 무서워하는 해병대 출신의 건장한 청년 박필기 역을 맡아 발군의 코믹연기를 선보였다.

<귀신이 산다>는 N포털사이트 네티즌 평점 6.96점, D포털사이트 평점 6.5점이 말해주듯 300만에 가까운 흥행성적을 올린 것에 비하면 그리 좋은 평가를 받았던 영화는 아니다. 실제로 장서희와 차승원 역시 시간이 지난 후 <귀신이 산다>를 그리 자주 언급하진 않는다. 하지만 장서희와 차승원 모두 한창 젊고 왕성하게 활동하던 소위 '리즈시절'의 영화이기 때문에 두 배우의 아름답고 멋진 외모와 코믹 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주유소 습격사건>부터 <귀신이 산다>까지 4편 연속으로 2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김상진 감독은 2007년 <권순분 여사납치사건>으로 160만 관객을 모은 후 2010년대 들어 흥행감각이 급격히 떨어졌다. 2010년 주요 배우들이 교체된 <주유소 습격사건2>이 74만 관객에 머물렀고 고 김주혁과 김선아 주연의 <투혼>도 21만 관객에 그쳤다. 2015년 김동욱과 임원희, 손호준 주연의 <쓰리 썸머 나잇> 역시 7만 7000명으로 흥행에 크게 실패했다.

귀신도 설득하는 장항선 배우의 연륜 
 
 장항선 배우가 연기한 장길복은 귀신들을 설득해 위기에 빠진 박필기를 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장항선 배우가 연기한 장길복은 귀신들을 설득해 위기에 빠진 박필기를 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주)시네마서비스
 
<귀신이 산다>에서 두 주인공 장서희와 차승원 외에 가장 비중이 큰 캐릭터를 연기했던 배우는 바로 장항선 배우였다. 젊은 대중들에게는 <태왕사신기>에서 했던 대사 "이 뭔 DOG 소리야!!"라는 밈으로 유명한 장항선 배우는 <귀신이 산다>에서 큰 사고에서 살아난 후 귀신을 보게 된 장길복 반장을 연기했다. 장 반장은 영화 후반 귀신들을 설득해 집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필기(차승원 분)와 연화(장서희 분)를 돕는다.

지금은 권상우의 아내이자 록희와 리호의 엄마로 유명한 손태영에게 <귀신이 산다>는 영화 데뷔작이었다. 손태영은 <귀신이 산다>에서 차승원이 맡은 박필기의 여자친구 수경을 연기했다. 당시만 해도 배우 커리어가 짧아 그리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진 못했지만 애초에 손태영이 맡은 수경은 어려운 연기력이 필요한 캐릭터가 아니었다. 수경은 영화 후반 연화의 빙의를 도우려 하지만 기가 너무 세서 빙의에 실패했다.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한국영화를 보면 지금은 대중들에게 익숙한 얼굴이 된 배우들이 조·단역으로 출연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귀신이 산다>에서도 장현성이 연화의 남편으로 나왔고 박성웅은 영화 초반 차승원의 친구 역으로 잠깐 등장했다. 이 밖에 김응수가 부동산 공인중개사, 윤제문이 파출소장 역으로 출연했고 <귀신이 산다>의 각색을 담당했던 장항준 감독도 엔딩 장면에서 필기에게 퇴마를 의뢰한 부부 중 남편으로 등장했다.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영화 귀신이산다 김상진감독 장서희 차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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