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프로야구 정규리그 우승팀 LG 트윈스가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LG는 10월 27일 외국인 투수 아담 플럿코와의 계약해지를 공식 발표했다. 플럿코는 이날 오후 4시 미국으로 출국했다. LG 구단은 "플럿코가 그동안 재활에 매진했지만, 구단과 협의 끝에 한국시리즈 등판이 어렵다고 판단해 금일 출국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LG로서는 안타깝지만 예정된 결말이었다는 평가다. 지난해 LG 유니폼을 입으며 KBO리그 무대를 밟은 플럿코는 케이시 켈리와 원투펀치를 이루며 에이스로 활약했다. 2022시즌 28경기 162이닝을 소화, 15승5패와 평균자책점 2.39를 기록하며 눈부신 호투를 펼쳤고, 올시즌을 앞두고 총액 140만 달러에 재계약에 합의했다.
플럿코는 2023시즌에도 전반기만 17경기 11승 1패라는 엄청난 활약을 선보이며 LG의 선두등극에 크게 기여했고 MVP 후보로까지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전반기 종료를 앞두고 플럿코는 부상과 컨디션 난조를 이유로 1군 엔트리에서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8월에 1군에 잠시 복귀한 이후에는 세 경기에서 승리 없이 1패를 한 뒤 다시 왼쪽 골반뼈 타박상 진단을 받고 전열에서 이탈했다. 8월 26일 NC전을 끝으로 플럿코의 모습은 더 이상 마운드에서 볼수 없었고 시즌 최종성적은 11승 3패, 2.41로 마감했으며 규정이닝도 채우지 못했다.
LG는 후반기 플럿코의 공백이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케이시 켈리와 임찬규, 키움에서 트레이드로 영입한 최원태의 호투에 힘입어 정규리그 1위를 수성하고 29년만의 한국시리즈 직행이라는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플럿코의 거취와 몸상태는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LG의 최대 변수로 거론됐다. 플럿코는 부상 이후 재활 과정에서 LG 구단과 계속해서 의견 차이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플럿코는 미국 병원에서 받은 소견을 근거로 부상 회복에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국내 병원에서는 그보다 더 빠른 복귀가 가능하다는 판정을 내렸다.
염경엽 감독은 플럿코가 정규 시즌 막판에 최소 1-2번은 등판하여 실전에서 몸상태를 검증받기를 원했다. 염 감독은 이미 정규시즌 후반기에 "정규시즌 동안 플럿코가 최소 2경기는 등판해야한다. 따르지 않을 생각이라면 그냥 엔트리에서 제외할 것"이라며 엄포를 놓은 바 있다. LG 구단은 플럿코의 시즌 후반기 복귀를 설득했지만, 선수와 의견 차를 끝내 좁히지 못했다.
염 감독은 정규 시즌 우승을 확정한 이후 일찌감치 한국시리즈 구상에서 "없는 선수라고 생각하겠다"고 선언하며 플럿코의 퇴출을 공식화했다. 결국 가을야구를 밟지못하게 된 플럿코는 미국 조기 귀국을 결정했다.
한국시리즈같은 단기전에서 확실한 에이스의 가치는 무엇보다 크다. 2년간 KBO리그에서 검증된 건강한 플럿코의 위력을 감안하면 에이스급 외국인 투수를 제외하고 한국시리즈 엔트리를 구성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단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론은 오히려 이러한 염 감독의 결단에 납득하는 분위기다. 스타 선수 한두명에게 지나치게 끌려가다가 오히려 팀분위기를 망칠 수도 있다는 선례 때문이다.
2001년, 당시 삼성 라이온즈는 지금의 LG만큼 한국시리즈 우승이 간절한 팀이었다. 삼성은 당시 최고의 명장으로 꼽히던 김응룡 감독을 영입하고 스타급 선수들을 싹쓸이하여 호화전력을 구축했다.
삼성의 외국인 투수였던 발비노 갈베스는 15경기 만에 116.2이닝을 던져 완투 5회, 완봉 2회, 10승 4패 평균자책점 2.47을 기록하면서 삼성의 정규시즌 우승과 한국시리즈 직행에 기여했다. 전문가와 팬들 모두 이번에는 삼성이 한국시리즈 우승의 한을 풀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갈베스는 8월말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고국인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돌아갔고 이후 수차례나 입국 약속을 어기면서 삼성과 마찰을 빚었다. 결국 정규시즌이 끝난 다음에야 겨우 팀에 복귀했지만 실전 감각이 떨어져 있던 그의 컨디션은 정상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삼성은 갈베스의 이름값을 믿고 그에게 한국시리즈 1차전 선발투수라는 중책을 맡겼다. 하지만 갈베스는 1차전 4이닝 5피안타 3실점, 4차전은 2이닝 6피안타 4사사구 7실점이라는 처참한 결과만 남긴채 믿었던 삼성의 뒤통수를 제대로 쳤다. 갈베스의 부진으로 한국시리즈 마운드 운영이 꼬여버린 삼성은, 정규시즌 성적과 전력에서 크게 앞섰던 두산에게 2승 4패로 무너지며 한국시리즈 역사상 최대 업셋의 희생양이 되는 수모를 당했다.
사실 플럿코는 LG 팬들 사이에서는 일찌감치 '제 2의 갈베스'라는 의구심을 받았다. 실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멘탈과 워크에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자주 받은 게 두 선수의 공통점이다.
실제로 플럿코는 바로 지난 2022시즌에도 정규시즌 막바지에 담 증세로 전열에서 이탈했던 전력이 있다. 포스트시즌에 복귀하기는 했지만 시험 등판에서의 검증 없이 키움과의 플레이오프에 선발등판했다가 1.2이닝 8피안타 1사사구 1탈삼진 6실점(4자책)이라는 호러쇼만 남기며 LG의 가을야구를 망친 진짜 '갈베스의 재림'이 되고말았다.
당시 LG를 이끌었던 류지현 전 감독과 팀동료였던 포수 유강남(롯데)도 훗날 같은 외국인 투수인 플럿코와 켈리의 태도를 비교하여 플럿코의 프로의식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LG 팬들 사이에서도 플럿코를 비판해도 염경엽 감독이나 LG 구단을 탓하는 반응은 많지 않은 편이다.
긍정적인 부분은 갈베스의 대안이 없었던 2001년의 삼성에 비하면, LG는 확실한 1선발 켈리를 비롯하여 임찬규, 최원태, 이정용, 김윤식 등 선발자원은 풍부하다. 이미 플럿코 없이 후반기를 잘 이끌어왔기 때문에 선수단이 느낄 타격은 그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LG는 2002년을 끝으로 한국시리즈에 나가지 못했고 전체 선수단에서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아본 선수는 김현수, 박동원, 박해민, 최원태 등 10명도 되지 않았으며 우승 경험자는 그보다 더 적다. 심지어 염 감독 본인도 사령탑으로서의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은 아직 없다. 그만큼 '큰 경기 경험'은 LG의 가장 큰 약점으로 꼽힌다. 만일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결과가 좋지않다면, 플럿코를 제외한 염 감독의 이 결단도 중요한 분기점으로 회자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염 감독은 개인보다 팀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염 감독은 정규시즌 우승 확정 전후로 29년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부담감이 높아진 데 대하여 "큰 경기에서는 경험이나 이름값보다는 간절함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플럿코를 염두에 둔듯한 언급이자 자신을 포함한 LG 선수단 전체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한국시리즈 우승이 간절한 LG에게 플럿코의 이탈이라는 악재가 오히려 선수단을 더 똘똘 뭉치게 하는 전화위복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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