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명의 프로야구 레전드가 정든 그라운드와 작별을 고했다. 두산 베어스는 10월 28일 통산 132승에 빛나는 베테랑 좌완투수 장원준이 구단에 현역 은퇴 의사를 밝혔다는 소식을 전했다.
 
장원준은 부산고를 졸업하고 2004년 신인드래프트에서 롯데 자이언츠 1차 지명을 받으며 프로에 입단했다. 입단 첫해부터 차세대 유망주로 인정받은 장원준은 꾸준히 1군에서 기회를 얻으며 선발 수업을 받았다.
 
3년차인 2006년 당시 팀내 최다인 179.1이닝을 소화하며 최초로 규정이닝을 채우고 풀타임 선발투수로 자리매김했다. 5년차인 2008년에는 전 경기를 선발투수로만 소화하며 12승으로 생애 첫 두 자릿수 승리를 돌파했다. 이후 장원준은 경찰야구단(2012-13) 기간을 제외하면 2014년까지 롯데에서 매년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하며 리그 최고의 정상급 선발투수로 자리매김했다.
 
롯데에서 9시즌을 마치고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은 장원준은 2015년에 앞서 4년 총액 84억원이라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조건에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이대호(은퇴), 강민호(삼성), 손아섭(NC) 등과 함께 롯데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로 꼽히던 장원준의 이적은 롯데 팬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또한 두산에게도 장원준의 영입은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다. 두산이 전통적으로 외부 FA 영입에는 소극적이기로 유명했던 구단이었는데, 장원준의 몸값은 당시만 해도 오버페이 논란을 일으킬만큼 파격대우에 가까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장원준의 합류는 이후 2010년대 중반 '두산 왕조'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신의 한수가 됐다.
 
당시 두산에 갓 부임한 김태형 신임 감독이 장원준이 FA가 되자마자 구단 프런트에 문자를 보내 영입을 요청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리고 김 감독은 9년이 흘러 장원준을 데려가며 롯데 팬들의 원성을 자아냈던 바로 그 팀의 사령탑으로 부임하게 되었다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장원준과 두산의 동행은 성공적이었다. 장원준은 이적 첫 해부터 30경기에서 12승12패, 평균자책점 4.08을 기록하며 두산이 14년만의 'V4'를 달성하는데 1등 공신으로 자리매김했다. 장원준 본인에게도 프로 커리어에서 첫 우승트로피였다. 이듬해인 2016년에도 장원준은 27경기 15승6패, 평균자책점 3.32를 기록하며 두산 선발진 '판타스틱4(니퍼트-보우덴-장원준-유희관)'의 일원으로 통합우승과 2연패에 앞장섰다.
 
두산 입단부터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세 시즌은 장원준 야구인생의 황금기로 꼽힌다. 이 기간 장원준은 두산의 토종 에이스로 활약하며 86경기에 나서 41승(전체 5위) 27패 평균자책점 3.51(전체 3위)을 기록했다. 특히 포스트시즌에서는 4승 평균자책점 2.44를 기록하며 빅게임 피처로 명성을 떨쳤다.

또한 장원준은 롯데 5년차였던 2008시즌부터 경찰야구단 복무 시절을 제외하고 두산 3년차였던 2017시즌까지 8시즌 연속 두 자릿수 승리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이는 이강철(1989∼1998년, 10년 연속) KT 감독과 정민철(1992∼1999년, 8년 연속) 전 한화 이글스 단장에 이어 KBO리그 역대 세 번째 기록이었고, 좌완으로서는 장원준이 최초였다. 또한 같은해에 좌완 최초 10년 연속 세 자릿수 탈삼진이라는 대기록도 추가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장원준이 전성기에도 종종 '롤러장(롤러코스터+장원준)'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공이 잘 긁히는 날은 언터처블이 되지만 안풀리면 그야말로 난타를 당할 정도로 기복심한 피칭을 꼬집는 표현이었다. 실제로 장원준은 전성기 시절에도 류현진-김광현-양현종 등 당대 일급 좌완들보다는 한 수 아래로 여겨졌고, 2점대 이하의 자책점과 1선발급의 위상을 가진 적은 없었던 것도 이런 기복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장원준은 데뷔 이후 2017시즌까지 큰 부상 없이 매시즌 규정이닝을 꼬박꼬박채우며 두 자릿수 승리를 책임질수 있는 투수였고, 단기전과 큰 경기에도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감독 입장에서는 한 경기를 압도하는 것은 장담하지 못하더라도, 한 시즌을 길게 놓고보면 가장 안정적으로 믿고 맡길 수 있는 투수가 바로 장원준이었다. 팬들은 이러한 장원준에게 '장꾸준(장원준+꾸준함)'이라는 별명을 붙여주며 칭송했고, 장원준은 오버페이 논란을 딛고 모범 FA의 대명사로 등극했다.
 
장원준은 2010년대 중반에는 국가대표팀에도 꾸준히 승선하며 두 차례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과 2015년 프리미어12에 출전하며 대한민국 선발진의 한축을 담당했다. 특히 대한민국이 정상에 오른 프리미어12에서는 2경기에 선발출전하여 1승, 자책점 2.31(11.2이닝 3자책점)의 호투를 선보이며 국제대회 우승 커리어까지 추가했다.
 
하지만 장원준도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꾸준함의 대명사였던 장원준이었지만 정작 몰락은 롤러코스터처럼 갑작스럽고 가파르게 다가왔다.

장원준은 2018시즌부터 급격한 노쇠화와 무릎부상이 겹치며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2018년 3승 7패, 자책점 9.92에 그친 장원준은 연속두 자릿수 승리와 규정이닝 행진이 중단되었고, 이후 4년간은 통합 38⅓이닝을 소화하는 데 그치며 단 1승도 추가하지 못하는 충격적인 슬럼프에 빠지며 사실상 전력외 선수까지 위상이 떨어졌다. 

은퇴 기로까지 몰린 장원준이었지만 2023시즌을 앞두고 이승엽 신임 감독이 부임한 것은 장원준에게 라스트 찬스가 됐다.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벼랑 끝에 몰린 베테랑의 고뇌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던 이 감독은 장원준에게 명예로운 마무리를 위한 기회를 줬다.
 
장원준은 5월 23일 잠실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선발등판하여 5이닝 4실점으로 무려 1844일 만의 승리투수이자 통산 130승 달성에 성공했다. KBO리그 역대 11번째이자 역대 왼손 투수 최고령 130승(37세9개월22일)을 달성했다.
 
이후 장원준은 두산 선발진에 구멍이 난 5~6월에 대체선발로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며 팀의 가을야구 진출에 기여했다. 시즌 최종성적은 11경기(10선발) 3승 5패 평균자책점 5.27로 전성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통산 132승이자 역대 9번째 2000이닝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무엇보다 말년에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수많은 베테랑들에 비하여, 수년의 부침을 딛고 짧고 굵게 '마지막 불꽃'을 태운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시즌이었다.
 
장원준은 두산 유니폼을 입은 9년간 188경기에서 47승 42패 12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4.49를 기록했다. 프로 통산 성적은 132승 119패 14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4.28의 성적을 남겼다.
 
장원준은 구단을 통해 "정든 그라운드를 떠난다는 선택이 결코 쉽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세웠던 마지막 목표들을 이뤘기 때문에 후련한 마음"이라고 작별인사를 남기며 "그래도 마지막까지 박수받고 떠날 수 있는 것은 전부 '팀 베어스' 덕분이다. 던 내게 엄청난 힘이 됐던 팬들의 함성을 평생 잊지 않겠다. 정말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두산은 니퍼트, 유희관, 김현수, 오재원, 오재일, 김태형 감독 등이 잇달아 팀을 떠나거나 은퇴한 데 이어 장원준마저 유니폼을 벗게되면서, 이제 왕조 시대의 주역은 이제 양의지와 김재호 정도만이 남아 새로운 시대를 앞두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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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준 두산베어스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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