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30일> 스틸컷

영화 <30일> 스틸컷 ⓒ (주)마인드마크


결혼은 서로 다른 길을 걷던 사람이 같은 길을 걸어가야 하는 협력 프로젝트다. 다소 거창하게 말한 것 같지만 20년 혹은 그 이상을 다른 생활 문화권에서 살아가다가 갑자기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에 애로사항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실제로 10년을 연애한 후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헤어진 커플도 있다. 오래 만났다고 해서 잘 맞는다는 보장도 없다. 연애와 결혼은 전혀 다른 결이라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게 하나도 없을 수 있다. 그러니까 맨날 싸우고 화해하고 지지고 볶기를 반복한다. 좋아하는 음식 종류부터, 아침을 챙겨 먹느냐 마느냐, 야행성인지 주행성인지, 양말 뒤집어서 벗어 놓는 습관 하나까지 불만이 가중된다.
 
영화 같은 결혼했는데... 이혼하는 부부
  
 영화 <30일> 스틸컷

영화 <30일> 스틸컷 ⓒ (주)마인드마크

 
영화 < 30일 >은 우여곡절 끝에 멜로 영화같은 결혼에 골인했으나 현실은 스릴러 영화 같았던 두 사람의 좌충우돌 이혼기다. 달라도 너무 달랐던 둘은 모든 것을 이겨내고 부부가 되었으나, 서로의 지질함과 '돌아이 기질'을 참다못해 법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숙려 기간 30일이 남은 상태에서 교통사고로 동반 기억상실증에 걸려 깨어 난다.
 
정열(강하늘 분)과 나라(정소민 분)는 '반대가 끌리는 이유'로 사랑하게 된 케이스다. 사랑의 콩깍지가 씌었었지만, 현재는 극한 혐오만 쌓여 정(情)마저도 남아 있지 않아 슬픈 사연의 주인공이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이는 아마도 심장이 시키는 일을 머리가 따라가지 못해 생기는 불일치가 잦아진 결과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듯이, 쏟아진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고 평생의 트라우마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를 인지할 새도 없이 거침없이 속마음을 드러내 상처 주는 데만 급급한 사정이었다.
 
결혼 후 나라는 시어머니로부터 말끝마다 "너는 부잣집 딸내미라"라는 말을 들어야 했고, 정열은 나라로부터 "백수가 뭐하러"라는 말을 여러 차례 들어야만 했다. 좋은 말도 한두 번이지 신경을 긁는 단어의 반복은 이혼의 결정타가 되어 버린다. 결국 둘은 법원에서 과거의 불만과 모욕을 한꺼번에 쏟아내고, 사랑했던 사이임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치함만 늘어난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봤던 경험이 있다면 격한 끄덕거림이 동반될 현실 고증을 영화는 코믹하게 펼치는 데 성공한다.
 
이를 듣고 있던 판사, 변호사, 심지어 관객도 동화되는 리액션은 < 30일 >이 가진 가장 큰 무기다. 듣다 보면 '그래도 너무 심했네', '나라면 저렇게는 안 할 것' 등 속으로 누군가의 편에 서서 공감하게 될 즈음, 영화는 교통사고를 통해 둘의 기억을 리셋하기에 이른다.
 
이로 인해 30일이라는 이혼 숙려 기간 동안 기억은 찾고 이별은 성사하려 동거에 들어간다. 과거 부부임을 인지했지만 전혀 모르겠는 타인과의 어색한 동거는 재미있는 상황을 유발한다. 나라의 동생 나미(황세인 분)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시키는 일을 본능적으로 실행해 나가던 두 사람은 마침내 결정에 이른다.
 
늘 먹던 맛인데... 조금 다른 느낌이라
  
 영화 <30일> 스틸컷

영화 <30일> 스틸컷 ⓒ (주)마인드마크

 
영화는 기억이 지워졌다고 해도 어딘가에 남아 있는 작은 실마리를 주목한다. 흔히 로맨스물에서 차용하는 클리셰지만 그 익숙함이 둘의 케미와 유머로 완급 조절된다. <이터널 선샤인>과 <결혼 이야기>의 어딘가를 표류하는 < 30일 >은 단순한 서사에 동반 기억 상실이라는 색다른 소재로 재미를 더한다. 이는 전생의 연인을 잊은 환생같은 설정이다. 두 번째 인생을 보여주는 방식이라, 늘 먹던 음식이 살짝 레시피를 달리한 것처럼 안전함과 신선함을 동시에 잡으며, 맛있다는 결과에 이르는 거다.
 
남대중 감독의 영화 <위대한 소원>을 봤던 관객이라면 세 친구의 B급 유머가 커플로 옮겨왔다는 걸 단박에 알아챌 것이다. 필자 또한 <위대한 소원>을 좋아했던 관객으로서 오랜만에 <기방도령>으로 호흡 맞춘 정소민과 새롭게 합류한 강하늘의 의기투합이 < 30일 >의 흥행 비결임을 인지할 수 있었다. 명절 대목을 노리고 레이스에 뛰어든 한국 영화들 보다 늦게 개봉했지만 중년의 사랑을 로맨틱 코미디로 담아내 138만 명의 관객을 모은 <달짝지근해: 7510>처럼, < 30일 >도 대작들 사이의 다크호스로 떠올라 여전히 순항 중이다.
 
요즘 영화 시장은 침체기를 넘어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깃 설정부터 쉽지 않다는 곡소리가 나올 정도다. 거장 감독이나 배우의 귀환, 멀티캐스팅, 역대급 제작비로 물량공세 한들 되살아날 기미가 없다. 오히려 '가성비'와 '가심비'를 잡은 영화가 각광받고 있다. 클리셰를 넣고 짜임새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배우 연기력 통해 진심으로 다가가야 그나마 체면치레 한다. 끝으로 재미있다는 누군가의 입소문이 화룡점정임을 < 30일 >이 증명하고 있다.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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