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대표팀 평가전 한국과 튀니지의 경기. 한국 이강인이 경기를 마친 후 운동장을 돌며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13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대표팀 평가전 한국과 튀니지의 경기. 한국 이강인이 경기를 마친 후 운동장을 돌며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한민국의 팬심은 맹활약을 펼친 선수들에게는 열광했지만, 감독에게는 싸늘한 반응을 드러내며 극명하게 대조를 이뤘다. 현재 대표팀의 복잡한 상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10월 A매치 평가전 튀니지와의 홈경기에서 4-0 대승을 거뒀다. 이로서 클린스만호는 지난 9월 사우디와의 유럽 원정 평가전에 이어 2연승이자 홈 첫 승을 신고했다. 클린스만호 출범 이후 한 경기 최다득점-최다 점수차 승리 기록도 추가했다.
 
이날의 히어로는 단연 이강인이었다. 전반을 0-0으로 마치며 답답한 경기흐름이 이어지던 후반 10분 이강인은 페널티 박스 외곽에서 자신이 얻어낸 프리킥을 날카로운 왼발로 마무리하며 골망을 갈랐다. 이강인의 A매치 15경기 출전만에 첫 득점이었다. 이어 2분 뒤에는 박스 안에서 능숙한 탈압박과 볼 컨트롤로 튀니지 수비진을 농락당하며 2연속 득점이자 첫 필드골까지 터뜨렸다.
 
최근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황선홍호(24세 이하 축구대표팀)가 우승을 차지했지만 정작 이강인 본인은 5경기에서 공격포인트를 하나도 기록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털어내는 경기력이었다.
 
또한 이날 승리가 더 의미가 있었던 것은 팀의 주장이자 부동의 에이스였던 손흥민이 결장한 상황에서도 완승을 거뒀다는 것이다. 손흥민은 대표팀에 소집되었으나 부상 우려도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전반에 답답한 흐름이 계속되자 팬들은 손흥민의 이름을 연호하기도 했다.
 
후반에 이강인의 맹활약이 이어지며 경기 흐름을 반전시키자 대표팀은 끝까지 손흥민을 무리시키지 않고 아낄 수 있었다. 이강인은 이날 공격형 미드필더와 윙어를 오가며 득점만이 아니라 볼 배급과 경기 조율, 킬패스, 수비 가담 등에서 전방위 활약을 펼치며 승리를 이끌었다. 약 10여 년 전 당시 에이스 박지성이 은퇴하고 손흥민이 데뷔했을 때처럼, 앞으로 손흥민의 뒤를 이을만한 '한국축구의 아이콘'에 가장 근접한 선수는 역시 이강인임을 예고하는 듯한 장면이었다.
 
이강인의 눈부신 맹활약에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도 뜨겁게 이강인을 연호했다. 손흥민-김민재-황희찬 등 쟁쟁한 여러 스타플레이어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박수와 환호를 받은 선수는 단연 이강인이었다. 이미 높았던 인지도와 인기에, 경기장에서 증명한 실력까지 더해지니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이강인의 활약에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 경각심을 드러냈다. 그는 경기후 이강인에 대한 팬들의 반응을 거론하며 "사실 한 선수에게 이렇게 집중적으로 환호가 쏟아지는 것이 이강인에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축구 선수가 아닌 '연예인급 대우'를 받고 있다. 연예인은 골을 넣지 않는다. 이강인은 실력이 좋고 더 발전할 수 있는 선수다. 더 겸손하게, 더 배고프게, 더 열심히 축구에만 집중하는 환경이 필요할 것 같다"는 조언을 남겼다.
 
공교롭게도 클린스만 감독은 이날 대표팀에서 유일하게 '야유'를 받은 인물이다. 킥오프 직전 장내 아나운서에 의해 클린스만 감독이 호명되며 전광판에 그의 사진이 떠오르자, 경기장을 가득 메운 팬들은 일제히 야유를 쏟아냈다. 앞서 선수단의 이름이 하나하나 호명될 때마다 팬들이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보냈던지라 클린스만 감독을 향한 차가운 반응은 더욱 극명하게 대조될 수밖에 없었다.
 
 13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대표팀 평가전 한국과 튀니지의 경기. 4 대 0 한국 대표팀의 승리로 경기가 끝난 후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강인을 안아주고 있다.

13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대표팀 평가전 한국과 튀니지의 경기. 4 대 0 한국 대표팀의 승리로 경기가 끝난 후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강인을 안아주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클린스만 감독의 행보를 둘러싼 논란에 대하여 한국 팬들의 곱지않은 여론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올해 2월 취임 후 역대 외국인 감독 최장 기록은 5경기 연속 무승에 그치며 성적과 경기력이 모두 기대 이하였다. 여기에 국가대표 감독임에도 주로 외국에 머물며 개인활동에 더 치중하는듯한 불성실한 모습으로 팬들의 실망감을 자아냈다. 클린스만 감독은 거듭된 비판에도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겠다.'고 선언하며 여론은 더욱 악화된 상태였다.
 
비록 튀니지전 대승과 A매치 2연승으로 분위기 반전에는 성공했지만, 이것으로 클린스만 감독을 향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튀니지전에서 무실점 대승을 거두기는 했으나, 여전히 조직력이나 전술적인 발전보다는 이강인을 비롯한 몇몇 선수들의 개인능력에 의존한 결과에 가까웠다.
 
이날 답답한 승부의 흐름을 바꾼 것은 단연 '이강인 시프트'였다. 그러네 이강인의 후반 포지션 이동이 사실 클린스만 감독이 준비한 전술이 아니라, 경기 중 이강인이 먼저 즉석에서 아이디어를 낸 것이라는 사실이 선수 본인의 인터뷰를 통해 알려지며 클린스만 감독의 능력은 더욱 도마에 올랐다. 누리꾼들은 대승에도 불구하고 클린스만의 경기운영과 판단력이 오히려 선수만도 못하다는 쓴소리를 쏟아냈다.
 
클린스만 감독이 이강인의 높은 인기와 관심에 대하여 "연예인과 축구 선수는 다르다"고 언급한 대목은 꽤 의미심장하다. 물론 클린스만 감독의 조언 자체는 전혀 틀린 것이 없다. 한 팀에서 특정 선수에게만 지나치게 관심이 쏠리고 아이돌같은 과도한 인기를 누리는 것은, 선수나 팀 모두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강인은 적어도 지금까지 '워크에식'으로 문제를 일으킨 전력은 한번도 없다. 손흥민이나 김민재, 조규성 같은 현재 대표팀의 주축 선수들도 모두 높은 인기 만큼이나 축구와 국가대표로서의 본분에 항상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며 박수를 받았다.

반면 국가대표팀 감독직과 무관한 개인 번외 활동에 더 치중하며 '셀럽 놀이'를 한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클린스만 감독 본인이었다. 이날 팬들의 야유는 그런 클린스만 감독에게 보내는 경고였다.
 
과연 진짜 연예인처럼 행동하고 있는 인물은 지금 누구일까. 클린스만 감독은 이강인에게 쏟아진 과도한 환호를 우려하는 것만큼이나, 자신에게 쏟아지고 있는 팬들의 싸늘한 시선도 무겁게 인식해야할 필요가 있다. 이강인과 몇몇 선수들의 활약이 아니었다면 튀니지전도 쉽지 않은 경기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클린스만 감독을 향한 분위기는 더욱 악화되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팬들의 반응은, 앞으로 선수들만이 아니라 클린스만 감독도 국가대표 감독에 걸맞는 품격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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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인환호 클린스만야유 축구평가전 축구대표팀 튀니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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