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와 나> 조현철 감독

영화 <너와 나> 조현철 감독 ⓒ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10월 12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너와 나>의 감독 조현철을 만나 이야기 나누었다. 괴물 같은 연기력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고 집중하게 만드는 배우 조현철이 7년이라는 긴 시간 끝에 장편 영화 <너와 나>를 들고 연출자로서 대중과 만나게 된다.
 
영화를 최근 다시 보니 어떠냐고 물어봤더니 "지난한 시간을 지나 이제 내 손을 떠났다"라고 대답했다. 화면에서 보던 여러 캐릭터와는 달랐다. 단어 하나를 고심 끝에 내뱉는 차분하고 신중한 성격이 드러났다.
 
인터뷰의 마음가짐도 털어놨다. "최대한 정확하게 전달하고 들뜨지 말아야겠다"며 심플한 마음가짐으로 임하려고 다짐했다고 답했다. 배우일 때 보다 몇 배 더 무거워진 감독의 책임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삶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가지만 그 과정은 언제나 '사랑'이었다는 말 같았다.
 
"이름 보다 작품으로 평가 받고 싶어"
 
-세월호 사건과 십 대 퀴어 소재의 조합은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처음 시도되는 게 아닐까 해요. 죽음과도 연결된 심도 있는 주제를 두 소녀의 사랑 이야기로 풀어낸 이유가 있을까요.
"사회적 죽음을 외면할 수 없었고요. 커다란 숫자로 표현된 죽음, 생생하고 살아 있는 이름을 부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유가족분들도 관객이기도 해 조심스럽게 접근했고, 이 소재로 규모를 키우거나 소모하면 안 된다고 결정했습니다. 퀴어 소재는 문득 두 소녀 이야기가 떠올랐고 하고 싶었습니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후 호평받고 있고 해외 영화제에서도 초청 받고 있습니다. 스스로 연출자로서 소질을 인정하게 되던가요.
"연기와 연출이 상호작용하는 건 맞지만 감독이라고 의식하기보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거죠. 작업 기간이 길다 보니 지치기도 했습니다. 그럴수록 좋은 이야기를 완성해야겠다는 의지는 컸는데, 지원 사업 과정에서 부침도 있어 기다리고 지켜보는 상황이 길어졌죠. 영화제 초청 같은 경우는 지나가는 축제고 중요한 건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대중과 언론의 평가보다는 한 사람이라도 힘든 순간을 (영화를 통해) 위로받았으면 좋겠어요. 어쨌든 저는 중산층에 태어난 남성 창작자고, 교육도 잘 받았고, 특별한 불안함도 없었거든요. 이게 저만의 특권이라면 '염치를 챙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술하는 이모와 엄마를 보고 자랐기에 배우로서 유리한 점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저한테는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이었고 운이 좋았던 것도 있어요. 그래서 늘 제가 가지고 있는 이점을 경계하려고 신경 쓰고 있습니다."
 
-그 경계라면 어떤 것을 예로 들 수 있을까요?
"저는 선하거나 정의로운 사람도 아니고 실수투성이에 부족한 면도 많은 인간이에요. 그런데 어떤 말이 저를 규정하는 단편적인 게 되어 버릴까 봐 항상 조심스러워요. 작품보다 이름이 커지는 거나, 노동의 가치보다 큰 대가를 받는 것 등이 그래요."
  
 영화 <너와 나> 조현철 감독

영화 <너와 나> 조현철 감독 ⓒ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작년 공식 석상에서 아버지를 향한 수상 소감이 화제가 되었잖아요. <너와 나>를 본 가족이나 지인의 반응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당시 아버지가 투병 중이셨어요. 통증이 심했던 시기여서 그렇게라도 위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자리에서라면 힘이 될 것 같았어요.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가족, 지인끼리 시사회를 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보셨습니다. 피드백이 많은 편이 아니라 별말씀은 없으셨지만. 이상하게 아버지 눈에 맺힌 영화의 잔상이 마치 제가 경험한 것 같았습니다."
 
-본인의 학창 시절은 대중에게 공개된 부분이 많지 않아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진로를 정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중학교 때는 구석에서 혼자 만화 그리는 게 좋고 친구도 별로 없고 내성적인 아이였어요. 그래서 애니메이션 고등학교를 가려다가 부모님의 권유로 기숙학교(충남의 한일고)로 결정했죠. 3년 동안 다니면서 방황을 많이 했어요. 공부를 많이 시키는 학교로 유명한데 공부하기 싫은 거예요.
 
학교 규칙도 어기고 탈출도 자주 했었어요. 그때마다 뒷산에 올라가서 감이나 밤을 줍고 했었어요. 3년 동안 담임 선생님이 한 분이셨는데 돌이켜보면 제가 특별 관리 대상이지 않았나 싶어요. 어떨 때는 선생님 차를 타고 집에도 갔었는데 자제분들과 밥도 같이 먹었던 기억이 있어요. 감사한 은사님이셨어요. 그러다가 <쉬리> 이후 한국 영화 부흥기가 이어지면서 '영화하면 밥벌이는 하겠구나' 싶었죠. 공부는 하기 싫고 빨리 탈출하고 싶어서 영상원(한국예술종합학교)에 가야겠다고 준비했던 게 기회였습니다."
 
"영화의 메시지는 '사랑'"
  
 영화 <너와 나> 스틸컷

영화 <너와 나> 스틸컷 ⓒ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화창하고 기분 좋은 봄날, 수학여행 전날의 설렘, 재미있는 친구와의 웃음, 귀여운 강아지와 재회 중 늘 죽음이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의 메시지는 '사랑'이에요. 잊히고 있는 가치라서 영화를 통해서나마 의미를 되새겼으면 했어요. '너와 나'라는 제목부터 경계를 지우고 싶었던 것 같아요. 꿈과 현실, 과거 현재 미래, 남자와 여자의 사랑, 또는 여자와 여자의 사랑을 희미하게 만들어 버리는 거죠. 종국에는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서 주변에 대한 사랑을 품었으면 했고요."
 
-말씀처럼 경계가 모호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뽀얀 필터와 2시 35분에 멈춰버린 시계, 빨강 가방을 멘 두 아이 등을 보고 데이비드 린치 작품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누군가의 꿈처럼 보였으면 했어요. 2017년 광화문에서 세월호 집회가 있었는데요. 한 생존자 학생이 '내 꿈에라도 나와서 인사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마음에 콕 박혔어요. 영화를 보는 동안 꿈꾸는 체험을 했으면 해서 꿈처럼 보일 시각적 요소를 집어넣었던 거고요."
 
-영화에서 '거울'이 자주 등장하는데요. 구멍 난 양말, 발뒤꿈치의 각질 대한 설명도 좀 더 부탁드릴게요.
"사물에 얽힌 이야기를 발견했기 때문인데요. 거울 안에 세미의 모습이 맺히고 사라지고 없어지기까지를 살리고 싶었어요. 공원에 등장하는 거울은 실제 단원고 근처 공원의 거울인데요. 학생들의 모습이 맺혀 있다고 생각해서 허락받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클래식한 거울을 찾다가 공원 정자에 걸려 있는 거울을 직접 쓰게 되었습니다. 각질은 사실 친구인데요. 복잡하게 얽혀 있는 부분의 상징이에요. 각질이 자세하고 생생하게 있었는데 어느 순간 사라진 것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어요."
 
-<너와 나>는 십 대 소녀 감성이 녹아들어 가 있는 작품이지만 감독님은 30대고 남성이라 직접 시나리오를 쓰셨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마음, 말투, 행동, 관심사 등을 섬세하게 그려낼 수 있었던 방법도 듣고 싶어요.
"십 대 고등학생의 마음을 표현하기에 두려움이 있었던 건 사실이에요. 알아가기 위해 취재와 입시학원 강의를 나갔어요. 학생들에게 일기를 써보라는 과제를 내서 참고했습니다. 또 유튜브, 브이로그나 주변의 이야기도 관찰했었는데요. 그중에서 세미가 앵무새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가르치는 장면을 허락받아 반영했어요."
 
-음악도 또 하나의 캐릭터로 활약하는 듯해요. 서정적인 음악이나 형 매드 크라운, 오혁의 음악이 분위기와 매우 잘 맞았습니다.
"오혁 님은 혁오 밴드 다큐를 촬영 중인 촬영 감독님의 인연으로 알게 되었고요. 둘 다 말이 없는 편이라 대화를 많이 한 건 아니었습니다. 슬픈데 이상한 느낌을 원한다는 말을 전달해 드렸더니 빠르게 곡을 작업해서 들려주셨어요. 편집본을 보고 마음이 동하셨다고 하던데 말을 길게 덧붙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던 지점이었죠. 형 음악은 그때 유행했던 곡 중 사용 허락을 쉽게 받을 수 있는 곡이라 선택했습니다."
 
-음악 이야기를 더 해 볼게요. 박혜수 배우의 '체념' 완창이 화제였어요. 노래방에 나오는 둘의 제주도 뮤직비디오도 잊을 수 없었어요.
"박혜수 배우에게 '체념'을 다 부르게 한 이유는 잘 불러서가 아니고요. 노래를 부르는 동안 표정의 변화나 눈빛의 흔들림, 목소리의 떨림이 중요했기 때문이에요. 금방이라도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생생한 무언가가 사라질 때 감각을 끊지 말고 끝까지 보여주어야 한다고 믿었고요. 뮤직비디오 영상은 아이들이 제주도에서 행복하게 있었으면 하는 염원을 담았습니다."
 
"박혜수의 진정성이 느껴져 함께 작업"
 
-이제 캐스팅 과정을 들어볼까 합니다. 박혜수 배우의 경우 특히 고민이 많았을 거로 생각되는데요.
"혜수씨는 <스윙 키즈>로 이미 알고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때 호흡을 맞추면서 함께 하게 되었는데요. 배우의 자질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후배나 선배를 대하는 태도에도 진심을 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진정성이 빛나는 세미 모습으로 표현된 지점이에요. 순수한 영혼의 사람이 연기를 하고 있다는 증거를 극장에서 확인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시은씨는 오디션으로 만났어요. 생생함을 표현할 배우를 찾았는데 동물적인 감각을 지닌 천재적인 배우였죠. 대사에 없는 부분이나 행간을 읽고 눈빛, 몸짓으로 표현하길 잘해요. 실제 성격도 유쾌해서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배우예요. (연기의 바다에서) 앞으로 부디 다치지 않고 항해하길 바랍니다."
 
-고교, 대학 동창인 박정민 배우가 감독님을 천재라고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두 분이 절친이지만 배우와 감독으로 활약하는 면이 비슷하고요. <너와 나>에서 짧은 분량이지만 박정민 배우의 존재감이 컸잖아요.
"저에게는 없는 재능이 있어서 오히려 제가 질투나 동경하는 부분이 많은걸요. 자주 연락하지 않지만 친해서 도움을 받았어요. 이번에 또 놀란 게 상상 이상의 애드리브도 많았어요. 신인 배우이자 아이들과 붙는 장면이잖아요. 그들이 위축되지 않고 함께 호흡할 수 있게 끌어나가는 모습이 멋졌습니다."
 
-큰 상처를 받으면 극복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잖아요. 괜찮은 것 같아 보여도 여전히 허우적거리기도 합니다. 감독님은 트라우마나 힘든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려고 노력하세요?
"개인적으로는 그 사건과 거리 두기를 충분히 하려고 해요. 그러면서 자연을 바라보거나 산책하거나 잠들어 있는 고양이를 본다거나 하면서 치유하려고 합니다(세 고양이의 집사라고). 상처는 극복할 수 없다고 봐요. 큰 상실을 경험하면 살아가면서 언뜻 떠오르게 되잖아요. 그나마 주변 사람이나 좋은 기억으로 인해 견디면서 살아가지 않을까 싶어요. <너와 나>를 찍으면서 하은과 세미에게 큰 위로를 받기도 했어요. 이 마음을 관객도 받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차기작이나 앞으로의 행보 등에 대해 말씀 부탁드려요. 
"요즘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어요. 최근에 이야기를 찾으려고 제주에 다녀왔는데요. 4.3 사건을 제주 숲을 통해 동화적인 분위기로 엮어보면 어떨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엄마가 자기 전에 동화책 읽어주듯이 작은 요소를 찾아보려고 해요. 잔혹 동화라면 삶의 진실을 거짓 없이 보여주면서도 위안이 되어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인공이 영원히 죽지 않고 행복하게 산다는 것보다 상실을 겪고 떠나지만 그럼에도 괜찮을 거라는 이야기 말이에요. 그리고 4.3 사건은 제대로 접근해야 할 일이라 평화박물관에서 증언집도 살펴보면서 사건에 닿으려고 시도해 보기도 했어요. 짬짬이 여행 다니고 있지만 촬영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이해영 감독님과 시리즈 <애마> 촬영 중이라 머리도 기르는 중입니다."
너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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