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 콘텐츠 부상과 함께 한편으론 미국에선 분명 코리아 아메리칸 즉, 이민자의 서사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차별과 투쟁의 역사 한복판을 살아오며 직접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이후 이들의 영화, 드라마 등이 전 세계인들의 공감을 사기 시작한 것. 부산 해운대 KNN 씨어터에서 6일 오후 진행된 간담회엔 그 주역들이 직접 관련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미나리>(2020)의 정이삭 감독, <푸른 호수>(2021)와 <파친코>(2022)의 저스틴 전 감독을 비롯해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배우 스티븐 연과 존조는 이어지는 취재진 질문에 각자의 개성을 담아 솔직하게 답하는 모습이었다.
 
공감대, 그리고 연결성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 사흘째인 6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열린 '코리안 아메리칸 특별전: 코리안 디아스포라' 기자회견을 마치고 배우 존 조(왼쪽부터), 저스틴 전 감독, 배우 스티븐 연, 정이삭 감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 사흘째인 6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열린 '코리안 아메리칸 특별전: 코리안 디아스포라' 기자회견을 마치고 배우 존 조(왼쪽부터), 저스틴 전 감독, 배우 스티븐 연, 정이삭 감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들의 공통점은 이민 1세대 부모를 둔 2세대로서 스스로 자신의 꿈을 찾고, 개척해왔다는 데 있다. 부모 세대와 자신들이 직접 겪은 미국 사회를 토대로 특유의 뿌리 없음의 정서를 작품으로 표현해온 이들이다.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에도 각자의 분명한 의견들이 있었다.
 
저스틴 전 감독은 "일단 미국에선 이분들과 한 공간 같은 시간에 함께 있을 수가 없기에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 정이삭 감독님의 팬인데 이번에 처음 만나게 됐다"고 운을 떼며, "우리 이야기와 한국 콘텐츠에 미국을 비롯한 세계인들이 뭔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좋다. 다른 소수자들도 자기만의 이야길 하는데 그 과정에서 다들 혼자가 아님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스티븐 연 또한 공감과 연결성을 언급했다. "한국 콘텐츠의 부상은 디아스포라로 사는 사람에게 위안이 되기도 한다"며 그는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100>이란 프로를 봤는데 이젠 오히려 서구 사람들이 소구하는 느낌이었다. (남들이 어떻게 봐주길 바라는 게 아닌) 이제 우리 스스로를 어떤 모습으로 보이게 할 것인가 재정립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짚었다.
 
"코리아 아메리칸 작품이 인정받고 공감받는 상황이 좋아 보인다. 한 인간으로 전세계 사람들이 봐주고, 이해하려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도 느끼길 바란다. 작품을 통해 서로 위로가 되고, 그 인간성이 공감받는 것을 말이다. 지금 우리는 사회 시스템이 다수를 위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구조가 무너지고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그 흐름에서 디아스포라라는 감정은 모든 게 다 연결돼 있다고 느끼게 하면서도 그걸 초월하는 느낌이다. 특히 영화는 영원불멸의 인간성으로 가는 통로를 두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스티븐 연)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 사흘째인 6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열린 '코리안 아메리칸 특별전: 코리안 디아스포라' 기자회견에서 영화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 사흘째인 6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열린 '코리안 아메리칸 특별전: 코리안 디아스포라' 기자회견에서 영화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이삭 감독은 보다 개인적 얘길 꺼냈다.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롤모델 없이 작업했던 것 같다"며 정 감독은 "부모님에게도 전 영화를 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들으며 자랐다.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야 했다"고 운을 뗐다.
 
"한국에 계신 분들도 비슷한 것 같다. 한국영화가 굉장히 독특한데 그 이유는 특정 영화나 흐름을 따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기에도 독특한 부분이 있다고 한다. 코리아 아메리칸들의 이야기 또한 그렇게 받아들여지긴 바란다. 제 경우 영화를 얼마나 잘 만들 수 있나 생각하곤 한다. 이민자의 이야기라는 건 사실 삶 자체의 이야기와도 같은 게 아닐까. 한 도시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삶을 다양한 문화권 사람들이 이 영화에 공감하신다. 삶이라는 게 일종의 여정이잖나. 꼭 이민자가 아니더라도 어떤 보편적인 공감대가 생기는 것 같다." (정이삭 감독)
 
경계인의 삶
 
간담회 주제처럼 이들 모두는 특정 국가나 소속으로 적확히 자신들을 범주화할 수 없다는 데에 깊은 인식을 갖고 있어 보였다. 한국계 미국인의 사소한 분노로 비롯되는 에피소드를 다룬 <비프>라는 드라마를 언급한 저스틴 전 감독은 "동양 관객과 서양 관객 모두를 한 그릇에 모아놓을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며 "일반적인 미국 드라마나 할리우드 영화에선 만날 수 없는 작품"으로 평했다.

"우리 부모 세대는 이민과 동시에 사고방식이 1970년대에 머물러 있다. 마치 타임캡슐에 담긴 것처럼 말이다. 이 자리에 계신 한국분들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한국에서 오히려 떠나있기에 우리 같은 사람들은 한국을 더 애정하고 깊이 생각하는 면이 있다. 그걸 영화라는 것을 통해 이해하는 것이다. 최근에 아이가 태어나면서 중요한 변화를 겪었다. 난 왜 이 일을 계속 하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이 있었는데 난 그냥 인간이고, 창작자인 만큼 누군가에게 하고픈 이야기를 그냥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어떤 국가나 집단에 메어있지 않은 예술을 하고 싶은 것 같다." (저스틴 전 감독)
 
존 조는 이를 미국 한인타운 내 한국 식당 음식에 비유했다. "LA 코리아 타운의 한국음식이 서울의 다른 음식점 음식과 얼마나 다른지 알아야 한다"며 "LA의 한국음식은 1세대 이민자들이 처음 미국에 왔을 당시에 머물러 있고, 서울의 음식은 뭔가 퓨전되면서 맛이 달라진 게 있다"고 말했다.
 
"디아스포라라는 용어가 제겐 좀 생소한데 제 정체성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뭔가 국가나 국적을 뛰어넘는 면이 있다. 존엄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전 100프로 한국인이라기 보단 그냥 아시안인가 보다 하며 자랐거든. 최근에 중편 소설을 하나 썼는데 한국 이민자 이야기다. 그게 한국어로 번역돼서 출판됐다. 제겐 엄청 특별한 경험이었다. 만약 유년 시절에 이민 오지 않고, 한국에 살았다면 내 삶은 어땠을까. 우리의 삶을 사람들이 궁금해한다는 게 큰 기쁨이 됐다." (존 조)
 

과거에 비해 코리아 아메리칸의 위상이 올라갔냐는 말에 존 조는 "그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항상 고민"이라 말했다. 약 7년 전 할리우드 영화 포스터에 본인 얼굴을 합성한 사진을 SNS에 올리며 일종의 해시태그 운동을 했던 그다. 존 조는 "나 같은 얼굴도 배우 하기에 이상하진 않다는 걸 전하려는 시도였다"며 "훌륭한 아시안 동료들이 제대로 캐스팅되지 못했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고, 기업이나 학계에서 아시안의 활약이 두드러지다가 예술에서도 그런 흐름이 이어진다는 게 고무적이다. 과거의 어려움이나 외로움은 이미 지난 일이라고 느낄 정도"라고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정이삭 감독은 "어렸을 땐 스스로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어머니가 제가 한 살때 녹음했던 테이프를 대학교 입학 때 받게 됐다. '넌 한국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목소리였다"며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을 잊지 말라는 생각으로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현장에선 미국 작가조합, 배우 및 방송인노동조합 파업 관련 질문도 나왔다. 참석자들 또한 해당 파업에 동참 중이기에 출연작품을 직접 언급할 수는 없었지만, 그 본질에선 나름 할 말들이 있었다.
 
스티븐 연은 "예술가를 보호하기 위해, 상업적인 산업에서 공정한 소득을 받고 각 개인의 삶을 존중하길 바란다는 취지"라며 "격변하는 콘텐츠 산업 환경에 이런 예술가들은 크게 영향받기 쉬운데, 좋지 않은 상황에 빠지지 않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존 조는 "예술만큼은 AI나 자동화로 대체할 수 없다"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이나 일을 AI가 빼앗아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지금 조합에서 하는 일은 우리 직업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전문 분야임을 알리는 것"이라 덧붙였다.
스티븐 연 존 조 부산국제영화제 미나리 파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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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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