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윤발 '한국에서 배운 하트' 홍콩 배우 저우룬파(주윤발)이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기자회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주윤발 '한국에서 배운 하트' 홍콩 배우 저우룬파(주윤발)이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기자회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큰 형님'의 배포가 이런 것일까.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 수상자 주윤발이 국내외 기자들의 질문에 솔직하고 재치 있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부산 해운대 KNN 씨어터에서 5일 오후 진행된 기자 간담회에선 주윤발의 50년 연기 인생을 비롯해 한국과 홍콩 영화 산업 등 폭넓은 질문이 나왔다. 

"중국에선 (인생에) 두 갑자가 있다고 하는데 제가 한 번 갑자(60년)를 지나서 이제 일곱 살이다. 잘 부탁드린다"고 운을 뗀 그는 "부산에 와서 이틀간 런닝을 했다"는 말로 가볍게 긴장을 풀었다. 

"우린 대등한 사람들"

홍콩영화 황금기를 열고, 큰 인기를 구가한 그는 "각 지역마다 문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영화가 할리우드에 활발하게 진출하는 게 기쁜 일"이라며 "한 지역이 정체될 때 다른 지역이 이어받아 그 흐름을 이어가는 건 굉장히 좋은 일이다. (홍콩에 이어) 한국이 부상할 수 있어서 고무적"이라 견해를 밝혔다.

이어 상대적으로 침체 일로인 홍콩 영화 산업에 주윤발은 "현재 검열이 있어서 홍콩 감독이 영화 만드는 일이 상당히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영화인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홍콩 정신이 살아있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다들 노력하고 있다"며 "1997년 (영국의 홍콩 반환) 이후 많은 게 바뀌었다. 지금 우리가 투자받기도 어렵게 됐는데 중국 시장이 큰 만큼 해결책을 찾고 있다"고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그간 쏟아졌던 루머나 관련 일화에도 그는 재치 있는 답변을 이어갔다. 투병설 및 사망 뉴스가 돌았던 것에 주윤발은 "매일 일어나는 일이라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면서 "제가 11월 3일 홍콩에서 하프 마라톤을 한다. 아프거나 제가 죽었다면 그런 소식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첫 갑자엔 배우로 살았는데 두 번째 갑자는 마라토너로 살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 팬들의 오랜 사랑,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 수상에 그는 1980년대 추억을 소환했다. "당시 제주에서 촬영하며 서울과 김포를 오갔는데 음식이 매우 잘 맞았다. 다만 너무 추웠던 기억이 있고, 한국에 계엄령이 내려졌던 게 기억난다"며 "당시 먹을 게 없어서 김치와 곤충(번데기)을 먹었다. 남대문에 번데기 파는 가게가 있어서 밤마다 사러 나갔던 기억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스타성, 연기 인생 관련 질문에선 소탈한 모습을 보였다. 질문한 기자에게 "이곳을 벗어나면 나도 당신도 모두 보통 사람"이라던 주윤발은 "슈퍼 스타라는 말에 대단하다는 생각도 할 수 있지만 저 또한 아내에게 용돈받아 사는 평범한 사람이다. (8000억 원 기부 사실에) 그 기부도 아내가 한 것이다. 사실 제가 힘들게 번 돈인데 기부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사실 이 세상에 제가 아무것도 가져온 게 없기에 아무것도 안 가지고 가도 상관없다. 흰 쌀밥 두 그릇이면 된다. 제가 하루에 두 끼를 먹기 때문이다. 지금 당뇨가 있어서 한 그릇 먹을 때도 있다(웃음). 그나마 큰돈을 쓰는 건 카메라 렌즈인데 그것도 중고다. 최근에 3000홍콩달러 가량의 독일 렌즈를 샀다. 엑스레이까지 찍을 수 있더라. 스탠리 큐브릭 감독님도 그 렌즈로 영화 하나를 찍은 걸로 알고 있다."

주윤발의 재치
 
질문에 답하는 주윤발 홍콩 배우 저우룬파(주윤발)이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질문에 답하는 주윤발 홍콩 배우 저우룬파(주윤발)이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스스로 생각하는 대표작으로 주윤발은 <영웅본색> <와호장룡> <첩혈쌍웅>을 꼽았다. "1973년 방송국 배우 훈련반에 들어갔고 1년제 수업이었는데 그곳이 없었다면, 사람들에게 절 알릴 기회를 얻질 못했을 거고 그 덕에 영화계에 진출할 수 있었다"던 그는 "영화가 없었다면 저라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절대적 애정을 드러냈다.

"홍콩 작은 바닷마을에서 태어나 10살에 도시로 갔고, 연기를 시작했다. 제가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을 때 영화는 제게 지식과 경험을 가져다주었다. 영화를 찍으며 많은 걸 배웠고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걸 줬다. 하나의 역할로 한 사람의 인생을 살잖나. 그게 제겐 큰 경험이 됐다. 제가 (1973년부터) 50년 연기를 했는데, 앞으로 50년을 더 한다면 사람들이 봐줄까? 그렇다면 한국에서 와서 열심히 미용시술을 받아야겠다. (웃음)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도 있는 법이다. 사실 주름 생기는 걸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감독님이 제게 노인 역할을 주면 기꺼이 참여해야지. 늙어가는 건 무서운 게 아니다. 그게 인생이니까. 인생에 죽음이 없다면 이상하지 않나. 그간 활동하며 후회나 아쉬움은 없다. 사람은 매일 실수하잖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하고. 얼마나 큰 실수를 줄이느냐가 중요하지."


올해 수상 뿐 아니라 <원 모어 찬스>라는 신작 영화로도 관객과 만나는 그다. <도신>이라는 과거 출연작을 패러디한 작품으로 주윤발이 오랜만에 소탈한 모습을 보인다. 주윤발은 "이런 장르가 오랜만이라 마음에 든다"며 "어떤 감독님이든 기회를 주신다면 도전할 마음이 있다. 당분간은 마라토너로 생활하고 있겠다"고 재치 있게 이후 계획을 말했다.

"경쟁력은 곧 자유도다."

한국영화 경쟁력을 묻는 말에 그가 내놓은 답변이다. K 콘텐츠 중흥기라 하지만 속살은 여러 위기 요소가 감지되는 터에 주윤발은 창작의 자유가 절대적임을 강조한 셈이다. "한국 콘텐츠를 볼 때마다 가끔은 이런 것도 다룬다고 놀랄 때가 있다"던 주윤발은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며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공통으로 극장도 영화 산업도 위기인 건 맞다. 홍콩도 한국처럼 어떤 이야기를 다룰지 치열하게 고민 중"이라 전했다.

기자 간담회 말미 그는 단체 사진을 제안하며 직접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아이폰 에어드랍을 켜면 보내주겠다"는 말에 좌중이 술렁였다. 결과물은 아래와 같다. 4일 개막식에서 관객과 함께 셀카를 찍은 그는 말대로 '따거(형님)'처럼 영화제를 즐기고 있었다.

1976년 데뷔한 주윤발은 <청부업자:호월적고사>(1981), <영웅본색>(1986), <첩혈쌍웅>(1989), <와호장룡>(2000), <원 모어 찬스>(2023) 등 1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홍콩 누아르 장르의 상징적 인물로 현재까지 폭넓은 연기를 보이고 있다.
 
 주윤발은 기자 간담회 말미 단체 사진을 제안하며 직접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주윤발은 기자 간담회 말미 단체 사진을 제안하며 직접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 이선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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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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