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47 보스톤>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1947년은 혼란스럽고 희망이 부족했던 시기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목표를 이루고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을 통해 힘과 용기를 전하고 싶다."
강제규 감독의 포부다. 단언컨대, < 1947 보스톤 >은 목적을 이뤘다. 서윤복이 결승선을 1위로 통과하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 자긍심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일제강점기와 분단이라는 역경 속에서 세 주인공이 쟁취한 승리의 감동 역시 뜨겁다.
하지만 공허하다. 눈시울이 순간적으로 뜨겁지만, 눈물이 나오기 전에 식는다. 이유는 여럿이다. 일단 역사가 스포일러다. 서윤복 선수가 1등을 차지한다는 결말을 미리 알고 있어서 감흥이 덜하다. 예상을 벗어나는 내용도 없다. < 1947 보스톤 >은 제목에 충실하다. 베를린 올림픽 남자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동메달리스트 남승룡, 새 국가대표 서윤복이 1947년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는 우여곡절을 정석대로 담았다.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다. < 1947 보스톤 >은 영화가 아닌 실화의 힘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실화가 선사하는 감동 그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데 실패했다. 그러다 보니 영화의 단점, 영화와 실제 사이 간의 모순이 눈에 띄자마자 실화에 의지하는 감흥은 뜨거워질 때만큼이나 빨리 식는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닙니다
내용이나 결말이 실제 사건 그대로인 것은 사실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 1947 보스톤 >이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니라 엄연히 극영화라는 점이다. 극영화는 한정된 시간 내에 여러 사건을 유기적으로 이어 붙이고 캐릭터가 스크린 위에서 살아있는 것처럼 만들어야 한다. 설령 실화 사건을 차용했다 하더라도.
하지만 < 1947 보스톤 >은 스포츠 영화의 공식을 충실히 따른 나머지 실화에 힘을 더하지 못한다. 감독은 턱없이 부족한 지원 속에서도 팀을 꾸린다. 선수는 불행한 개인사와 꿈 사이에서 헤맨다. 팀은 갈등에 휩싸이고, 첫 경기 성적은 엉망이다. 하지만 그들은 기어코 기적을 써 내려간다. 이처럼 익숙한 에피소드를 기계적으로 나열한다. 결국 영화는 사건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물의 변화, 감정선의 변화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지 못한다.
오히려 짜임새 때문에 실화의 감동이 약해진다. 서윤복이 어머니를 회상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는 보스톤 언덕길에서 어머니와 고갯길을 같이 넘던 추억을 떠올리며 힘을 얻는다. 그런데 이 대목은 기대만큼 감동적이거나 아름답지 않다. 그와 어머니의 관계가 피상적인 효자와 현모양처로 묘사되다 보니, 해당 장면이 어떤 의도로 삽입됐는지가 노골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화자 따로 메시지 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