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3:플랫폼과 데이터 플랫폼노동자인 라이더 늘찬이 무리한 질주를 한다. 라이더유니온의 리키와 인턴기자 소은이 도움을 주고 있다.

▲ 자본3:플랫폼과 데이터 플랫폼노동자인 라이더 늘찬이 무리한 질주를 한다. 라이더유니온의 리키와 인턴기자 소은이 도움을 주고 있다. ⓒ 드림플레이

 

오늘도 배달앱으로 주문한 마라탕을 성마르게 기다리던 마국장은 도로를 질주하는 오토바이를 보며 혀를 찬다.

"위험하게 왜 저렇게 다녀. 몇 분이나 빨리 간다고..."

드림플레이 테제21의 자본시리즈
 
드림플레이 테제21의 자본시리즈는 2018년 배우들이 칼 마르크스의 "자본" 읽기를 스터디하는 과정을 그대로 무대에 올린 <자본1: We are the 99%>로 시작되었다. 두툼한 책을 대신 읽어주고 예술노동자의 입장을 적용해 해설해주니 교육적 효과는 높았지만, 과연 '연극이 아니어도 좋은 연극'이었다. 2021년의 <자본2: 어디에나, 어디에도 everywhere, nowhere>은 국제 탐사보도 저널리스트의 활약을 통해 슈퍼리치들의 조세도피처와 불법거래, 거대탈세를 폭로한다.

1%들의 검은 돈을 모시기 위한 '도피처'는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수월하고 안전하게 생성되는 반면, 전쟁으로 집을 잃고 나라를 잃은 난민들을 위한 도피처는 어디에도 없었다. 극의 서사를 갖추어서 연극으로서의 완성도가 높아졌지만, 국제적인 소재는 관객의 현실과 거리감이 있었다.

<자본3: 플랫폼과 데이터> : 배달노동자의 현실을 그대로
 
그리고 2023년, 김재엽 연출은 배달노동자를 주인공으로 세워 우리의 일상 속 자본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대면한다. <자본3: 플랫폼과 데이터>는 2020년대를 살고 있는 '서사적인 캐릭터 드라마'를 통해 현재 우리 삶을 지배하는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들여다보게 한다. 드디어 드림플레이의 자본시리즈가 현실의 자본으로 우리 곁에 다가온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연우무대를 떠나는 길에도 오토바이는 익숙한 굉음을 울리며 눈앞을 지나간다. 주인공 늘찬을 통해 라이더의 질주를 이해하게 된 관객은 이제는 마국장처럼 팔짱끼고 혀를 차면서 그들을 남보듯 할 수 없게 된다.
 
극은 납골당의 친구를 뒤늦게 찾아온 늘찬의 넋두리로 시작한다. 소시지빵 공장에서 일하다 사망한 친구 옆에는 지하철 스크린도어, 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 콜센터 등에서 사망한 협력업체, 하청업체의 현장실습생,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리도 있을 것이다. 작은 무대에 구획별로 배치된 다른 높낮이의 회색 박스들은 죽은 친구 민준을 위한 맥주를 올려 놓은 제단이며 탁자이자 라이더로서 활보하게 될 빽빽한 도시 속 빌딩이라는 노동 현장이기도 하다.
 
자본3:플랫폼과 데이터 라이더 유니온의 리키는 초보 라이더 늘찬에게 신내림받는 라이더의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 자본3:플랫폼과 데이터 라이더 유니온의 리키는 초보 라이더 늘찬에게 신내림받는 라이더의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 드림플레이

 
플랫폼의 가치와 비즈니스 모델
 
늘찬은 플랫폼 기업의 '파트너'로서 배달 라이더 생활을 자신만만하게 시작한다. 그의 선택은 당연해 보인다. 배달앱 업체는 서로의 정보가 필요한 고객-업주-라이더를 '연결'해 준다. 라이더는 업체와 '동등'한 개인사업자로서 자신이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만큼만 일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능력'에 따라 일한 만큼 벌 수 있는 '공정'함이 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서 월 수익이 편의점 알바 때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고 어쩔 수 없이 목숨을 건 경쟁의 질주를 '선택'한다.

21세기 자본의 무서움은 여기에 있다. 정보를 공유한다는 호혜적 의도에서 시작된 '플랫폼'이 사적 이익을 양산하는 수익구조를 갖추기 시작하면서 '공유'는 더 이상 사회적 가치 개념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플랫폼 기업의 효용으로서 기능할 뿐이다. 오랫동안 인류가 추구했던 근면과 성실은 불합리한 성과주의의 굴레를 스스로 뒤집어쓰도록 만드는 세뇌작용이 된다.

라이더의 권리를 보호하는 라이더 유니온의 존재가 없었다면 늘찬도 자신의 능력 부족을 탓하며 모든 불합리를 자신이라는 개인에게 돌렸을 것이다. 역시나 플렛폼 기업은 무리하게 주문을 받고 무리하게 불법 운전을 하던 라이더의 사망은 그 스스로의 선택이었을 뿐이라면서 자신은 아무런 책임도 연관도 없다며 등을 돌린다.
 
자본3:플랫폼과 데이터 마국장의 유튜브 방송에 출연한 스타트업 CEO 마틴은 자신의 플랫폼 기업을 홍보하고 있다.

▲ 자본3:플랫폼과 데이터 마국장의 유튜브 방송에 출연한 스타트업 CEO 마틴은 자신의 플랫폼 기업을 홍보하고 있다. ⓒ 드림플레이

 
 
자본의 바퀴와 플랫폼 노동자의 신음
 
고객의 별점 평가와 업주의 눈치, AI의 감시에 시달리며 회색 박스를 오르내리고 좁은 회색공간 사이를 위태롭게 달리는 늘찬과 라이더의 모든 동선은 고스란히 기업을 위한 데이터로 속속들이 저장된다. 그러나 막상 자신은 어떠한 데이터에도 접근할 수가 없다.

마틴의 '아우토반 바이오시티'와 애니의 '미션 퀘스트' 같은 플랫폼 기업들은 우수한 플랫폼과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막대한 데이터를 우리에게서 쏙쏙 뽑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아무런 자각도 의식도 없다. 라이더의 사망에 대해 입장 발표를 요구하는 라이더 유니온의 대표 리키의 연락을 무시하는 마틴이 청와대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이며 마국장의 유튜브 방송에 출연하여 조만간 코스닥에 상장하려는 전도유망한 스타트업 CEO로서 각광받는다는 설정은 지극히 현실적이라 뼈가 아플 지경이다.

플랫폼, 데이터, 디지털, 스타트업, 4차산업 등 그럴듯한 단어들을 내세운 자본의 바퀴를 정부가 앞장서서 굴리고 있다. 그 밑에 스스로 노동자인 것을 인식하지도 못하는 우리가 신음도 못 내고 깔리고 깔려 쓰러지고 있다.

초연결사회에서 진정한 연결은?
 
'초연결사회'의 기술로 자본의 바퀴는 점점 빨라지고 있는데 우리들 사이의 진정한 '연결'은 어디에 있을까. 마틴의 대학 친구 애니는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머신러닝 데이터 전문가다. 우연히 자신의 30년 전 해외 입양 당시 사진이 인공지능 학습용 데이터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아 한국을 찾아온다.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애니가 사진 속 장소를 헤매고 있을 때 리키는 이방인의 외로움을 읽어주고 마음이 담긴 문장을 번역앱을 통해 전달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한번 조우한 두 여성의 포옹은 김재엽 연출이 사람과 사람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한 연결에 희망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두 사람의 연결 매개가 페이스북와 번역 앱, 인공지능 등인 것처럼 '정서적 연결'을 구현하는 플랫폼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취약할 것이다.
 
자본3:플랫폼과 데이터 머신러닝 데이터 전문가 애니는 자신이 만든 인공지능과 연결이 돈독하다.

▲ 자본3:플랫폼과 데이터 머신러닝 데이터 전문가 애니는 자신이 만든 인공지능과 연결이 돈독하다. ⓒ 드림플레이

 
 
늘찬의 친구 민준은 차라리 로봇이 되고 싶다고 했다. 단순한 언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그의 유아적 표현은 이미 로봇의 모습이기도 하다. 플랫폼과 데이터의 조직화에서 탈출하거나 저항하기에는 우리는 이미 스마트폰 세계에 꼼짝없이 묶여있다.

우리의 일부는 민준처럼 차라리 자아의 소멸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늘찬과 라이더 유니온의 리키, 그리고 인턴기자 소은은 힘을 합쳐 유튜브 방송에서 마틴의 추악함을 고발했지만, 구독자 백만 돌파 소식에 환호하는 순간 우리는 다시 플랫폼의 굴레에 빠져든다.

이제는 부딪혀야 할 때
 
<자본3: 플랫폼과 데이터>의 인물들은 계속 부딪히고 있다. 무대 밖의 라이더는 전봇대에 부딪히고, 소은은 마국장의 사무실 유리벽에 부딪힌다. 늘찬과 마틴은 도로의 맨홀 뚜껑에 부딪힌다. 실제로 무대는 작고 회색 박스가 빼곡하여 배우들이 활보할 공간은 적다. 배우들의 동선은 긴 대사를 풀어낼 용도로서만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박스 위로도 올라가고 있지만 김재엽 연출이 <알리바이 연대기>,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애도하는 사람>, <록앤롤> 등에서 보여주었던 탁월한 공간감과 공간 활용을 확인할 수 없다. 실제로 무대가 협소하여 다른 구성이 어렵기도 하지만, 협소함 자체는 디지털을 통해 더없이 넓은 세계를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우리가 얼마나 좁은 공간만을 점유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곳에서 우리는 더 부딪히기 쉽다. 상처가 나고 부상을 입어 아프겠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통스러운 부딪힘이다. 질주를 멈추고 지금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그것이 김재엽 연출과 드림플레이 테제21이 자본주의보다 오래된 연극과 극장의 힘을 믿고 관객과 함께 자본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는 뜻일테다.
 
자본3:플랫폼과 데이터 드림플레이 테제21 2023년 작품. 김재엽 작, 연출

▲ 자본3:플랫폼과 데이터 드림플레이 테제21 2023년 작품. 김재엽 작, 연출 ⓒ 드림플레이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 예정입니다.
자본3:플랫폼과데이터 드림플레이테제21 김재엽 연우소극장 자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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