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킴스 비디오> 스틸 이미지
오드
그러나 감독들은 그런 합리성을 아득히 초월한 존재, '시네필'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었다. 이들은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그들이 봉착한 장애물을 돌파해버린다. 그들 주변에 떠돌던 영화의 유령들을 소환해서 말이다. 그 모험활극의 결과로 킴스 비디오의 방치되어 있던 소장품 컬렉션에 마침내 십수 년 만에 햇볕이 내리쬔다. 우리가 보고 싶었지만, 현실에선 이뤄질 수 없으리라 포기했던 기적을 보았다. 아마 본 작품에 대한 소수의 열광은 그 지점을 목격했기 때문이리라.
이들이 온갖 위험을 각오한 (건지 대책이 없는 건지는 모호하지만) 끝에 저지른 사건을 들은 '킴'은 내내 '언빌리버블!'을 연호한다. 물론 어처구니없는 표정이다. 하지만 감독들만으로 불가능한 규모일 텐데 하며 던진 질문에 감독들은 천연덕스럽게 (관객이 화면에서 목격한 대로) 고다르가 그래도 된다고 했다 답한다.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던 킴은 고다르가 허락했다면 수긍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고도의 정치적 과정을 감내한 킴의 결심 덕분에 10여 년이 지나 킴스 비디오의 컬렉션은 원래 목표로 했던 활용의 길로 접어든다. 이 공간을 추억하는 많은 이들이 새 출발을 축하하러 와줬고, 최대 연체의 주인공 코언 형제는 연체료 탕감을 받았다고 전한다.
예전에 < KINO >라는 영화잡지가 있었다. 늘 번역체와 오역에 욕을 퍼부으면서도 절대 빠지지 않고 매월 구입하던 책이다. 문어체가 극심했지만 가끔씩 가슴 속에 뽕이 차오르는 표제만 봐도 두근거리곤 했다. 그중에도 대표 격이던 게 "영화광은 어떻게 세상과 싸우는가?"라는 기획이었다. 문득 그 글귀가 떠올랐다. <킴스 비디오>에서 진행되는 사건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에 서 있다. 그만큼 엉뚱하기 짝이 없는 영화광들의 활극이다. 참담한 실패와 해프닝으로 끝나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내용이다. 그리고 다큐멘터리라 하지만 적지 않은 부분이 재연되거나 편집되었음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만든 이들은 적어도 무기력한 좌절과 푸념 대신에 자신들이 애정을 듬뿍 전하던 존재가 부당하게 당하는 대우를 타파하기 위해 행동했고, 세상은 여전히 그런 각성과 헌신으로 조금이나마 바뀔 수 있다는 명제를 증명해냈다. 세상을 좋게 바꿔나가기 위해서는 불평불만을 넘어선 행동이 필수인 법이다. 그리고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어쩌면 생명까지 건) 위험을 감수하며 결코 작지 않은 변화를 만들어냈다. 이 영화의 감동은 결코 가볍지 않은 성격의 것이다.
<킴스 비디오> 완성한 이들에게 화답할 방법을 찾아서
하지만 여기에서 괜한 심술 하나 끼얹어본다. <킴스 비디오>를 보며 열광하는 이들은 우리 주변에서 바로 지금 (독립예술)영화가 당하는 부당한 대우들, '킴'과 같은 이들이 헌신해 꾸려온 소중한 영화의 성지와 신전을 구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그저 소비자의 태도로 일관하거나 계란으로 바위치기일 뿐이라며 도피하고 있지는 않는가?
2023년 한국의 영화적 상황은 <킴스 비디오>를 그저 즐겁게 볼 수 없게 만든다. 작금의 한국사회에서 시네필로 온전히 존재하기 위해선 신경써야 할 게 너무 많다. 영화에 대한 생각은 서로 다를 수 있지만 거대한 빙하기로 접어들 것만 같은 불안이 한국의 영화광-시네필들에게 겨울 폭풍처럼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무슨 내용인지는 다들 알고 있을 테니 굳이 부연하지 않겠다. 정책적 방향과 의견은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킴스 비디오'를 기억하고 애쓰던 이들이 단지 '고객'으로 이 공간을 대하지 않았다는 걸 영화 내내 뼈저리게 체감할 테다.
문화 다양성과 공공성에 대해 '야만'에 가까운 폭거를 아무렇지 않게 자행하는 권력에게서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현대판 문화유산이라 할 컬렉션을 자신의 출세와 성과에만 악용하고 모르쇠 하던 이탈리아 정치인의 추악한 이면을 자연스럽게 투영할 것이다. 문화강국이라는 몇몇 국가들도 따져보면 관료주의와 전시행정의 본질을 극복하기란 지극히 드물다.
그렇다면 결국 남는 건 컬렉션의 가치와 영화공동체의 소중함을 체험한 '시민'들의 활약이다. 공공기관의 일방통행을 견제하고 목소리를 내건, 시민사회 속에서 지역 영화문화의 가치를 강조하고 섬처럼 흩어져 명맥 유지에도 허덕이는 소중한 '요새'들을 지원하는 역할은 어쩔 수 없이 한국의 시네필들이 수행해야만 하는 과업이 되고 만다. <킴스 비디오>를 본 이들에게 이 영화를 만든 이들은 그런 질문을 폭격처럼 투하하고 있다. 바로 지금 이 땅의 영화광들이 응답해야 할 숙제가 영화를 보고 나면 한 가득이다. 그저 영화를 즐겁게 보고 싶을 뿐인데 2023년 한국에선 그게 불가능하다.
<작품정보> |
킴스 비디오 KIM'S VIDEO
2022|미국|다큐멘터리
2023.09.27. 개봉|88분 10초|12세 관람가
감독 데이비드 레드먼, 애슐리 사빈
출연 김용만
수입/배급 오드
2023 선댄스영화제 공식 초청
2023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초청
2023 트라이베카영화제 공식 초청
2023 시드니국제영화제 공식 초청
2023 텔룰라이드영화제 공식 초청
2023 오스틴국제영화제 공식 초청
2023 로마국제영화제 공식 초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