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등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비디오 대여점 '킴스 비디오'의 김용만 대표.

미국 뉴욕 등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비디오 대여점 '킴스 비디오'의 김용만 대표. ⓒ 오드(AUD)

 
1986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자리한 '킴스 비디오'는 영화 애호가들 사이에선 빼놓을 수 없는 곳이었다. 마틴 스콜세지, 쿠엔틴 타란티노, 스파이크 리 감독, 배우 로버트 드 니로 등이 단골이었고, 무명 시절의 코엔 형제는 심지어 600달러의 연체료가 있기도 했던 이곳은 뉴욕의 명물임은 분명했다.
 
스물셋 나이에 미국에 건너가 킴스 비디오를 열고, 그 흥망성쇠 과정에 온몸을 던졌던 김용만 대표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 영화화돼 한국 관객을 만난다. 22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김 대표에게 영화 이야기는 물론, 그만의 철학을 들을 수 있었다.
 
지난했던 과정들
 
킴스 비디오가 애호가들에게 특별했던 이유는 30만여 점이라는 라이브러리의 방대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시 일반 극장에선 볼 수 없었던 다양한 국가의 영화들, 심지어 학생들의 실험 영화들까지 대거 갖춘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 단골의 표현처럼 보물창고로 불렸던 이곳은 뉴욕 언더 그라운드 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 해왔다. 1972년경 이미 미국에 자리 잡았던 부모님에 이어 스물셋 나이에 미국 땅을 밟은 김 대표가 여러 상점을 여닫다가 비디오 대여업의 가능성을 보고 뛰어든 결과물였다.
 
"당시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 직전엔 김신조 사건 등으로 병역법이 수시로 바뀌던 때였다. 열아홉 때 미국 비자가 나왔지만, 가질 못하고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지. 서둘러 군대에 갔고, 만기 제대한 뒤 뉴욕에 갈 수 있었다. '야 이렇게 자유로운 나라가 세상에 있었구나' 싶더라. 젊었던 내 입장에선 못할 게 없겠다는 자신감이 들었고, 그래서 스물넷에 김스 프로듀스(상점), 세탁소 등을 운영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광산 김씨 장손이신데, 친척들이 모일 때마다 무슨 대단한 가문인 것처럼 말씀하셨다. 저도 그 영향인지 미국에서 20개 이상 사업을 할 때마다 '킴스'를 붙여 왔다(웃음)."
 
운영하던 세탁소 한편에 마련했던 작은 대여공간이 미국 전역 내 11개 점포, 25만여 명의 회원을 보유한 체인으로 성장했다. 그러다 스트리밍 서비스 발달과 넷플릭스 같은 공룡 기업이 등장하며, 사업은 위축됐고 결국 자신이 보유한 라이브러리를 이탈리아 살레미라는 소도시에 기증하게 된다. 영화에선 여러 사건을 겪으며 다시 살레미에서 라이브러리를 회수해오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일련의 과정으로 김용만 대표는 자신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는 수많은 제안을 거절한 채 잊히고 싶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런 그가 마음을 바꾸게 된 것이다.
 
"마지막 인터뷰가 <뉴욕타임스>였다. 잊히고 싶단 말을 그때 했다. 루저(실패자)였으니까. 물론 다가오는 변화의 파도를 인지는 했고, 나름 5년간 대비했는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미국 자본주의 속성을 빨리 이해했다면 남의 자본을 끌어왔을 테고, 그러면 지금의 킴스 비디오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 면이 부족했고, 실패를 인정한 거지.
 
문을 닫자마자 제 이야기를 다큐로 만들고 싶다는 제안이 많았다. 딸이 영화를 공부하는데 지도 교수도 딸을 통해 의사를 묻더라. 다 묵살했다. 지금 영화의 감독인 데이비드 레드먼, 애슐리 사빈도 처음 제안했을 때 거절했다. 3년 뒤에 그들이 준비한 자료를 보내며 만나자기에 만났는데 이미 엄청 찍어놨더라. 저와 닮은 점도 발견했고, 믿음이 가서 전혀 간섭 안 할테니 해보자고 했다. 그로부터 3년간 저와 다니면서 촬영했다. 이 영화에 총 6년이 쌓인 셈이다."

 
수많은 콜렉션 가운데 김 대표가 애정하는 건 학생영화 코너였다. "킴스 비디오 덕에 뉴욕에 정착한 청년들이 많았다"며 그는 "B급, C급 심지어 F급 취급받는 영화들도 소외되지 않게 대변해보자는 생각이었다"고 그만의 철학을 언급했다.
 
"미국 영화 산업은 할리우드로 대변되는 쪽이 있고 대칭해서 독립영화가 또 상당하거든. 그걸 지지하는 게 언더그라운드 문화였다. F급 영화라 해도 결국 누가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상업영화 기준으론 도저히 효용 가치 없어 보이는 10분짜리 학생영화를 마틴 스콜세지 같은 분이 보고 영감을 얻어 장편 영화로 발전시킬 수도 있는 거다. 그런 경우를 제가 많이 봤다.
 
저희가 1893년에 나온 토마스 에디슨의 영화도 있었고, 여러 감독들이 발행하지 않았던 초기 작품들도 가지고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출시 안 한 이탈리아 영화들도 상당히 많았다. 유명 영화인들과의 인연은 말하기가 참 곤혹스럽다. 그들의 명성을 이용하나 싶어서 꺼려진다. 킴스 비디오는 오히려 독립영화인들을 우대했는데 그러니 할리우드 영화인들이 더 관심을 갖더라. LA에서도 회원 가입하러 찾아오고 그랬지."

 
영화엔 킴스 비디오 매장에서 뮤지션들이 공연하는 모습도 담겨 있다. 1주일에 한번씩 특정 영화 OST에 참여한 밴드를 초청하거나 인디 뮤지션을 초청해 공연해온 것도 주요 행사였다고 한다.
 
"앤디 워홀이 예술은 특정 계급만 즐기는 게 아니라 했잖나. 잘 알려지지 않은 뮤지션들을 데려다가 했는데 5층 규모의 적지 않은 매장이 손님들로 가득 차곤 했다. 실험적 음악이 많았는데 호응이 좋았다. 무료이기도 했고. 일종의 인터렉티브(상호 소통) 콘서트였는데 관객과 뮤지션이 같이 어울리는 식이었다. 근데 공연을 한 번 하면 매장 내 CD나 DVD가 많이 없어지곤 했다. (웃음)"

변화에 대처하는 자세
 
 미국 뉴욕 등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비디오 대여점 '킴스 비디오'의 김용만 대표.

"기성 세대로서 제가 미래 세대에게 뭘 충고할 입장은 아니다. 그들이 하는 일을 오히려 내버려 두면 날개를 펴지 않을까. 간섭하면 오히려 위축된다." ⓒ 오드(AUD)

 
살레미시에 기증 후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던 킴스 비디오 라이브러리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다. 열화와 같은 성원에 킴스 비디오는 지난해부터 뉴욕 알라모 드래프트 하우스 극장에서 다시 문을 열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회원들에겐 전부 무료라는 것. 살레미와 관계도 회복되어 현재 매년 '시네킴 영화제'가 열리는 등 교류하고 있다고 한다. 더불어 애초 목표였던 라이브러리의 디지털화 작업도 본격 시동을 걸었다.
 
"올해 5월경 디지털화 프로젝트를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1차로 마쳤다. 목표액보단 부족했는데 좀 더 펀딩을 해보려 한다. 사실 살레미시에 기증할 때 유로 컬처로부터 80여 만 유로를 받아 그걸로 디지털 작업을 시작했다는데 그것조차 관리가 소홀해서 자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불분명해졌다. 현재 알라모 극장 측에서 다른 계획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개인 후원 및 크라우드 펀딩을 추가로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알라모 극장이 미국 전역 68개 체인이 있다. 아무래도 킴스 비디오가 뉴욕이 근거지다 보니 맨하탄 극장으로 왔는데 지난주(9월 초)에 방문했을 때 2만 5000개 작품의 데이터베이스 작업이 완료돼 대여가 시작됐더라. 재생 장비가 없는 분들을 위해 장비도 빌려드리고 있다. 인스타그램을 보시면 매일 현황이 업데이트 중이다."

 
비롯 넷플릭스에 밀리며 스스로를 패배자라 표현하긴 했지만, 여전히 김용만 대표는 번뜩이는 여러 아이디어를 실현할 준비 중이다. 한국영화 제작 경험을 토대로 이어 온 인연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다루는 극영화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특히나 급격한 플랫폼 변화를 그는 꾸준히 주목하고 있었다.
 
"플랫폼 변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사실상 극장 세대는 끝난다고 보고 있다. 여력만 된다면 휴대폰으로 데이터를 찾아 벽에다 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싶다. 만약 기업 관계자가 이 기사를 본다면 개인 휴대폰을 활용한 영사기를 개발해 보시라 전하고 싶다. 장소에 제한 없이 혼자, 또는 다같이 볼 수 있는 극장인 것이다.
 
유튜브가 혁신적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영상 콘텐츠는 점점 더 짧아질 것이고, 다양해질 것이다. 예를 들어 촬영할 때도 여러 신을 나열할 수도 있고, 여러 신을 하나로 압축할 수 있는데 신세대들은 후자를 선호한다고 말할 수 있다. 같은 시간 안에 다양한, 강렬한 경험을 원하는 시대다.
 
킴스 비디오가 그랬다. 10년을 앞서 나갔는데, 제가 가장 후회하는 건 넷플릭스 초창기에 도전조차 못했다는 것이다. 넷플릭스가 생긴 후 1년에 우리 손님이 30프로씩 줄었다. 괜히 겁먹고 데이터를 계속 방대하게 개발하려 한 게 실수였다.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에 집중했다면 절대 넷플릭스에 지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회수한 라이브러리 기준, 약 35%의 작품은 다른 플랫폼에서는 볼 수 없는 고유한 것이라고 한다, 기자 주)"

 
이에 더해 한국청년들에게 김용만 대표는 충분히 거대 기업을 능가할 능력이 있음을 강조했다. "이미 공룡화가 된 넷플릭스는 변화에 느리게 대처할 수밖에 없다"면서 젊은 시장, 다양한 콘텐츠를 위한 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며 말을 이었다.
 
"저는 킴스 비디오를 정리하며 루저라 말했지만, 한국 청년들은 새로운 물결에 지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 있어도 기세에 진다면 상상을 현실화하기가 불가능해진다. 99%는 즐기고 1%는 도전한다는 마음으로 실행했으면 좋겠다. 거대 자본에 맞서기 위한 지혜로운 아이디어가 있다면 실행해야 한다. 극장 시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 빨리 준비할수록 유리할 것이다. 이미 콘텐츠는 세계적으로 귀한 상품이 됐다. 한국도 이미 경쟁력을 확보한 상태기에 그 아이디어를 누가 선도하느냐에 따라 세계 경제 질서도 바뀔 수 있다고 본다.
 
기성 세대로서 제가 미래 세대에게 뭘 충고할 입장은 아니다. 그들이 하는 일을 오히려 내버려 두면 날개를 펴지 않을까. 간섭하면 오히려 위축된다. 개인적으론 한국 사회가 문화적인 세대단절을 꼭 겪었으면 좋겠다. 어른들이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고, 청년들이 적극 사회 참여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선 청년들도 스스로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기성세대가 베풀 듯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가서 얻어내야 한다. 사회적 통념이나 제도로 청년의 기를 꺾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김용만 대표는 또 하나의 도전을 준비 중이다. 오래전부터 말해왔던 식품 문화의 대안 마련을 위해 영화 홍보 일정 중에도 부지런히 전문가들을 만나고 있었다. "제가 가만히 앉아 있는 성격이 못 된다"며 웃어 보이는 모습에서 여전한 자신감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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