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 캣(Doja Cat)의 'Paint The Town Red'

도자 캣(Doja Cat)의 'Paint The Town Red' ⓒ 소니뮤직

 

올해는 '힙합 탄생 50주년'을 기념하는 해다. 1973년 8월 11일, 디제이 쿨 허크(DJ Kool Herc)가 뉴욕 브롱스에서 하우스 파티 'Back-to-school-jam'을 개최한 이날을 힙합의 원년으로 삼은 것. 이를 기념하기 위해 미국에서는 크고 작은 기념 행사가 펼쳐졌다.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힙합 50주년을 기념하는 축하 공연이 열렸고, 지난 8월에는 뉴욕 양키즈 스타디움에서 힙합의 역사를 빛낸 래퍼들이 7만 관객 앞에서 공연을 펼쳤다. 국내에서도 힙합 5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가 펼쳐졌다.

그러나 힙합을 둘러싼 분위기는 결코 낙관적이지만은 않았다. 특히 빌보드 차트에서의 부진이 이 비관론을 뒷받침했다. 앨범 차트에서도 힙합의 고전은 뚜렷해 보였다. 7월 릴 우지 버트(Lil Uzi Vert)의 정규 앨범 'Pink Tape'이 빌보드 200 차트 1위에 오르기 전까지, 약 반년 동안 힙합은 '넘버원 앨범'을 배출하지 못했다. 싱글 차트의 사정은 더욱 심했다. 2023년의 절반 이상이 지나가도록,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에 오른 힙합곡이 없었다. 그리고 9월, 마침내 여성 래퍼 도자 캣의 'Paint The Town Red'가 그 침묵을 깼다.

"새로운 팬 필요 없어" 외친 랩스타

정규 4집 'Scarlet'의 수록곡인 'Paint The Town Red'는 발표 이후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내며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 영국 더 오피셜 차트 1위에 올랐다. 디온 워윅의 'Walk On By'를 샘플링한 비트가 중독성을 만들어내는 가운데, 긴장감있는 랩을 선보인다. 도자 캣은 이 노래로 수많은 기록을 세웠다. 여성 래퍼 역사상 가장 빠르게 스포티파이 1억 스트리밍을 기록했으며, 자신의 최고 히트곡인 'Kiss Me More'의 일일 최다 스트리밍 횟수도 넘어섰다.

'Paint The Town Red'의 인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자 캣에게 최근 벌어졌던 일을 파악해야 한다. 지난 7월, 도자 캣은 자신의 팬덤인 키튼즈(Kittenz)와 설전을 벌였다. 자신의 이름에서 따온 팬덤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도자 캣의 팬덤은 도자 캣에게 '팬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며 일침을 가했고, 도자 캣은 '나는 팬이 되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며 응수했다. 이 설전 이후 도자 캣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단 며칠 만에 25만 명 이상 줄어들었다.
 

▲ Doja Cat - Paint The Town Red (Official Video) ⓒ Doja Cat

 

논란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발표된 이 곡에서, 도자 캣은 시종일관 당당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팬을 공격했던 자신의 행적을 굳이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디스를 이어 나간다.  짧은 헤어스타일에 대한 지적에 "자신은 머리카락이 없어도 더 멋지다"고 말한다. 자신을 악마라고 지칭한다(뮤직비디오에서도 악마의 이미지를 차용한다). 힙합이 아니라 팝으로 돈을 벌었다는 지적에는 "그럼 네가 해봐"라며 응수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남자친구의 과거 범죄 행적이 입방아에 오르자, "나는 새로운 팬이 필요 없고,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한다. 팬의 사랑은 환영하나, 자신에게 과몰입하는 열성적인 팬덤은 거부하고자 한다. '팬 사랑'을 드러내는 아티스트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당황스러운 풍경일 것이다. 도자 캣은 오만한 태도로 수십만의 팬을 잃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오만함이 대중에게 선택받았다.

오늘날의 많은 팝스타들이 그렇듯이, 도자 캣은 틱톡을 통해 이름을 알린 대표적인 아티스트다. 'Say So', 'Kiss Me More' 등의 히트곡은 틱톡 챌린지를 통해 더 큰 파급력을 얻게 되었다. 지금의 세계적인 팬덤 역시 이때 만들어졌다 그러나 도자 캣은 과거와의 단절을 모색한다. 자신에게 성공을 안겨다 준 앨범 'Hot Pink'와 'Planet Her'는 돈을 벌기 위해 만든 앨범일뿐이라며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Paint The Town Red'가 인기를 끌게 된 과정은 과거와 다르지 않다. 틱톡 챌린지와 릴스 등을 통해 인기가 수직상승했기 때문이다. 발표 당시에는 빌보드 핫 100 차트 15위에 진입했던 노래가 서서히 상승을 거듭하더니, 발매 5주 차에 차트 정상에 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도자 캣은 모든 종류의 간섭을 거부하는 랩스타의 길을 지향하지만, 성공 공식은 철저히 요즘 팝스타의 전형을 따르고 있다. 이 모순적인 행보가 흥미롭다.
도자 캣 PAINT THE TOWN 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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